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잘못으로 사고가 날 경우 기사가 책임져야 하는 기간을 2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고, 보증인에게 부과되는 보증금액 역시 무한대로 늘린다는 내용의 신규계약서 체결 문제로 촉발된 린나이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이 23일로 꼭 100일째를 맞는다.
지난 6월16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노조(위원장 이병남)는 지난달 22일 열린 회사(대표이사 강성모)쪽과의 7차 교섭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본사 점거, 각 대리점 앞 집회, 상급단체인 민간서비스연맹과 함께 린나이 제품 불매운동 등을 벌이면서 원직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 등 요구안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원직 복직 VS 전원 복직은 불가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102명(회사쪽 98명)을 전원 원직에 복직시켜라는 것이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서비스기사들의 무한책임을 명시한 계약서 체결을 요구해 와 불가피하게 집단적인 작업거부나 파업이 진행됐기 때문에 회사가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 김현섭 사무국장은 "법적으로도 계약서 상에는 계약해지 30일 전에 해지 사실을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되도록 돼 있음에도 계약만료일을 불과 8일 앞둔 날 해지통보가 됐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쪽은 서비스 업무가 중단된 지 이틀만인 6월17일 신규 계약서를 철회하겠다는 통보를 했음에도 기사들이 이를 거부하고 계속 작업을 거부해 '5일 이상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서에 따라 해지통보를 내린 것이기 때문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조 김현섭 사무국장은 "신규계약서 철회방침을 구두로 밝혀왔는데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회사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요구했으나 회사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회사는 업무 중단이 장기화됨에 따라 대체인력을 투입했다가 최근 신규채용을 통해 공백을 메꾸었기 때문에 이들의 복직을 받아줄 자리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교섭위원인 법제팀의 김우석 차장은 "지금 현재 계약 해지된 기사들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배치돼 있는 만큼 전원 원직 복직을 수용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노조 김 국장은 그러나 "6월18일 노조를 결성한 뒤 파업을 하는 동안 대체근로나 신규채용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법제팀의 김 차장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종료 결정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2달여만인 8월23일에 나왔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뤄진 파업은 명백히 불법이며, 따라서 8월23일 전에 이뤄진 대체근로나 신규채용의 문제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노사간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노사는 지난달 22일까지 7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다. 법제팀 김 차장은 "이미 계약해지가 됐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이 분들과 교섭할 의무가 없지만 서로간의 소모전이 해소될 수 있을까 해서 교섭에 응하고 있다"며 "그러나 생각 외로 입장차가 크다"고 말했다.
노조 역시 교섭에 대한 불만은 많다.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고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데다 노조 설립신고필증 받은 합법노조이고, 현재 노동위원회에 접수한 '부당해고 구제신청'건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노조원 자격과 노조를 인정해야 함에도 집회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섭에서도 원칙적 입장만 고수한 채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중노위는 지난달 23일 조정종료 결정을 내리면서 그 이유를 "노사 당사자의 입장차이가 현격하고 확고하여 조정안 마련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조정안 제시가 당사자간 주장의 대립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7차 교섭 이후 노조가 상급단체인 민간서비스노조연맹으로 교섭권을 위임했고, 22일오전 연맹과 회사쪽 관계자간 실무교섭을 진행할 계획으로 있어 교섭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노조활동 인정 VS "노동자가 아닌데..."
위탁계약, 도급계약 등 흔히 '특수고용형태'로 불리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인 노동법상 '노동자성' 인정 문제도 쟁점이다.
회사쪽 관계자는 "대행점 계약을 하더라도 서비스 접수는 본부 상담실로 오기 때문에 각 지역별 대행점으로 전달을 하는 것이나, 수수료 지급을 위한 수수료카드 입력을 다음날 오전 9시까지로 정해놓은 것 등을 두고 업무지시를 내리고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조의 증언은 다르다. 노조에 따르면, 이들 서비스 기사들은 대개 아침 8시10분경까지 소속 센터를 출근을 한 뒤 전날 업무실적을 보고하고 정규직인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각 가정이나 업체를 돌면서 수리를 해야 한다. 아침 출근이 의무화돼 있음을 물론이고, 지각을 하면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며 지각이 잦으면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 고장수리 이후 소비자에게 항의가 오거나 재수리 요청이 온다면 이 역시 징계사유가 돼 계약해지의 이유가 된다.
이미 행정관청에서도 이를 인정, 노조설립신고필증을 배부한 만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 하지만,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용자들의 행태는 학습지노조, 보험모집인노조, 건설운송노조 등에서 봐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되는 파업, 타결의 가능성은?
노조는 파업이 계속될수록 린나이 제품의 서비스 질 하락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만이 증폭하고 있는 만큼 숙련된 서비스 기사들을 거리로 내 몬 린나이의 부당성을 소비자들에게 알려 노조와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노조 김현섭 사무국장은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가 제때 이뤄지지 않거나 제대로 수리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파업에 결합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루에도 많게는 3~5통씩 제품 수리를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며 소비자들과의 연대에 자신감을 보였다.
파업 참가자들의 대부분 4~5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베테랑인 반면 파업으로 인한 공백을 메꾸기 위해 들어간 사람들은 공장 생산직 사원이거나 신입사원으로, 겨우 1~2주 교육만 받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쪽은 파업기간동안 대체근로 및 신규채용자의 서비스 제공 후 재수리 요청건수 급증 여부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숙련된 서비스 기사가 필요하다"는 말로 서비스 질 하락에 따른 우려를 내비쳤다.
이처럼 계약해지 등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고, 제품에 대한 유지보수 및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 서비스부분의 특성상 소비자의 불만이 가중될 경우 제품 이미지마저 떨어질 가능성도 높은 만큼 회사쪽의 태도변화가 기대된다.
또한 서비스연맹의 조경석 조직부장은 "노조가 다른 특수고용형태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당해고나 노조인정 등을 쟁점으로 싸우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까지 인정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은 만큼 노조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사태가 풀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당해고 철회' '원직복직' 등을 요구하며 그 동안 서울 동교동 본사 앞, 인천공장 앞에서 연일 집회를 벌여왔던 노조는 9월1일부터는 본사 점거 농성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압박하고 있고, 지난 7일에는 린나이 제품 1차 불매운동 선포식을 가진 뒤 각 대리점을 돌며 본격적인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파업 99일째를 맞는 오는 22일에는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서비스연맹 주관으로 열리는 '서비스 노동자 투쟁문화제'에 결합, 투쟁결의를 다질 계획이다.
최근 린나이코리아는 한국능률협회 선정 5년 연속 가정용 보일러부문 소비자만족대상을 수상했다. '고객만족'의 영광 뒤에 숨겨진 일그러진 노사관계는 언제쯤 종식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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