성매매를 넘어서는 여성들
Z넷(www.zmag.org 8/22 로이 쓰루카우)
나는 최근 미국 여성 대표단의 일원으로 쿠바를 여행했는데, 그것은 '평화와 자유를 위한 여성국제연맹(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와 페미니스트 신문 [쏘저너], 미국과 카리브 여성들간의 연대의 기틀을 다지는 목적의 단체인 [하르마나스]후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행을 떠나 나는 아주 초보적인 스페인어 능력과 나의 소견에 매우 반하는 "쿠바는 신비하고 로맨틱한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다. 넓은 엉덩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여성들... 성적인 풍자를 쏟아내는 빠른 대화"라는 퇴폐적인 서술을 한 인사이트 맵 쿠바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의 음란하고 매스꺼운 서술들은 많은 미국시민들이 쿠바여성을 생각할 때 그들의 마음에 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숙소인 하바나 호텔에 묵는 한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한 남자에게 내가 쿠바에 갈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말한 것은 '정열적인 쿠바여성을 내게 데려다주오'였답니다"
쿠바여성에 대한 전리품 획득하듯이 접근하는 것이 놓치고 있는 것은 41년 전 독재자 퓰겐시오 바티스타를 내쫓고 쿠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피델 카스트로의 업적에 대한 언급이다.
쿠바여성연맹(Federation of Cuban Women, FMC)
보건의료와 의학적 향상에 있어서 대부분의 발전은 1959년 쿠바혁명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발전에서 여성의 완전한 참여를 확보하기
위해 구성된, 쿠바여성연맹 덕택이다.극히 소수의 여성들이 무장봉기에 참여했고 승리 이후에 그들 중의 다수는 혁명정부가 혁명을 지지하며 싸운 많은 여성들의 이해에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강구할 조직을 설립하기를 원했다.
오늘날, 시와 지방 그리고 국민 계층에 따라 블록으로 조직되어 있는 쿠바여성연맹은 쿠바의 주요한 여성인권단체이다.
14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개방되어 있는 쿠바여성연맹은 대략 320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 내 학대문제에서 여성의 직업훈련과 여성문제에 관한 정부정책 수립을 보조하는 것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이 단체는 현재 7세 이하의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보육원을 운영하는데 이는 쿠바 노동력의 42%를 구성하는 여성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쿠바여성연맹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의 하나는 1961년 정부의 문맹퇴치캠페인에 참여하고 지도적 역할을 한 것이었다. 1959년 쿠바의 식자율은 약 75% 였다. 1만 명의 교사들이 실직상태였고 농촌에 사는 국민 중 70%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1961년, 정부가 1년 동안 계속된 문맹퇴치캠페인에 앞장선 것은 쿠바여성연맹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모든 학교는 8개월 동안 문을 닫았고, 10만 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기초적인 읽고 쓰는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 시골로 왔다. 이 교사들의 5만 명은 여성과 소녀들이었다. 5천 명의 쿠바여성연맹 회원들은 그 캠페인의 출범을 도왔고, 2만 명은 가르치는데 참여했다.
70만 7천명이 넘는 사람들, 그들 중의 56%의 여성들이 읽기를 배웠다. 쿠바의 현재 식자율은 94.5%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쿠바의 두드러진 보건의료시스템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혁명이후, 3만 5천명 이상의 여성들이 소규모 위생부대로 조직되었는데, 이들은 소아마비와 말라리아 같은 병의 근절, 기생충과 위장염을 예방하기 위한 위생 증진과 유아와 모성 사망자의 비율을 줄이고 적당한 영양상태가 되도록 하는 방법 등 여성과 지역사회에 교육하기 위해 촌락을 순회했다. 성교육 또한 이들의 활동내용에 포함되었다.
오늘날까지 쿠바의 보건의료시스템은 강력하게 여성건강을 위한 기본적 요구들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쿠바 의사들의 과반수 이상은 여성이다. 현저히 낮은 쿠바의 에이즈 바이러스/에이즈(HIV/AIDS) 비율은 여성들에게는 더욱 낮은데, 여성 HIV보균자 및 AIDS 환자는 25% 이하이다. 낙태는 자유이며 여성들은 여러 방식의 피임법을 이미 수용하고 있다.
성교육은 초등학교 수준에서 시작된다. 쿠바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섹스는 자연적인 인간 표현의 형식이라는 생각을 길러주고, 학생들에게 상호 존중하는 성적 태도와 더욱 안전한 섹스 방법들에 대해 교육한다.
20년 전, 동성애혐오증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추방의 참화로 귀착되었지만, 동성애자를 향한 태도와 차별을 수정하는 교육작업이 1986년에 시작되었다.
"호모섹슈얼리티, 사회주의 그리고 쿠바혁명"이라는 '송자 데 브리에스(Sonja de Vries's Cuba Update)' 최신호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하바나 교육자들이 호모섹슈얼리티는 '보다 심화된 연구가 필요한 문제'라고 선언한 1970년대에 있었던 회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성애혐오증에 대한 토론과 동성애자들이 혁명에 기여한 결과로 마침내 1986년 '성교육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Sex Education, 이하 NCSE)'는 모든 쿠바인들에게 동성애 문제를 교육할 교정캠페인을 이끌었다.
성매매
(Jineterismo, 주로 외국인을 상대해서 하는 매춘을 가리킨다-옮긴이)
성교육 국가위원회와 쿠바여성연맹, 그외의 쿠바 페미니스트들은 외국인들의 상상력과 언론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쿠바여성의 성매매 문제로 그들의 관심을 돌렸다.
나는 미국 언론에서 매춘부에 대해 읽었는데 그 문제가 실제 얼마나 심각한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태국출신이 사람으로서, 엄청나게 많은 나긋나긋하고 갈색의 육체가 매매되고 있는 전율스런 사실을 떠들어대는 많은 기사에 다소 불쾌해졌다.
그래서 나는 쿠바의 성매매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 그것은 전세계 여성을 파격적인 문화적 행위의 주체, 무능력한 정부로 인해 가난에 시달린 희생자, 혹은 불운한 매춘부 등의 세 가지 묘사를 반복 사용하는 일반 언론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기사들에 의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쿠바에서 나는 소수의 매춘부를 만났다.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내가 그곳에 있던 첫날밤에 호텔로 왔고, 그후 매일 밤을 왔다. 첫날밤에 그들은 호텔현관에 나타났고 멀리 떨어진 외딴곳의 구석 테이블에 도달할 때까지 거기에 앉았던 모든 남성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들은 테이블의 프랑스 남자들이 시가를 즐기고 있는 동안 코너에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두 명의 쿠바 여성을 데리고 택시를 잡고 있었다. 프랑스 남자들 중 두 명이 그들과 함께 떠났다. 남아 있던 남자는 구석의 테이블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웃고 기대고 무릎을 만지고 있었다. 연두색 스커트를 입은 한 여성이 그의 안경을 벗겼고 자신이 그것을 써보기도 했다.
성매매는 1940년대 바티스타의 압제정권동안 번창하였다. 그러나 혁명이후 여성들에 대한 교육과 고용기회가 증가한 결과로 극적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쿠바에 성매매는 여러 이유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에 다시 부활되었다. 동유럽공산주의가 1989년 종말을 맞이하기 시작했을 때, 소련이 더 이상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쿠바의 수출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자, 쿠바는 한해동안 50억 달러 가까운 돈을 손해봤는데 그것은 쿠바경제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무역과 신용이 떨어지는 현실에 직면하여, 1990년 8월 카스트로는 긴축재정 5년 '특별기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바 경제를 더욱 악화시킨 재앙은 조지 부시가 1992년, 애초에 1961년 구바와의 무역 금지령을 더욱 강화한 쿠바 민주주의 법(Cuban Democracy Act)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음식과 약품과 의학장비로 이루어진 전체 무역의 90%가 그 법에 의해 무역이 금지되었다.
1993년, 커져만가는 어려움에 대한 처방으로 카스트로는 쿠바시민들이 미국 달러를 소유하고, 달러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그리고 지정된 특별 경화 상점에서 달러 사용을 허가한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관광을 증진하고 경제에 외국인 투자를 개방하기 시작했을 때, 달러가 점진적으로 그 나라에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쿠바여성들의 성적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지불하는 남성에게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성매매(Jineterismo, 문자그대로 하면 '말타기')는 에스코트, 가이드, 성적서비스를 제공하여 불법적으로 돈을 벌거나, 팁, 저녁식사, 술 혹은 값비싼 선물과 같은 대가를 관광객에게 받거나 요구하는 것들을 포함하여 아주 넓은 범위의 행위를 모두 포괄한다.
쿠바 연대 활동가인 잔 스트라우트가 [사회주의자 평론(Socialist Review)] 에 쓴 기사, "여성, 성의 정치, 그리고 쿠바의 경제위기"라는 글에 따르면,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고, 그 여성들 중에서 보다 많은 수는 검은 색 피부의 경향이 강하거나 아프리카계 쿠바인 이라고 한다. 쿠바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인종적 차이는 1959년에 그 나라를 떠나서 지금은 쿠바 친척에게 돈을 보내오는 대부분의 쿠바인들이 보다 백색계통의 피부색이며, 주로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이론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자원을 갖지 못한 보다 검은 피부의 여성들에게 성매매가 벌게 해주는 달러는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이국적인 혼혈/아프리칸'여성들에게 매혹된 외국인 남성이 검은 피부 여성들을 더욱 많이 성매매에 종사하도록 한다고 스트라우트는 전한다.
그러나 혁명 전 쿠바에서 여성들은 경제적인 요구에 의해 대거 성매매에 들어왔지만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페소를 가지고는 이용할 수 없는 사치품과 서비스를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매매를 한다.
쿠바 여성주의자들에 의한 연구와 광범위한 인터뷰에 의하면 많은 매춘부들이 매우 어리며, 이들은 폭력과 마약와 에이즈.... 그리고 범죄와 같은 매춘에 개입된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스트라우트는 보도하고 있다.
Ms 잡지인 [코코 퓨스코]는 1996년 9/10월호판 "달러강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심각한 경제적 내핍기와 동시에 매혹적인 관광분야의 발전 이후, '전력 부족, 주택난, 자주 끊기는 통신, 형편없는 TV프로'만을 얻게하는 배급카드에 비해 성매매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여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성매매 비율이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 쿠바 여성주의자들은 다양한 전술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쿠바여성연맹은 매춘여성 연대 프로그램에 착수했고 외국인 관광 증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여론협회(현재는 해체된 MAGIN)는 쿠바 여성에 관한 책임있는 묘사를 관광정책입안자, 관리, 그리고 투자자를 상대로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다른 쿠바 여성운동가들은 그 문제에 대한 정부의 중립적인 태도로부터 매춘여성에 관한 가혹한 단속에 이르는 모순된 반응을 바로잡을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수의 여성운동가들은 다음으로 강조점을 이동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스트라우트는 전한다. "매춘여성의 공급을 공격하지 말고, 그들에 대한 요구를 공격하라".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