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사람]인종과 국적을 넘는 만국의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

4번째 참세상사람은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이윤주'지부장이다. 남아공에서 있었던 세계 인종 차별 철폐 대회보고 준비와 국감 준비로 한창 바쁜 와중에 틈틈히 시간을 내서 몇 차례의 인터뷰를 하고서야 간신히 4번째 참세상 사람의 인터뷰를 끝낼 수 있었다. 이번 참세상 사람에서는 이주노동자 지부 건설 과정과 세계 인종 차별 철폐 대회 등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 졌다. 인터뷰 과정이 길었던 만큼 참세상 뉴스에 성심껏 인터뷰에 응해 준 이윤주 지부장께 다시 한번 뉴스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주노동자 운동을 해나가는 데 집안 문제 등은 없는지요.
워낙 학생운동 시절에 심하게 부딪힌 적도 있고(가출!),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시작한 전업활동이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일정 포기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실 구속경험 때문에 부모님은 "얘는 사회에 나가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이젠 포기의 경지를 넘어서 달관하고 계십니다.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부모님과 남동생, 4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남동생은 얼마 전까지 태권도 도장을 하다가 지금은 김포 검단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식당을 하시 구요. 자식들이 생계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 환갑이 넘어서도 고생하고 계시죠.

학생운동을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학생시절 백기완 선본에서(92년대선)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는데, 2%에도 못 미치는 선거결과를 보며 정말 충격 받았습니다. 한창 합법정당과 민중후보 전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 때여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광고, 선거마케팅'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습니다. 민중후보에게도 선전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막상 정치광고 수업을 위해 광고학원도 다니고 광고회사를 다녔지만, 만 2년 정도의 기간동안 회의만 들었습니다. 선배 중 한 사람이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배울게 없다고 돌아와서는 유럽과 한국의 정치풍토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광고회사에서 당시 야당 선거일에 좀 관여하면서, 저들에게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사실 배울건 없고 심신만 피폐화 되는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아주 우연하게도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한참 지난 학생운동 관련 건으로 구속 되었었구요. 당연히 회사에서는 짤렸고요. 복직투쟁하고 싶은 맘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에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게 되었군요.
정치광고 업계에서 하산을 한 이후, 물을 찾는 물고기의 심정으로 노동운동 관련 일을 찾았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란 단체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시만해도 아는 친구가 이 단체에서 일을 했기에 "바리케이트"란 이주노동자 관련 영화의 공짜표는 받았지만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존재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외노협과 시설관리 관련 한 노조에 대한 제안이 있었는데 외노협을 택했습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어쨌든 낯설지만 노동자운동이라는 점과 막연하게 갖고 있던 국제연대에 대한 지향 때문이었죠.

이주노동자지부를 만들게 된 과정은 어땠습니까?
97년 11월 외노협에서 일을 하게된 이후, 처음 1년 간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운동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의욕으로 뭔가 재충전을 바랐던 저의 마음에 비해 당시의 현실은 노동운동과 많이 거리가 멀었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저와 대부분이 종교적 신심으로 활동하시는 분들과의 심적, 정치적 괴리는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이나 각 공동체(이주노동자들의 모임)의 자주성에 대한 믿음은 현실 속에서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래도 심하게 고전을 겪으면서도 어쨌거나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노협이라는 조직 골간에서는 힘들었지만 그 때 만난 몇몇 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지금의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를 건설했다고 볼 수 있죠.

외노협과 입장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2000년, 노벨평화상을 노리던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인권기구 신설'과 더불어 내놓은 3대 인권과제 중 하나로 '고용허가법안'란 것이 제기되었었습니다. 이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인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대체법안으로 상정되는 것이었기에 표면적으로는 그럴 듯 해 보였습니다. 제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외노협에서도 민주당과 노동부가 내놓은 '고용허가법안'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죠. 저는 반대했습니다. 95년부터 '외국인노동자 보호법'이란 이름으로 제기되었던 고용허가제의 심급 중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이주노동자가 처음 한국에 올 때 부터 직장 선택의 자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배치되게 되고, 기본적인 언어 및 기술 교육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주노동자가 노동 3권은커녕 노동 기본권도 누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계약해지)당하면 어떤 법률적 구제를 받을 겨를도 없이 14일만에 추방당해야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제노동과 굴종이 보장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동부는 노동 3권을 준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습니까.

외노협에서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반대입장과 찬성입장이 치열하게 맞붙었습니다. 조용한 사무국장이 어쩌면 최초로 강하게 반기를 든 것이기도 했죠. 역시나 조직질서(?)에 의해 합당한 논쟁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자의반타의반 외노협을 나오게되었고, 외노협 안에서 뜻을 같이했던 자원활동가들과 몇몇 센터의 실무자들이 의기투합하여 '고용허가 법률안 반대를 위한 단기적 투쟁체'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쟁취와 이주취업의 자유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투쟁본부'였죠.

이주노동자 투쟁본부 시기의 활동은 어땠습니까?
이노투본 시기는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동지들의 관심과 애정을 뜨겁게 확인하면서 너무도 신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동지들의 열정을 확인하면서 한국인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고용허가제 반대를 위한 행동보다는 마치 물만난 물고기처럼 '노동운동으로서의 이주노동운동', '노동자 국제주의'를 역설하고 연대집회에 결합하는데 열중했었습니다. 이노투본은 단기적 투쟁체로 건설되었지만 이주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임이 확실했습니다.

'이노투본'에서 '이주노동자 지부'로 가게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1년 3월, 서울지역여성노조로부터 뜻밖의 제안 즉 노동조합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 노동자와 노조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이라는 판단하에 각 노조 및 운동진영에 어떻게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조건을 만들 것인가를 놓고 2001년 계획을 수립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쉽게 결의했습니다. 서울지역여성노조가 기간 보여준 전투성을 신뢰했고, 우리 주변의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할 때 그 분들에게 단체 회원으로서의 지위보다는 조합원으로서의 자격이 더욱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말 통합을 결의하고 서울지역여성노조가 '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로 규약을 변경하였습니다.

이주노동자 지부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 되어 있습니까?
이주노동자 지부는 지난 2001년 5월 19일 조용하게 우리끼리 창립총회를 하면서였습니다. 보안 등의 문제로 우리끼리 했지요. 그리고 26일엔 연세대에서 많은 동지들의 축복 속에서 공식적으로 우리의 출범을 알리는 '투쟁선포 문화제'를 했습니다.

총회에서 지부장과 사무국장 및 각 집행 체계, 대의원들을 인선했습니다. 저는 지부장으로 선출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은 보안문제 등의 이유로 인해 지부장이 한국인이지만, 이주지부는 명확하게 이주노동자 자신의 조직입니다. 지금은 한국인인 제가 하지만 적어도 1-2년 후에는 이주노동자 지도자가 많이 나올거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여러분이 노동자라는 자신감과 노동자의 길을 확신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지부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주노동자 자신의 조직일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 운동가를 만드는 모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4명의 상근동지가 서울과 마석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집행국으로서 비상근 활동가가 약 10여명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인 활동가의 비율이 많이 높습니다만, 이주노동자들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리고 조직 재정이 받쳐진다면 더 많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주노동자 지부가 주력하고 있는 지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첫번째 문제는, 이주노동자 주체화입니다. 노동자로서의 각성과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의 삶을 산다는 것이 우리 조합원 모두의 삶의 화두가 되길 바랍니다. 비록 본국에서는 학생이고 선생이었을지라도 노동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자신을 이주노동자로 내몬 세계 자본의 질서에 대한 저항은 한국과 자국 정부에 대한 저항정신을 뛰어 넘으므로써 쟁취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수혜자'로서 동정의 대상이었던 이주노동자들이 동정의 시선을 박차고 당당한 연대와 단결의 주체로 일어서는 과정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한국인 노동자와의 단결과 연대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우리의 힘이 미약하기에 동지들의 함이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주노동운동이 전체 계급운동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진전하기 위한 작은 시험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운동이나 장애인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의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죠. 저를 비롯한 평등노조 이주지부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운동가가 아니라 노동운동가로 거듭나고 굳건히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판에 계급적 단결과 국제적 연대를 실천하는 작은 몸짓이자 선동이 되고자 합니다.

조합원 일상활동은 어떻게?
사실 서울지역은 아직 모임이 안착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매주 일요일 지역별 정기 조합원 회의를 합니다. 회의를 통해 조합원 사는 이야기와 조합 활동에 대하여 공유합니다. 불러주는 동지들이 많아서 매주 연대단위 방문 및 행사 참가에 대한 일정공유와 준비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신입조합원은 교육을 받게 되어 있고 기초적인 자료는 영어로만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앞으로 일상적인 조합원 교육을 위하여 보다 충실하고 친절한 자료들이 제작되어야 합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각 국의 언어로도 제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정과 번역능력이 문제이지 모든 노동자는 자국의 언어로 자신의 권리를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이노투본 시절에 '이주노동자 연대신문(Migrants' Voice)'을 한국어, 영어, 네팔어, 방글라데시어로 2회 발간하였는데, 그 편집팀을 이주지부 특별위원회로 그 위상을 세우고 계속 발간하려고 합니다. 이는 조합원과 특히 이주노동자 대중의 정치신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합원 취미모임이 있는데, 그림반, 연극반, 노래반, 방글라 투쟁춤반, 사진반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모임활동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표현해나가고자 만든 반들이고요, 참여하신 분들이 다들 재미있어하고 계십니다.

향후 이주노동자 운동의 방향 및 과제를 설명해 주십시요.
첫번째 투쟁과제는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 사면 및 노동허가 쟁취입니다. 한국엔 이주노동자의 70%에 달하는 20만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소위 불법체류자입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외국인력 도입정책으로 회피하고 지난 10년 간 암묵적으로 불법체류자를 양산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체류자격이 불안정하니 당연히 노동권 탄압도 심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투쟁도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체불된 임금이나 폭행에 맞서 또는 사냥하듯이 자행되는 단속과 추방에 대하여 이주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데 늘 이 문제가 걸림돌입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자행한 고의적인 노동권 침탈의 규탄하며, 노동자로서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을 벌여나가고자 합니다.

둘째는 연수제도 폐지입니다. 아직도 20만원의 임금을 받는 현지법인 연수생은 물론, 중기협 등 사용자 집단이 유입을 관장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생(연수취업제)들은 정당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근로기준법도 연수생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노동부도 편법적인 외국인력 정책이라는 것을 시인하였지만 사용자 집단의 강력한 대정부 로비와 압력에 밀려 연수제도는 그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명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과 사회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를 박살내고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당당히 쟁취해 낼 것입니다.

셋째는, 특히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일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 완전 쟁취의 문제입니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 제 관계법은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노동법의 완전 적용과 더불어 노동법의 후퇴를 막아내고 노동자의 편으로 재편시키는 투쟁에 한국인 노동자들과 더욱 열심히 결합할 것입니다.

이번에 인종차별 철폐 대회에 참가 하셨는데. 참가하게 된 배경과 준비 과정에 대해서.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한 인권활동가 선배로부터 한국에서도 이 대회를 준비하라는 제안을 받고 이 대회를 알았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정부든 NGO든 2년 전부터 착실히 준비하여 자신들의 요구과 입장을 선언문과 행동계획에 넣기 위한 치밀한 준비들을 해왔습니다. 정부간 잇권 다툼은 아주 심각했었죠. 사실 이주노동자 국제 연대 진영도 나름대로 준비했지만 많이 부족하였죠. 한국에서의 준비 상황은 말할 나위도 없구요. 올 초부터 발등에 불떨어진 심정으로 몇 단위가 모였습니다. 여러 단위에 제안했지만 많은 단위가 모이진 못했습니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구미 가톨릭센타가 연대한 단위인 '이주·여성 인권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모여서 '참가단'을 구성했습니다.

다녀오고보니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의 시야가 너무 협소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운동 단위와 난민, 인신매매와 성착취 부문만 고려하였었는데,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노동운동진영이나 동성애 단위, 여성단위, 과거청산 운동 단위 등등에 더욱 많은 제안을 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용은 대회 주최측으로부터 많이 지원 받았고, 안양 전진상복지관의 관장님의 후원과 각 단체의 미미한 갹출로 별탈없이 지내다 왔습니다. 95년 제네바 인권대회에 갔던 활동가들은 숙소 비용이 없어서 천막치고 노숙했다던데, 저흰 3인용 콘도같은 호텔에서 6명이 잘 지냈습니다.

인종차별 철폐 대회의 성과가 있다면?
인종차별철폐대회에 다녀 온 후 많은 동지들의 관심에 놀랐습니다. 가기 전까지만해도 썰렁(?)했고, 이제까지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했지만 이런 관심은 처음입니다. 동지들의 관심이 이 대회가 아니라 향후 '노동운동 내에서의 인종차별 척결' 투쟁으로 이어지질 바랍니다. 가기전 까지는 몰랐는데 가보니 민주노총이 가입해 있는 국제자유노동자연맹(ICFTU)에서는 이 회의를 위하여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더군요. 이주노동자, 원주민 을 비롯한 노조 내에서의 인종차별 종식과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한 노조의 역할에 대하여 포럼과 자료도 준비하였더군요. 서유럽, 남미, 북미 등지에서 온 노조 활동가들의 경험과 견해를 듣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 또는 서유럽 출신과 동유럽 출신 등 주로 주류 노동자와 유색인종과의 갈등이 중심 화두였습니다. 여러 민족과 국가 출신들이 계급의식으로 단결하고 인종적 갈등을 없애기 위한 논의가 많지는 않아서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영어가 상당히 짧아서 심도 깊은 토론은 못했습니다. 질문은 했지만 사실 저 개인적으로 스스로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인 노동자와의 문화적 인종적 갈등 뿐 만 아니라 다양한 이주노동자간의 인종차별 해소를 위한 고민과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번 대회의 가장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인종차별 철폐대회 내내 최대 쟁점은 물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이었습니다. 두 NGO 대표단이 물리적 충돌까지 할 뻔 했습니다. 네팔의 최하층 천민 계층인 달릿(Dalit) 노인들이 정부간 회의 기간 중 단식도 불사하는 등 몸으로 절규하는 투쟁도 모든 이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 발표한 보고서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석에도 사무실도 있다던데, 마석 사무실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평등노조로 이주지부를 발족하면서 서울 이외의 지역 이주노동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일하는 한 조합원의 기숙사에 가보니 말이 의정부이지 서울까지 오는데만 3시간이 걸리는 산골짜기였습니다. 경기북부의 중심으로 경기도 남양주에 사무실을 하나 구하고, 이노투본 시절에 쓰던 미아동 사무실을 뺏습니다. 본조가 있는 성수동으로 서울 사무실을 옮겼죠. 조만간 경기 남부지역에도 이주노동자들이 가까아 다가 올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사실 지금 있는 사무실 임대료도 3개월이나 밀렸는데 집주인이 독촉을 안해서 너무나 고마와하고 있습니다. 성수사무실 전화비도 체불됐다가 한꺼번에 내고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재정 안정이 가장 큰 문제인데... 별 방법은 없습니다. '돈'때문에 활동을 못해서는 안된다는 소신으로 밀어 부치고 있는데, 동료 활동가들이 저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최근 저희가 정기적으로 재정 후원을 해 줄 연대회원을 모집하고 있는데, 많은 동지들의 관심바랍니다. 많이도 아니고 200분만 모시려고 합니다!

이주 노동자 운동에서 국제연대 투쟁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투쟁이지 않습니까?
이주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국제연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른 운동진영에 비해서 그들의 고향나라와의 연대 그리고 이주노동운동 자체를 고민하는 각국 단체들과의 연대, 정보교류 그것은 저희들에게 아주 필수 불가결한 사업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 회의나 단체간 연대회의 이런 것들이 일년에 한두차례 있어 왔습니다. 이번 인종차별 철폐 대회에서 이주노동자 관련영역은 부진했었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것들 이야기들, 결의들에서 크게 발전하거나 아니면 인종차별 중점으로 해서 이론적 영역을 밝혀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구요. 다만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특히 ICFTU에서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의 연구발표와 연구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해 그것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계획들이 국제적, 지역적, 일국적으로 어떻게 실천 계획을 가질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소속조합이기도 한 총연맹 역시도 ICFTU의 행동 결정에 따라 국내에서의 활동에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입니니다. 이 내용을 민주노총에도 보고하고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인 저희들이 다른 노동조합들과 함께 인종과 국적을 넘는 단결을 위한 사업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과제에 대한 각성과 타국에서의 행동에 어떻게 연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에 대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마찰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저는 대회 내내 폭탄이라도 터지지 않을까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느낌에 제가 죽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웃음) 그러한 어떤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감돌았습니다. 팔레스타인들은 엔지오 대회때 매일매일 스카프를 들고 국기를 들고 매일매일 선전전을 하고 거기에는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후손들, 그리고 아시아의 여런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프리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이스라엘에는 지지 그룹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더불어서 유럽에서 불고 있었던 신 나치주의자들은 인종차별 철폐대회에서도 강력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습니다. 경찰의 경계가 엔지오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삼엄했습니다.

미국의 행태에 대해서 비판이 많은데.
일단은 인종차별대회를 성사 자체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미국 그리고 과정에서 대표단을 급이 낮게 파견했다가 철수시키고 행태들에 대해서 감정들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그런 악조건속에서 법안선언문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효력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우려를 했을 대 결과적으로 그 책임은 미국정부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번 대회에서 정치적, 도덕적인 여러 가지 명분을 상실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미국 때문에 팔레스타인 활동가들뿐 만 아니라 전세계활동가들이 공분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청산하는 것은 식민지배를 받았던 민중들의 힘이 강해 지고 민중들의 힘으로 과거 지배세력들에게 배상을 받는 것은 역사적 심판이라 생각 합니다. 그 역사적 심판과 더불어 신자유주의하에서 공고화되는 제3세계에 대한 지배를 인종주의 척결의 이름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험장일 수 있었던 3차 철폐 대회가 정부들의 힘의 논리로 많이 더럽혀 지고 얼룩지워 지긴 했지만 아주 작은 첫 시도라고 봅니다. 싸움의 근거를 알리고 첫 시발을 만듦으로써 자본의 지배에 반대하는 투쟁의 힘이 싸움의 근거를 만들고 그 근거로 지속적인 반세계화 운동과 과거 청산의 원동력이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이번 미국테러에 대해서 한말씀 해 주신다면.
제3세계민중을 수탈하고 자본의 지배를 확장하기 위한 공장이었던 식민지배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청산하고 사과와 보상.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비록한 중동전쟁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지금 자행되는 인종청소를 중단하는 것. 이것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이뤄질 것인지가 결국 실망으로 끝났죠. 그 실망의 하나의 결과가 이번 폭탄 테러가 아닌가 하는 조심 스러운러운 짐작을 해봅니다. 대회에서 미국의 행패와 실망스러운 법안 선언문에 대한 분노가 표출 되었을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번 폭탄이 터지자마자 빈라덴을 주목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자연스럽게 광분한 언론에 의해 반아랍, 반팔레스타인, 반이슬람. 이러한 세계적인 분위기가 몰아가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우리가 대회내내 걱정했던 이슬람 혐오주의의 한 부분일 뿐더러 이번 대회 명칭에도 인종주의와 관련한 모든 불가능에 대해서 반대하라는 명칭이 들어있는데 그러한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모든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불관용의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인종차별 대회에서의 정신을 살려 그러한 한 집단에 대한 대량학살과 청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력히 인식하고 전쟁 도발에 대해 강력히 반대 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같은 경우에도 이미 한남동 이슬람사원에 협박전화가 걸려 오고있습니다. 근거없는 외국인 혐오증와 이슬람 혐오증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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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사람

    지부장님 너무 이쁘게 생기셨다!!!

  • 송준길

    불법체류자는 법위반자가 아닌가여
    자기나라로 보내요
    본인에게 노예생활청산하니 좋고
    우리나란 불법체류자 줄어서 좋고
    누이좋고 매부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