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는 '지배질서'가 빚은 충돌이다

자살테러단이 두 대의 항공기를 탈취하여 미국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를 폭파시킨 지난 9월 11일의 사건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거대한 고층 쌍둥이 건물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며 5천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이번 사건으로 세계는 지금 새로운 전쟁의 위기에 빠졌다. 사상 처음 본토를 강타 당한 미국이 바짝 약이 올라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주범으로 단정하고 그를 비호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려 하자, 이 나라 탈레반 정권이 결사항전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영국,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아프간 주변국가들의 지지를 얻으며 힘을 얻고 있는 듯하나, 사태가 그리 만만한 것 같지는 않다. 파키스탄 이슬람교도들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자국정부를 상대로 '내전불사'를 외치며 격렬한 반미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등 이슬람세계가 반미저항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국제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과 테크놀로지의 충돌'
워낙 큰 충격을 준 데다 앞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라 이번 사건은 발생 원인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2주 동안 텔레비전, 인터넷,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서 무수한 반응, 관측, 해석, 설명, 논평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어떤 말을 어디서 듣고 읽었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지만, 이번 사건을 "신과 테크놀로지의 충돌"이라 한 논평이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서 '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하다. '신'은 테러리스트들이 죽으며 외쳤을지도 모를 알라신일까? 그렇다면 이 신은 '문명의 충돌'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믿듯이 기독교 신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슬람 신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그 신은 이슬람 세계에 살고 있는 민중이 느끼는 절망의 모습이 아닐까? 2차대전 이후 이슬람 민중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왔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 전쟁에서 패한 다른 아랍 국가들의 민중은 이어지는 파괴와 고립, 절망 속에서 세계에, 특히 최강대국 미국한테서 외면당했고, 부시정권 수립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신'은 이처럼 의지할 데 없는 민중이 유일하게 기댈 안식처일 것이다. 이번 테러범들이 자신들을 '순교자'로 인식했다면 이런 절망의 소산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테크놀로지'는 테러 공격을 당한 미국을 가리킨다. 미국은 그 동안 자신의 절대적 군사적 우위를 뽐내며 세계 질서를 일방적으로 지배해왔다. 미국의 힘은 부시 정권의 미사일방위계획에서 보듯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응축되어 있다. 문제는 테크놀로지에만 의존하면 전쟁이 게임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10년 전 걸프전에서 미군은 컴퓨터게임처럼 '사람은 안 죽는' 전쟁에 몰두했다. 당시 전쟁은 첨단기술이 내장된 각종 미사일이 목표물을 자동 추적하며 폭격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때 미군은 자기들끼리의 오인사살을 제외하면 희생자가 아주 적었던 편이다. 폭탄에 장착된 카메라가 잡은 폭격 목표물로 채워진 당시 CNN방송 화면이 증명하듯 이런 전쟁은 기계가 수행하는 전쟁 혹은 컴퓨터게임에 가깝다.

첨단기술도 인간의 희생 못 막아
그러나 사람이 안 죽는 전쟁이란 없다. 걸프전에서도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1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경제봉쇄조치로 훨씬 더 많은 이라크인들, 특히 어린이들이 죽어갔다. 팔레스타인에서도 그 동안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다. 이런 사실은 '신과 테크놀로지의 충돌'에서 희생되는 것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하늘나라 신의 세계도 컴퓨터 속도 아닌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번 테러사건은 사실 첨단 테크놀로지도 인간의 희생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을 무릅쓴 공격에는 미사일방위체제의 보호를 받는 제국의 시민들도 안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전쟁은 따라서 신과 테크놀로지의 충돌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의 침략, 가난한 사람들의 착취, 이민족 멸시, 사회적 약자 냉대 등 인간들 사이의 충돌로 빚어진 것이다. 물론 전쟁은 막아야 한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모순과 문제들을 먼저 풀어야 할 것이다.
중앙대교수·문화연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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