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부문에 있어, 하루 사이를 두고 브라질과 한국은 극히 대조적인 발표를 했다. 지난 8월 21일 한국산업진흥원은 '10년 뒤 에이즈 치료제, 완전이식 및 휴대형 인공장기 개발·실용화 등 보건산업 기술이 선진국의 90%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제출했다. 그 뒷날 브라질 정부는 강력한 에이즈 치료제인 넬피나이어(Nelfinavir:상품명, 비라셉트)에 대한 '강제실시' 시행하기 준비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의약품 '강제실시권'이란 해당 국가가 특허권자에게 로얄티를 지불하고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일반약 회사)에게 그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으로, 브라질 정부는 에이즈 약품 무상공급을 위해 지적재산권을 앞세운 초국적 제약회사와 결전을 치루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브라질 정부와 초국적 제약자본과의 투쟁
동성애 활동가들을 위시한 민중운동의 투쟁으로, 브라질 정부는 이미 90년대 중반 이후 특허 하에 있는 에이즈 약품에 대해서 공공제약회사를 통해 이 약물들을 무상으로 공급해 왔다. 스위스의 거대제약회사 로슈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넬피나이버는 에이즈 치료에 사용되는 핵심적 약물인데, 에이즈 치료제 생산을 위한 브라질 정부 재정의 28%나 차지해 왔다. 브라질 정부는 넬피나이버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로슈사(社)와 협상이 나섰고 이것이 결렬되면서 '강제실시'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에이즈 약물에 대한 무상공급은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과 새로운 감염률을 50%까지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고, 이번 강제실시는 다른 약물에 대한 보험적용 범위까지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실시권'은 WTO체제 내에 있는 TRIPs협정(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에 명시되어 있는 제한적인 보호수단으로,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도 수만 건의 강제실시를 시행하고 있다 한다. 브라질의 '강제실시'가 획기적인 것은 제3세계 국가들 중에서는 처음이며, 신자유주의적 WTO체제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부의 '강제실시'가 시사하는 점
브라질 정부의 '강제실시'는 몇가지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브라질 정부의 에이즈 약물 무상공급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통해서 쟁취된 것이다. 브라질 지역에 만연한 에이즈는 의료보험 재정 파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건강권을 핵심으로 한 동성애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민중투쟁을 이끌어 냈다. 이 투쟁의 결과가 의약품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사적 자본의 이해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정부의 강제실시를 이끈 것이다.
다음으로, 의료의 사회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지적재산권'은 의약품을 포함한 보건의료의 사회화 요구투쟁에서 핵심적 사안이다.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장되는 독점가격에 의해 대다수 주변국 민중들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고, 주변국으로의 기술이전도 봉쇄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애초 목표로 했던 '기술의 확산'이라는 기만적 논리마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건강권을 위협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은 궁극적으로 철폐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국제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흔히 의료 영역을 포함한 보건복지 문제는 계급투쟁과 분리된 개량적인 투쟁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의료' 및 '건강권'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이 투쟁을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안고, 주도성을 발휘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브리질의 넬피나이버 강제실시를 통해 한국의 노동자들이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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