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호/특집] 제국주의자들의 '대테러전쟁' vs. 진보진영의 '반테러리즘/반전평화' 캠페인

제국주의자들의 '대테러전쟁' vs. 진보진영의 '반테러리즘/반전평화' 캠페인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

소리 없이 진행되던 제국주의자들의 '대테러전쟁'은 이제 요란한 폭격음과 함께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9·11 테러공격 이후, 그동안 세계 각국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은 부시 행정부의 '보복공격'과 '폭력과 테러의 악순환'을 우려하며, '반전평화'를 외쳐왔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보복공격 반대' '반전평화' 캠페인은 전세계 진보진영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슬로건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세계 진보적 사회운동 진영의 반테러리즘·반전평화 캠페인은 미 지배엘리트들 및 자본가, 그리고 그 동맹군들의 9·11 테러에 대한 폭넓은 활용에 비하면 접근 방법 및 문제설정이 협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 정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테러리즘을 비난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어떠한 군사 행동도 지지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미국에 의해 "깡패국가"로 낙인찍힌 국가들-북한, 이라크 등-까지도 그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테러리즘에 대한 비난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테러리즘 비난의 행렬은 그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세계 각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세력들의 성명서와 논평의 맨 앞에는, 9·11 테러에 의해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귀가 배치되었다. 진보진영의 반테러리즘 선언은 사실 다양한 사상적·이데올로기적 배경과 맥락을 갖고 있다. 즉, 어떠한 형태의 폭력에도 치를 떠는 평화주의에서부터 테러리즘은 다수자 혁명에 반하는 좌익기회주의일 뿐이라는 혁명적 맑스주의자의 관점에 이르기까지,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의 맥락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시 그리고 현재까지도 진보진영의 반테러리즘 선언에는 서로간의 공유된 정세적인 맥락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핵심적으로 근래 들어 일정 활성화되어 왔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의 반격과 국제연대투쟁의 성과를 방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국제주의적 직접행동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9·11 테러공격'과는 질적으로 차별적인 것임을 선언하여, 향후 있을 수 있는 지배계급의 공세를 예방하고 향후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반테러리즘 선언은 분명 위와 같은 정세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것의 역효과를 경계해야 할 처지에 이른 것 같다. 먼저, '테러리즘에 대한 정의' 자체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반대는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반대와 동일시되어, 자신의 삶과 생존을 위해 '국가의 폭력'에 맞서 억압받는 민중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방어적 폭력'까지도 부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멕시코 정부에 의해 하루에도 수많은 원주민들이 살해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야 원주민들은 결국 '총'을 들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폭력이었고, 방어적 폭력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 누구도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FZLN)을 테러리즘이라 비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 '정의'도 '대상'도 모호한 테러리즘을 비난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테러리즘이며, 누가 테러리스트인가'라는 점이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는 '테러리스트'일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몇몇 정황들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부시 행정부는 이미 '반테러법 2001'을 의회에 제출해놓은 상태인데, 그 법안에 따르면 전화·인터넷 메일 등 모든 형태의 통신 수단에 대한 도·감청을 할 수 있으며, 범죄혐의자 신원조사 및 자금추적에 있어서의 규제가 완화되었고, 이민자 및 외국인 방문자에 대한 감시·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 법안은 테러 근절 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종적·민족적·정치적 차별을 더욱 강화시키는데 활용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영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국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신분증 도입을 고려하고 있고, '급진적'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을 이미 '테러리즘법 2000'에 의거해 '테러리스트'로 규정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더욱이 이러한 미국과 영국에서의 분위기는 유엔을 통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엔은 테러의 항구적 예방을 위해 모든 회원국은 테러리스트의 자금줄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테러리스트에 대한 직·간접적 재정지원을 형사범으로 규정하는 각국의 입법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회원국들에 대해 '반테러법'의 제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대테러전쟁'은 전세계적인 공안정국의 형성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민주주의적 기본권에 대한 박탈, 반자본·반신자유주의 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탈리아 수상인 실비오 베를루스쿠니의 "이슬람·테러리스트 그리고 지구적 자본주의 반대자들은 모두 똑같이 '문명의 가치'를 위한 '서구 십자군'의 공격 목표"라는 발언에서 극적으로 확인된다.

현재 좌파와 우파는 "테러리즘은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악(惡)이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뿌리뽑는 것이 시대적 과제이다"라는 점에서 공유하고 있다. 우파는 내심으로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간에 "새로운 유형의 전쟁"으로 근절시키겠다고 나서고 있고, 좌파 및 사회운동진영은 - 상당한 스펙트럼 차이가 있지만 - 테러리즘의 근원인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전세계적인 불평등과 부정의,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등-이 해결되어야 하며, '전쟁은 또 다른 테러와 폭력을 낳을 뿐'이니 '평화를 가르침'으로써 테러의 근절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전평화 캠페인이 현재의 전세계적인 공안국면을 돌파하는데 충분한 전술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핵심적으로 부시 및 자본가들이 대테러전쟁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점이다. 만약 대테러전쟁이 테러의 근절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테러리즘을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 전쟁인가 아니면 평화인가?'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진보진영이 헤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지배엘리트들은 '새로운 유형의 전쟁'을 국내외적 사회질서 재편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국내적인 차원에서 보면, 앞서 살펴보았듯이 중앙정보국(CIA) 및 연방수사국(FBI)의 수사권한이 무제한적으로 확대되어,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기정사실이 되었고, 더욱이 '국가안보·테러근절'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본가들의 오래된 요구들이 정책화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죌릭은 '무역협상 권한을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이양하는 신속협상권을 부여하는 것이 9·11 비극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응방법'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법인세 및 자본이득세의 감면 또한 '대테러전쟁'이란 이름아래 제안되고 있다.

분명 9·11 테러로 형성된 국면을 신자유주의자, 군국주의자, 인종주의자, 극우보수주의자 등이 주도하고, 자신들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의제들을 제기하고, 법제화시키는데 활용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부시의 대테러전쟁은 현재 국내외 민중들의 기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통제와 공세를 위한 영속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대테러전쟁이 '새로운 유형'이라면, 진보진영의 '반전평화' 캠페인 역시 '새로운 유형'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테러근절 = 반전평화 캠페인'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속에서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차별의 심화, 기본권 후퇴라는 파시즘적 공세를 막아내는 데는 아무리 생각해도 역부족이다. 우리에게는 현 상황에 대한 보다 세밀하고 포괄적인 접근과 대응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국제연대 투쟁의 성과물을 옹호·발전시키고, 가속화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파시즘적 공세에 맞선 국제주의적 입장과 연대를 심화시키고, 강화시켜야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계 질서 및 사회질서의 전망을 둘러싼 투쟁의 첫 번째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

* 이 글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에서 지난 10월 5일(금)에 개최했던, [9·11 테러와 대테러전쟁, 그리고 우리의 대응] 토론회에 제출되었던 발제문을 요약·보완하여, [세계화와 민중](국민행동 발행)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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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테러 , 테러리즘 , 보복공격 , 반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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