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를 '처음' 볼 수 없는 실제상황:
EBS의 인터넷 방송 유료화 결정에 부쳐
N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대안문화미디어팀 R.exe, pporco@hanmail.net)
친한 친구의 집을 놀러갔다가 녀석이 아끼는 소장품을 보았다. 녀석의 소장품은 다름 아닌 핑클의 공연실황을 담은 가요프로그램이었고, 그 소장품을 모 방송국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여 재생하여 보여주었다. 녀석은 하고많은 핑클 공연실황과 뮤직비디오 중 유독 이 부분만을 즐겨, 그 방송국에 문의씩이나 했다고 한다. "핑클 팬인데 그 부분만 녹화하여 제 이메일로 보내줄 수 없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면 비디오테이프를 주문하시죠".
이 대답에 친구는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있으면 보지만 꼭 필요해서 돈을 내면서까지 볼 생각은 없다'라는 대답. 이것이 현재 인터넷 콘텐츠를 바라보는 네티즌의 생각일 것이다.
지상파방송국이 인터넷방송을 유료화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BS를 시작으로 SBS가 뜻을 내비쳤고 타 방송 또한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이것이 대세라고 한다. 이미 대세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나서지를 못하는 상황은 '그것 아니면 이것'이라는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유료화실패의 많은 사례가 말해주듯이 많은 '무료정보'가 있는 상황에서 유료정보를 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언론에선 무료정보를 선호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누가 먼저 유료화의 물꼬를 틀 것인가를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EBS의 유료화결정에 많은 네티즌들은 비난의 글을 EBS게시판에 올렸다. 정부지원을 재정으로 활용하고 있는 교육방송이 컨텐츠를 상업화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는 내용들이다. 정보상품의 특성상 고정비용이 투자되고 나면 이를 복사하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비용이 들지 않는데 비해 그 비용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아마 상당한 장사가 될 것이다. 오프라인 시절에 방송분 녹화비용은 이를 복사한 테이프 값 정도였다. 이는 방송(broadcast)이라는 개념에서 유래하듯 대중들에게 넓게 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만 보겠다고 고집할 수 없고, 나만 본다하더라도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내용을 담은 테이프 값을 내는 것이다. EBS의 말처럼 그들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시설들에 대한 투자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숫자로 계산하여 콘텐츠 클릭횟수와 그에 대응하는 서버의 양으로 돌려버릴 수 없다. 어떠한 사람들이 얼마나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 가에 대한 집계가 나오고 그러한 통계를 이익으로 환산할 수 있지만 교육을 위한 정보는 상업적 가치이상이다.
접속의 시대가 온다.
프로그램 하나 당 몇 백 원이 부담이겠는가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프로그램, 모든 정보에 몇 백 원을 지불해야한다면 과연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모든 곳에서 접속할 수 있는 시점에서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없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진보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선택하는 문제라면 당연히 온라인을 포기하고 오프라인을 선택할 사람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기업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온라인은 오프라인 못지 않게 삶을 좌우할 것이다.
접속은 공동으로 할 수 없다. 매스미디어는 가족과 국민이라는 '공동'을 호출했지만 네트는 '개인'을 호출한다. 가족과 함께 인터넷을 할 수 있나? 당연히 할 수 없다. 접속은 익명의 다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원하며 이는 돈을 지불하기 편한 구조(architecture)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보의 특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상의 나의 ID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내가 누구든지 간에 나의 접속에는 비용이 들게 된다는 점에서 정보의 비배제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공공성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핑클'이 출연했을 때, 핑클을 싫어하는 이들은 말한다. "쟤를 왜 부르냐?" 이런 불만을 가진 이들은 '무엇'을 알려주는 미디어가 왜 하고많은 것들 중에 그것을 선택했냐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전파가 공중의 소유이며 무엇을 알리는 것이 공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해당 국가의 미디어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미국이라면 핑클이 왜 나오냐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핑클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보면 된다. 물론 골라본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이고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는 지불을 감수하더라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불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의 공공성이다. 가요프로그램이나 드라마는 어떤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공공성을 말할 수 없으며, 이는 지불되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꼭 오락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공공성이 없는 것이 아니며 이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방송사의 잘못이 크다. 한국의 드라마가 사실 볼 것이 없어 본다고 하지만 지불하지 않고 볼 수 없다면 이는 암울한 상황이다.
권리의 새로운 확장
정보에 대한 접근권은 당연한 권리이다. '내 이웃이 어떻게 살고 있다더라'라는 정보는 개별 미디어시대에는 맞는 개념이지만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하며 '공적인 것'에 대한 접근은 모든 것이 유료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새로운 연장의 시대, 그 언저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루하루의 변화는 앞으로를 좌우할 중요한 변인이 된다.
다시 보는 것은 유연화된 사회에서의 '다시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새로 보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EBS의 한 시청자는 인터넷 EBS의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인터넷서비스 때문에 바쁜 일상 속에서도 영어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유료화는 공공적 취지나 서비스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제공이 새로운 기술의 열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면 정보유료화는 이 기술의 가능성을 닫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은 지금 당장의 현실로는 가늠할 수 없으며 앞을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코미디 프로나 어학공부, 뉴스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접속하고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는 그 시간을 놓치지 말면 될 것 아니냐, 필요하면 돈주고 봐라 라고 할 것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이 열어놓은 가능성은 다시 대중들에게 돌려져야 한다. 이는 특히 정보를 매개하는 기술이기에 더욱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와 TV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시대. 정보접근권은 TV에만 거칠 수 없다. 이는 네트가 확장하고 접속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대, 정주하는 것이 아니라 유목해야 하는 시대일수록 유목에 필요한 생수는 이익이 아닌 권리의 차원으로 접근되어져야 한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