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전국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 건설, 롯데호텔 노조, 이랜드 노조, 한국통신 계약직노조, 캐리어 사내하청노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확보투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울산지역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울산노동자신문>은 이번에 [하청노동자 노동3권 확보를 위한 기획연재](총 10회)를 준비하였다. <울산노동자신문>은 이번 기획연재를 넘어서서 울산지역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확보 투쟁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INP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 투쟁
INP중공업에서 일하는 200여명의 생산직은 모두 사내하청노동자들이다. 관리직만 INP 직영인데 그나마 계약직이다.
INP중공업에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하루 8시간의 기본 노동시간도 안 지켜진다. 평일에는 08~18시까지 9시간(점심1시간), 토요일은 08~17시까지 8시간을 정취근무로 인정한다.
당연히(?) 잔업수당은 없다. 주차·월차·생리휴가도 없다. 의료보험·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은 꿈도 꿀 수 없다.
INP중공업 사내하청노조의 건설
2000년 10월 INP중공업 하청업체 중 하나인 신원건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참다못해 노조를 결성했다. 그런데 노조설립신고서를 내자마자 신원건설이 바로 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하였다.
폐업하는 회사의 노조설립은 불가능함을 악용한 명백한 위장폐업이었다.
그러나 신원건설 노동자들은 INP중공업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모두를 조직대상으로 하는 ‘INP사내하청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업체 노동자들이 조합원에 가입함으로써 동구청으로부터 노조설립 필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INP 자본은 여전히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조 간부들의 정문출입조차 봉쇄하여 정당한 노조활동을 가로막기에 이른다. 또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서도 교섭할 의무가 없다며 거부하였고 한 술 더 떠 11월 27일 울산지법에 ‘노조활동정지 및 노조취소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INP하청노조의 끈질긴 투쟁
INP 자본이 하청노조의 교섭요구에도 무조건 저지와 탄압으로만 일관하자 노조는 4월 11일 INP 정문 앞에서 현자·현중 등 금속 노동자들과 노동단체 회원 100여명과 함께 천막노숙투쟁에 돌입하였다.
핵심 요구는 △조합활동 특히 조합간부의 현장 출입 보장 △근로기준법 준수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에 대한 소급 보상 △임금체불 관행 철폐 △산재은폐 중단 △4대 보험 가입 등이었다. 나아가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하청 일당직 고용 중단 및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였다.
INP하청노조가 노숙투쟁에 들어가자 지원투쟁 또한 열기를 더해갔다.
금속연맹을 비롯하여 산하 각 단위노조, 현장조직, 노동사회단체 회원들이 사수조를 꾸려 노숙투쟁에 동참하였다. 매주 수요일 지원집회에는 평균 150여명이 참여하여 ‘비정규직 철폐’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연대를 보냈다.
‘하청 투쟁’ 관심 이끌어 낸 기폭제
그러나 5월 효성이 본격적인 파업투쟁에 돌입하면서 지역 투쟁의 중심이 효성으로 집중되자, INP자본은 농성장을 부수고 이에 항의하는 노조와 지역 해고자들을 집단폭행하면서 탄압강도를 높였다.
그러던 중 6월 9일 효성공장 진격투쟁에서 INP사내하청노조 김형기 위원장이 연행·구속되면서 INP사내하청노조 투쟁은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노조의 조직력 약화, 투쟁이 지속되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빠진 점 등 아쉬운 점들도 있지만, INP사내하청노조 투쟁은 울산지역에서 최초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적극적으로 폭로해 내고, 그럼으로써 하청노동자 노동3권 확보 투쟁에 대한 지역적인 관심과 연대투쟁을 이끌어낸 기폭제 역할을 해 냈다.
삼화페라이트 노조, 정규직화 쟁취 투쟁
TV모니터 부품인 페라이트 생산업체 삼화페라이트(구 송원페라이트). 삼화로 매각된 후 상여금 200% 삭감, 격주휴무제 폐지, 생산직 임금 동결, 각종 수당 삭감 등 노동조건이 급속도로 추락하자 이를 계기로 2001년 2월 12일 노조가 결성되었다.
삼화페라이트 노조의 큰 특징은 애초 노조를 결성하면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괄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가 추락한 노동조건 못지않은 노조 결성 이유였다.
현장 관리자들은 비정규직인 아주머니 노동자들에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비인간적인 대우와 언행을 일삼고 있었다. 또한 ‘재계약 거부’를 협박하며 잔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퇴근카드를 찍게 한 후 잔업을 시키는 부당노동행위도 자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추락한 노동조건 회복과 계약직의 정규직화를 함께 내걸며 삼회페라이트 노조는 21명의 정규직 노동자와 24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건설되었다.
노조결성 이후 계약직 노동자의 정규직 채용 요구에 대해 삼화자본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물량이 없다며 한 달간 휴업조치를 내렸다. 노조는 이에 맞서 쟁의조정신청, 쟁의행위 가결, 휴업거부 출근 농성을 진행했다.
그러나 삼화자본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여전히 논의를 거부하고 휴업조치를 다시 한달 더 연장하였다. 이에 조합원 35명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서울 신사동 삼화전자 본사 앞 노숙투쟁에 돌입하여, 6월 2일 마침내 사측과 핵심 요구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합의안에는 △2003년 1월 1일부로 계약직 16명 정규직화 △현재 계약직 조합원 2002년 12월 31일까지 계약기간 자동 연장 △단협체결시까지 전임자 1인 인정 △노조 활동에 필요한 사무실 및 집기 제공 △42시간 격주 휴무 △휴업 철회 △성실교섭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노조는 사생결단의 상경투쟁으로 노조인정, 휴업철회 및 계약직 정규직화의 성과를 거두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