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0일 총파업에 돌입한 후 200여일에 가까운 장기투쟁을 벌인 전국건설운송 노조 조합원들을 만났다. 전국단위의 중앙집중 노숙투쟁을 정리하고, 분회별 투쟁으로 전환한 상태여서 농성장이었던 당산철교는 조용했다. 몇몇 분회는 사측과 교섭을 해서 업무에 복귀했고, 몇몇은 아직 사측과 조율 중이며, 어떤 분회들은 투쟁을 접고 백기투항을 했다. 이런 상황이어서 그런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지친 표정들이 역력했다.
정부는 사측 옹호, 사측은 버티기
레미콘 기사들의 업무가 개별적이라 단결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신생노조다 보니 경험도 부족했다. 생계도 막막했다. 그러나 건설운송노조 조합원들은 200여일 동안 장기투쟁을 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때문에 정규직에서 개인사업자를 빙자한 특수고용직으로 전락하면서 이들은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형편없는 운송단가를 올리기 위해 이들은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합법성을 인정받은 노조를 인정 못하겠다며 버티는 사측만을 옹호했다. 이들의 200일 투쟁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설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조합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200여 일이 넘는 투쟁을 더 이상 계속 끌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우리 분회에서도 대부분 투쟁에서 이탈했죠. 생계문제를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아직도 문제가 남아 있어요. 결국 우리 동력이 약해진 걸 확인하더니 회사는 '노조를 탈퇴해라', '유재필 한국레미콘 총연합회 회장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반성문을 써라'라고 합니다. 이런 건 정말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래서 몇몇 동지들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연속이 된 200일 투쟁
조합원의 얘기 속에는 오랜 투쟁에도 성과가 부족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정말 투쟁다운 투쟁을 못했어요. 여의도 노숙투쟁, 당산철교 노숙투쟁 등 200여 일 투쟁이 계속 희망을 기다려야만 하는 지리한 투쟁이었죠. 노동부 차원에서 중재를 하며 협상에 임하라고 사측에 권고를 해서 며칠을 기다리면, 사측은 다시 이미 계약해지된 조합원들과는 단체협약을 할 수가 없다며 오리발을 내밉니다. 그러면 며칠 더 기다리다 싸움의 사안을 놓치고 하는 수 없이 기다리는 거죠. 여의도 도끼만행 침탈 때에도 아쉬움이 많았어요. '다른 지침이 있기 전까지 차안에서 대기하라'는 지침이 전부였으니까요. 당하고 있어야 매스컴의 효과를 본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정말 당하고 있는 우리들은 비참했습니다."
법적으로 인정된 노동조합에 대한 교섭 거부, 부당 해고,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인력 투입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레미콘 사용자에 대해 검찰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며 방관했다.
그 때 레미콘 노동자들은 저들이 휘두르는 도끼에 가슴을 졸이며 방패와 곤봉에 찍혀 죽어갔다. 그런데도 여론화와 사회적인 압박에 기대어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을 '기다리게' 했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투쟁으로 전선을 이끌어가기보다는 '부당노동행위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슬로건과 여론화를 통해 압박을 가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주체를 훈련하고 강화하는 투쟁 없이 여론화에만 초점을 맞춘 투쟁은, 노동자 투쟁의 파급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무기력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장기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남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투쟁의 힘을 누가 빼앗는가?
"돌이켜 보면, 4월 10일 상경투쟁 보다는 그 전에 있었던 공장점거 투쟁이 효과가 컸어요. 그 당시 회사는 거의 마비상태로 고사 직전까지 갔죠. 사회여론화에 초점을 맞춘 상경투쟁으로 현장은 다른 인력에 의해 다시 정상가동 되었거든요. 사후 평가이긴 합니다만 상경투쟁보다는 현장투쟁이 더 적절했던 것 아닌가 합니다."
법과 제도, 언론은 모두 자본의 하수인이다. 우리의 투쟁과 주장을 그들에게 위임하는 순간 그들은 우리 주장을 왜곡하고, 투쟁의 힘을 빼앗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투쟁 전망을 자신의 힘에 의지해서 열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와 활동으로 현장과 생산을 장악해 실질적으로 생산에 타격을 입히는 현장 투쟁, 현장정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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