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2001년 울산총력투쟁을 평가한다

대담 : 조돈희 (현대중공업 해고 노동자, 구조조정박살 노동운동탄압분쇄 울산지역 연대투쟁실천단 대표)
안기호 (효성금속 해고 노동자, 구조조정박살 노동운동탄압분쇄 울산지역 연대투쟁실천단 집행위원장)
김희환 (현대자동차 해고 노동자, 구조조정박살 노동운동탄압분쇄 울산지역 연대투쟁실천단 집행위원)
사회 : 양준석 (울산노동자신문 편집위원장)
<2001년 9월 21일, 울산노동자신문 사무실>


“효성을 보며 너무 한다는 공감대가 연대투쟁의 불길이 되었습니다.”
“7·5 총파업은 적절한 결정이었으나 책임있게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노동자의 월드컵 총파업을 만들어 내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회] 5월 효성노조의 투쟁으로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울산 노동자들이 벌여온 투쟁을, 울산노동자신문은 ‘2001년 울산총력투쟁’이라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올해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의 한복판을 뛰어다니셨던 세분을 모시고 오늘 2001년 울산총력투쟁을 평가하는 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올해 투쟁의 객관적인 성격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주시지요.

2001년 투쟁의 성격

[안기호] 올해 투쟁은 한마디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고 조합원의 생존권을 지키는 싸움이었습니다. 효성·태광·고합의 화섬3사나 민주버스, 세동의 경우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탄압도 총체적인 양상을 띠었습니다. 특히 직접적인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관철시키려는 자본과 정권의 의지가 숨김없이 드러났습니다. 노동자들로서는 단사의 벽을 넘어 지역의 연대투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조돈희] 김대중 정권은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한편으로 신노사문화라는 허울로 노사협조주의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올해 투쟁의 시발이 되었던 효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이 두 가지로부터 응축되어 터져 나온 것입니다.
89년 이후 무쟁의 속에 관철되어 왔던 자본의 억압적 노무관리와 현장통제를 뚫고 나오려는 힘, 현장을 끊임없이 하청화시켜 온 구조조정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로 만들어진 게 효성투쟁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울산의 모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총력투쟁의 시발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효성노조만의 투쟁이었다면 파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총회방해는 기본이고 용역깡패까지 서슴없이 동원하는 효성자본의 노무관리 아닙니까? 그래서 연대의 힘으로 효성 파업이 터졌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힘이 확장되면서 구조조정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그밖의 사업장들도 함께 파업투쟁으로 나서면서 이번 투쟁이 발전해 나갔다고 봅니다.
민주버스 파업이 아직 남아 있는데, 민주버스의 경우도 실질적인 쟁점은 민주노조 무력화냐 사수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김대중 정권의 신노사문화 정착, 다른 말로 노사협조주의 강요에 맞선 투쟁 또한 올해 투쟁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것입니다.

[김희환] 대우자동차 정리해고가 들어오면서부터 민주노총에서 김대중 정권 퇴진 요구를 내걸었지 않습니까. 구조조정에 맞선 우리 싸움의 요구가 분명해졌고, 상반기 전국투쟁에서 울산투쟁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효성투쟁은 자본의 노무관리 방식에 의해 상황이 커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 자체가 사회구조나 노동과 자본간의 대립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즉 이번 싸움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거죠.

연대투쟁의 불길이 만들어진 이유

[사회] 말씀해 주신 것처럼 효성 파업은 연대의 힘으로 터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월 25일 파업에 들어가던 날 새벽에는 피 터져 가면서 용역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주 적극적인 방식으로 연대투쟁을 실천했습니다. 6월 5일 폭력경찰이 효성공장을 치고 들어온 날도 효성노동자들과 함께 수많은 울산 노동자들이 야음사거리에서 공업탑, 시청을 거쳐 격렬한 가두투쟁을 했습니다. 이 시기의 과감한 연대투쟁이야말로 이후의 모든 투쟁을 벌여나갈 수 있는 힘을 얻어낸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투쟁은 구조조정과 신노사문화에서 비롯된 지점도 있지만,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연대의 실천으로부터 촉발된 지점도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연대투쟁이 이전과 달리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기호] 효성은 남구에서 비중있는 사업장이면서도 무쟁의 속에 구조조정이 확실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조를 세웠지만 투쟁으로 이어내지도 못하고 현장활동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조합원 대중과 활동가들의 불만이 참을 수 없이 누적되어 왔습니다.
결국 민주노조에 대한 열망이 투쟁으로 분출한 건데, 여기에 효성자본이 민주노조 강성집행부를 제거하려는 욕심에 5월 6일 임원들을 전격 구속시키는 무리수를 쓰면서 기름에 불을 붙인 꼴이 된 거죠.
울산지역 전반적으로 IMF 들어와서 크고 작은 투쟁들이 과거만큼 전개되지 못하면서 억눌려 있던 상태에서 효성을 바라보며 ‘해도 너무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고 이게 결합되면서 연대투쟁의 불길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김희환] 사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 효성투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효성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난해에는 지역본부 집회를 해도 2백명 3백명 모이는 수준이었는데, 효성투쟁을 계기로 연대투쟁이 폭발했습니다. 앞으로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이 적극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돈희] 구조조정이나 신노사문화나 결국 노동자들의 단결을 와해시키기 위한 자본의 전략입니다.
이에 맞서 연대투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무엇보다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식의 공감대가 확산되어 온 때문이고요, 현장 밖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노동운동을 실천하는 활동가들의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연대투쟁을 자기 사업장에서의 현장실천과 어떻게 결합시켜야 하는가를 놓고 현장활동가들의 고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연대투쟁은 효성에 달려가 용역깡패와 싸워서 총회를 성사시키고 파업을 성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폭력경찰 투입 이후에는 가두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었구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자기 사업장을 챙기지 못하면서 가두에 뛰어나가는 것만이 꼭 잘하는 것이냐는 문제의식들이 생긴 것이죠. 자기 사업장에서 실천을 강화하여 동맹파업을 만들어 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인데, 7월 5일 총파업이 결국 무산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기 사업장에서의 현장 실천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할 것입니다.
가두투쟁이 어느 해보다 완강하고 격렬하게 전개되기는 했지만 자기 사업장에서 동시에 자본을 공격해 들어가고 쟁점을 형성시키며 대중적인 동력을 만들어 이 투쟁에 결합해야겠다는 의지들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7.5총파업은 적절한 결정이었으나 책임있게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운동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자면

[사회] 이제 2001년 울산총력투쟁을 운동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돈희]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완강하게 강력하게 끈질기게 저항을 해야 된다”고 호소력있게 선동하는 지도부의 모습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지도부의 호소력 없는 모습은 투쟁을 조직하는 데서 소극적으로 나타났고 전술배치하는 데서도 소극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투쟁을 죽 이끌어가면서 진정으로 구조조정 분쇄를 하겠다는 그런 정신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임했는가 의문입니다. 각 단사 지도부들이 기업별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소극적인 자세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희환] 98년 이후로 정리해고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계속 밀리고 있는 형국이잖아요. 그런데 활동가 개개인이 갖고 있는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들은 얼마만큼 확실한 것일까요?
현장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홍보는 하지만 막상 투쟁현장에 가보면 아무도 없다는 것이죠.
구조조정 정리해고, 인식은 많이 하는데 막상 행동으로 옮겨 내지 못합니다. 위원장이 안한다 누가 안한다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자꾸 면피하려고 합니다.
투쟁이라는 것이 예전에 우리가 그렇게 했듯이 지도부가 안되면 현장에서 일을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구조조정에 대해서 진심으로 가슴에 끌어안는 자세로 싸움에 임하지 않고서는 항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지도부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올해 투쟁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각 단위 사업장을 제대로 조직해내지 못했습니다. 기업별 노조 체계라서 지역본부가 단위사업장을 강제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하는 한계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역본부 간부들이 책임있는 역할을 하려면 최소한 현장을 직접 설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조돈희] 활동가들의 자세를 지적하셨는데, 공감합니다. 특히 대공장의 경우에 자기 사업장 내에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 거고 그러다 보니까 밖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자기 단사 문제가 아닌 이상 일단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우리 일부터 제대로 하자’는 거지요. 꼭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연대라는 것과 자기 사업장 문제라는 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거지요. 자기 사업장의 현장실천에서 연대의 문제를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 것인가를 놓고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기호] 오랜만에 올해 투쟁에서 민주노총 투쟁방침으로 잔업거부 등 투쟁수위가 한껏 올라갔고 노동과 자본 간의 적대감이 고조되었습니다. 앞으로 과거의 투쟁을 회복시켜 나가는, 격렬한 투쟁을 예고하는 계기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화섬사 구조조정 문제는 충분히 격렬한 투쟁을 예고했던 것인데 이 투쟁을 전면화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특히 민주노총은 적극적인 투쟁방침을 준비하지 못했고, 상황이 터진 후에 긴급하게 수립된 방침들을 반드시 관철해 내겠다는 적극성도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현장 활동가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패배주의도 큰 문제입니다. 패배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하니까 조금 싸우다가도 금방 뒷심이 딸리는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 싸움에 대한 패배감과 무력감이 전국적인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 자기 문제처럼 달라붙는 자발성과 적극성들이 활동가들 마음 속에서 이미 상당정도 무너져 버린 것이죠.
지금 누구나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의 전망으로 말하지만, 단위노조로 들어가 보면 기업별 주의 한계 속에 갇혀 관료주의나 타협주의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서 꿈쩍도 안하는 양상입니다.
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언론을 총동원하고 물리력을 총동원하여 박살내겠다고 나서는데, 민주노조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운명을 걸고 싸울려는 계급적인 긴장감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총파업 무산과 김대중정권 퇴진
[사회] 이제 올해 투쟁이 더 이상 발전해 나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7월 5일 총파업 무산’에 관련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아울러 ‘김대중정권 퇴진’을 내건 것이나 ‘7월 5일 총파업’을 결정한 것에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는 의견들도 있는데, 이와 관련된 얘기도 함께 해 주시지요.

[조돈희] 7·5 총파업은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분쇄, 구조조정 분쇄, 김대중정권 퇴진 등을 목표로 했었는데, 그것은 적절한 결정이었습니다. 무리한 일정이었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7·5 총파업을 결정하는 과정은 상당히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최상급 지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파업의 문제를 놓고 내리는 결정다운 긴장감과 책임감이 수반되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7·5 총파업 결정은 이후 적극적인 조직화로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주어진 정세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돌파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데, 상층 지도부의 태도도 단사 지도부의 태도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김희환] 98년 이후로 노동조합이 처한 조건은 완연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임단투 중심으로 했던 운동이라면, 이제 끝없이 전개되는 구조조정에 놓인 상황 속에서 총파업은 필연적입니다. 총파업이 되지 않고서는 구조조정은 저지하기도 힘든 상황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 조합원들은 총파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만연합니다. 총파업을 철회함으로 해서 대중들이 갖고 있는 심리적 부담도 커진 거지요. 예전 같으면 집행부가 총파업 때리면 그냥 가는 건데, 이젠 정말 하는 건지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하게 되니 큰 문젭니다.
그리고 7·5 총파업은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 아닙니까? 결정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결코 비쳐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총파업을 할만한 사업장은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현중에서 파업 들어갔다고 해도 몇 명이나 했습니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세동에서 조합원 7명인데 파업한다고 해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겠습니까? 하지만 그 동지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그 모습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총파업이 가능한 곳은 해야 하고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조정에서 총파업은 필연적인 것인데, 이를 내부적인 문제로 철회시키는 것은 운동의 대의가 아닙니다. 투쟁을 더 크게 만들고 아니고를 따지기 전에 기본적인 책임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합니다.
대중과의 약속은 지키는 자세가 노동조합의 자세, 집행부의 자세, 활동가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정권에 타격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투쟁은 새롭게 힘을 모아서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장노동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진짜 회복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집행부 책임만 묻는 것도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집행부 책임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문제가 있다’ 이런 솔직한 대화 속에서 상호인정이 되면서 새롭게 운동의 전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안기호] 만일 효성투쟁이 연대투쟁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태광이라 하더라도 80여일을 넘기는 파업에서 천여명을 묶어세울 수 있었겠는가, 공공부문인 민주버스의 파업이 이렇게 끈질기게 갈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운동을 투쟁적으로 살려 나가는 데 있어서 연대투쟁의 의미와 성과들을 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희환
‘김대중정권 퇴진’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관철시켜 나가는 자본과 정권을 타격하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주요한 전술적 구호로서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노동자의 월드컵 총파업을 만들어 내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얻은 것과 앞으로의 과제

[사회] 마지막으로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얻은 점은 무엇이고 그것들을 토대로 해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이겠는가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희환] 태광을 본다면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려고 자본이 눈이 뒤집어져 있다는 게 보입니다.
정리해고 사업장에서 태광처럼 정리해고 대상자 수의 배도 넘는 천여명이 80일이 넘도록 파업투쟁에 참가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정리해고를 앞에 놓고 조합원들의 판단은 사실 간단합니다. 노동조합이 내 일자리를 보장하느냐 회사가 보장하느냐 이런 문제로 접근해 갑니다. 결국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이 가진 모든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게 정리해고 싸움이지요. 평소에 민주노조에 대한 신뢰가 조합원 속에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거나, 처음부터 싸움을 준비하지 않고 단호한 의지가 내용적으로 결합되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무너지는 거지요. 대우자동차처럼.
태광의 경우 현장 활동가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잘 해왔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조합원들 의식 속에 민주노조에 대한 희망이라는 게 있었던 거지요.
올해 투쟁은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조합원들 입장에서 보자면 ‘저런데도 파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간에는 울산에서 파업했다 하면 자동차 중공업 이런 정도였는데, 이제는 태광 효성 같은 화섬사들에다가 민주버스도 하고 정화환경도 하고 농협도 하고 입체적으로 파업 양상이 벌어지면서 ‘저럴 수가 저런데도 파업을 한단 말이야, IMF를 통한 구조조정 문제가 전방위 사업장으로 대단히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제가 민주버스 교육을 가서 내년에는 민주노총 지침으로 버스도 세우고 정화환경 아저씨들도 파업하고 자동차도 멈추고 중공업도 파업하고 화섬사들도 한번 더하고 그래서 모두가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했더니 와 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더라구요.
바로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IMF를 통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문제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생존의 문제를 던지고 있는지, 또 모두가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사업장만의 싸움으로 국한되어 있었지만, 구조조정이 들어오면서 울산지역에서도 자본과 노동이 계급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일반 조합원 대중이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연대투쟁이라든가, 자본과 노동이라는 계급적 대립이라는 말이 앞으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조돈희] 그렇습니다. 최근에 현대중공업 현장 활동가들하고도 비슷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과거 투쟁이 금속 중심이고 임단투 중심이었다면, 이제 화섬, 버스, 정화환경, 전교조, 공무원들까지 그야말로 계급적 대립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만큼 활동가들의 의식부터가 기업별 의식을 넘어서서 계급적 연대의식으로 시급히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활동가들 스스로 직접적인 연대와 더불어서 자기 사업장의 현장실천에서 적극적인 연대투쟁을 조직하고 호소하고 직접 주도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노동조합이 하지 않더라도 파업을 해낼 수 있는 대중적 권위를 확보해 내기 위하여 현장조직들이 일상적인 자기실천을 열심히 벌이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희환] 과거에는 ‘참여속의 비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참여 속에서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고 수정해 내고 했었는데, 요즘엔 참여속의 비판이 안되고 분열속의 비판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대립이 분명해지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희망을 줄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현장활동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일상 활동을 강화시켜 내는 문제가 연대투쟁의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연대투쟁까지도 무너지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안기호] 투쟁을 중심으로 해서 다 뭉쳤다는 것이 올해 가장 소중한 의의인 것 같습니다.
노동단체 연석회의도 만들고 연대투쟁실천단도 만들었는데, 그 투쟁의 성과를 모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투쟁을 중심으로 해서 뭉친다면 그게 갖는 한계도 있겠지만 우리 운동이 앞으로 계급성이나 전투성에 바탕하여 산별노조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동력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IMF를 졸업했다고 한편에서는 떠들어대는데, 2002년에 가면 살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월드컵 축구가 내년에 있는데 노동자의 월드컵 총파업을 만들어 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프랑스나 서구 유럽에서 하는 것 보니까 시원하던데 말이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욱 큰 투쟁으로써 핵심적인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사회] 오늘의 대담이 울산의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들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담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태그

울산총력투쟁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