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호/특집] 미국에게는 새로우나...

미국에게는 새로우나,
아프카니스탄에게는 새롭지 않은 테러 공격

Z넷(www.zmag.org) 9/13 제임스 인걸스*

강한 인상을 주는 '지명수배' 포스터처럼, 텔레비전 뉴스들은 쌍둥이 빌딩이 파괴된 모습을 비춰주는 사이사이에 빈 라덴의 얼굴을 좀 더 긴 시간동안 보여주고 있다. 맨하탄, 워싱턴과 피츠버그에서의 끔직한 공격에 대해 책임져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 주장은 이러한 시각적인 '증거'와 비교해 볼 때 약해 보인다. 이 세대 최고의 범인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앞으로 며칠 안에 미국과 나토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에 곧 공중 폭격을 감행할 것을 암시하며 조지 부시는 "이 행위을 저지를 테러리스트와 이들을 비호하는 자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한 그의 약속을 이행하므로써 인명 손실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희박해졌다. 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미국은 '테러리즘의 논리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폭력과 테러에 대해서 폭력과 테러로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무부 테러 지휘자인 마이클 쉬한은 테러리스트 활동에 있어서 중동에서 남아시아로의 '지리적 이동'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쉬한은 이러한 이동이 1980년대 아프카니스탄 점령에 대한 소련과의 전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의 시민사회와 정부를 파괴했다. 동시에 전세계로부터 무기와 전투기 그리고 마약거래자들을 그 지역으로 들여왔다".
쉬한은 여기에 인간이 개입되었다는 모든 흔적을 없앤다. "이 전쟁이 아프카니스탄으로 무기와 전투기와 마약상인들을 들여와서 시민사회를 파괴한 것이다" 워싱턴이 자기편의적으로 무시하는 점은 빈 라덴을 비롯한 그밖의 극단적인 테러리스트들이 바로 우리의 CIA로부터 '테러리즘의 논리' 배웠다는 사실이다.
CIA는 세계적 불행의 원인으로 여태 남아있는 테러망을 엮어냈다.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는 "그런 종류의 일은 우리가 했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반 자료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극단적 집단에 대한 원조는 소련 침략에 대한 대응의 차원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1979년 12월 침공 6개월 전에 카터대통령이 무자헤딘에 대한 공개적인 지원에 녹색신호를 보냈다는 데에 있다. 카터 정책의 주요 기획자인 당시 안보담당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말을 빌자면 미국은 "소련을 아프칸의 덫에 유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1980대 내내 그리고 1990년대 초까지 7개의 극단적인 근본주의 집단에게 50억달러 상당의 현금, 최신 무기, 군사훈련을 지원해줬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비밀스러운 CIA의 검은 예산은 1980년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매년 360억 달러로 4배나 뛰었고, 이 돈의 일부는 아프카니스탄에서의 비밀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어졌다고 한다. 초기의 군사훈련 중 일부분은 커네티컷주 노그딕의 하이락 사격장 등 미국 내에서 이뤄졌다. 보다 기술적인 훈련은 버지니아주 윌리암스버그 북동쪽에 일명 '농장'이란 애칭의 CIA 캠프 피어리에서 이루어졌다. 훈련 기간 동안 다뤄진 내용에는 감시와 대항감시, 대테러 작전, 그리고 준 군사작전 등이 포함됐다.

비슷한 시기에 전쟁을 위한 사적 기금을 조성할 재원이 모색되었다. '나무랄 데 없는 사우디 신임자'인 오사마 빈 라덴(그의 부친의 건설회사는 메디나와 메카에 있는 성전 등을 재건축하고 복원하기 위한 계약을 따냈다)은 CIA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삐를 풀어줬다. 그의 가족의 사업제국 중 그의 지분을 이용해, 워싱턴의 승인을 받아 훈련캠프장과 비행기 이륙 활주로를 만들었으며 아프카니스탄 산악지역에 벙커를 만들었다. 빈 라덴의 본부는 바로 국경 넘어 파키스탄 카라치에 있는 비누리 이슬람 성전이었다. 이 성전의 성직자가 현재 탈리반의 "최고 지도자"인 바로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였다.

1989년 소련이 철수한 이후, 무자헤딘 그룹들은 미국이 지원한 무기들을 서로에게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시민에게 겨누기 시작했다. 1990년에 CIA는 파키스탄의 정보부(ISI)를 통하지 않고 직접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ISI 아프카니스탄 지부의 당시 지부장이었던 모하메트 유사프에 따르면, CIA의 목표는 '여러 파벌들과 그 지도자들 간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이는 파벌들의 '권력을 억제'해서 탈리반일수도 있는 비밀 '과도정부'을 위한 길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아프카니스탄 종교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CIA의 후원의 효과가 이 시기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희생자들은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이었다. 로부딘 헥밋티야가 이끈, 미국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그룹은 카불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빈 라덴의 가까운 친구인 헥밋티야는 그의 후원자들로부터 미치광이, 극단주의자, 그리고 매우 폭력적인 사람(아프카니스탄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뉴먼)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에 그는 베일 쓰기를 거절하는 여성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악명을 떨쳤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그리핀은 헥밋티야의 맹공격하에서의 카불을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사라예보를 제외한) 그 어떤 도시도 1992년부터 1996년까지의 카불만큼 잔인한 폭력으로 고통받은 도시가 없다"라고 적고 있다. 사라예보는 여기에 비교해 거의 지협적인 문제일 뿐이며, 적어도 잊혀지진 않았다". 1990부터 1994년 사이 4만 5천 명의 시민이 죽었고, 3십만 명이 파키스탄으로 도망쳤고, 카불은 '화염폭격이후의 드레스덴을 닮은 폐허로 변했다." 아프카니스탄 사람 대부분은 현재 생계수단이 없이, 국제 원조기관에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은 현재 빈 라덴을 보호해주고 있는 파시스트적인 탈리반 정권 하에 살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싸우기 위해 CIA로부터 훈련받고 무장된 테러리스트들은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공격과 1998년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인 케냐 및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격과 연루되어왔다. 이러한 노력들은 최근 맨하탄, 워싱턴과 피츠버그에서의 파괴와 비교하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공정한 재판으로 유죄가 증명된다면, 빈 라덴은 책임을 분명히 져야한다. 그러나 빈 라덴과 그의 친구들이 저지르는 테러에 이미 익숙한 아프칸 민중들에게 우리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루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이렇게 파괴적인 무력을 휘두른 자들은 바로 우리의 관료들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윌리암 케이시, 지미 카터,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의 얼굴도 오사마 빈 라덴, 그리고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빈 자리와 나란히 TV화면에 나와야 하지 않을까?


* 저자는 '아프칸 여성의 임무'의 이사이며, 캘리포니아 과학기술연구소의 과학자로 있다.

태그

여성 , 아프가니스탄 , 테러 , 테러리즘 , 빈라덴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picis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