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노동자 교류회를 다녀와서
지난 9월 17일부터 23일까지, 그러니까 대용노조가 CCTV철거와 갖은 노동탄압을 저지하기 위해 한창 파업을 벌이고 있던 때 민주노총 일본방문단은 13년째에 이른 한·일 노동자 교류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날 처음 타 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잊지 못할 어떤 아픔 같은 감동을 느꼈다. 점으로 보이는 산과 바다의 풍경보다는 이제는 아이를 기르고 공장 아닌 가정에서 일하는 주부가 된 아세아스와니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이 먼 길을, 그것도 13년 전에 향했구나, 얼마나 한맺힌 시간이었을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 임금을 체불하고 도망간 사장을 쫓아 이 먼 곳까지 향한 그녀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세아스와니로부터 13년간 이어온 한일 노동자 연대
6박7일간의 이번 방문에서 잊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오사카시 니시나리(西成)지역 견학이다. 이곳에는 공공직업안정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일취업센터 정도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2만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노숙하거나 쪽방에서 잠을 잔다.
여기에는 노숙자와 일용직 건설노동자 수백명이 아무 보호막도 없이 건물 1층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전항만노조 건설지부 니시나리 분회는 지금은 단 두 명이 일하고 있지만 69년 결성 이후부터 이곳에서 이들의 구직급여를 보장하고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니시나리 분회는 매일 이곳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며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보장을 요구한다. 최근 일만호가 나왔다. 천일도 아닌 만일이라니.
또 이들에 대한 '무능'하고 '더러운'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사회적 연대'를 호소하고 이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실업과 빈곤이라는 국가에 의한 '배제'는 남한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니시나리 지역에서 작은 도로를 건너면 아주 화려한 상가가 펼쳐진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일용노동자와 노숙자들은 그렇게 그곳에 유배돼 있었다.
니시나리 분회 사무실은 가정집 2층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엔 그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다 숨진 열사들의 사진과 활동사진, 오래전 붙여졌다는 레닌의 사진이 빛이 바랜채 그렇게 세월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낡은 버스만이 그들의 치열했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한 노숙자의 장례식으로 공원이 붐볐다. 공원 주변은 물론 노숙자들이 천막을 치고 살거나 맨 땅에서 잠을 자는 곳이다.
다른 하늘, 그러나 고통은 같아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일본에도 속하지 않은 재일본고려노동자다. 이들에게 식민의 역사와 전쟁과 분단의 역사는 그들이 껴안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현실이다.
동등한 사회구성원이 아닌 이들 '소수자들'이 제도적·사회적 억압에 저항한다는 것은 더 이상 발붙이고 살 수 없음을 뜻한다. 떠나오기 전날 그들의 주최로 열린 송별회에서 나는 재일본고려노동자연맹 서기장인 김옥염 선생님께 그만 책임못질 말을 해버렸다.
"한국에 돌아가면 교포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께요."
게다가 눈물까지 터져버렸으니...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헌법9조 개악에 반대하는 집회.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패권은 일본에서 그 징후가 심각했다. 미일동맹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파병을 금지하는 헌법9조를 개악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은 미국 테러를 계기로 더욱 강화될 것이었다. 특히 헌법9조를 대신해 파병과 군사적 행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주변사태법은 공항이나 항만과 같은 공공건물뿐 아니라 물자수송과 폐기물 처리까지 민간에게 강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지자체 단체장이 이를 거부할 경우 징계와 사법처리까지 가능하게 한 악법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일본을 다녀오는 시간 내내 옥쇄파업을 준비하던 고하켐 노동자들과 천일간 투쟁하고 있는 개정병원 노동자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세상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10년전 아세아스와니의 경험은 고하켐노조, 개정병원노조, 대용노조, 세큐리트노조로 이어지고 있고 지금 우리 삶은 너무 힘들다.
노동법 개악이 다가오고 있다. 날이 갈수록 자본가들의 버티기는 노동자 숨을 죽이기에 충분하다.
니시나리 분회 실무자에게 제도개선 외의 투쟁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렇다며 끄덕이던 그 사람은 그때 눈이 텅 비어 있었던 것 같다.
벼랑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때 차라리 벼랑이 되자던 어느 시인의 말대로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하나. 십년지기 '노동자 교류의 힘과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여기 전북지역에서 더욱 거침없는 연대로, 견고한 벼랑으로 그렇게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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