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과학기술과 인권인가?

왜 과학기술과 인권인가?

N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대안문화미디어팀 R.exe, pporco@hanmail.net)



과학기술은 인간의 오감의 확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오감의 확장을 통해 세상 속의 '나'이외 '다른 이'를 인지하게 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근대이후 제국의 확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멀리는 우주에서 가까이는 인간의 몸 속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팽창이 인간의 아름다운 꿈만을 열어젖힌 것은 아니다. 나치의 유태인학살, 두 번의 세계대전,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등 생각하기도 끔찍한 꿈도 현실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꿈과 그것의 확장은 사실 멀리 있는 것이었다. 좋고 좋지 못한 꿈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와는 멀리 있는 현실. 어릴 적 과학기술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자면 흰옷을 입은 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어떤 특이한 것을 발명해내는 것이었다. 발명에서부터 실용화단계까지 과학기술은 일반인과 동떨어진 특수한 계층의 소유물로만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강력한 후원자인 국가영역에서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이는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인간의 여러 가지 꿈들을 촉각에 닿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로 새롭게 바꾸어놓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영역의 힘은 시민의 일상에 뿌리박힌 채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 한편 이와는 정반대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떠한 영향을 말하는가? 사실 과학기술과 인권은 관련이 없는 주제로 보인다.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진화하고 있는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고 뒤를 돌아보면 과학기술의 오용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볼 수 있다. '진리탐구'를 위한다는 실험이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며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이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와 무차별한 개발을 불러왔는가? 이는 세계화의 시대에 더욱더 가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인권이라는 화두는 오래된 개념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릇된 국가를 상대로 한 '보편적' 인권개념이 보다 확장하여 다국적 기업이나 자본을 상대로 한 '다층적' 인권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상이 시장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특히 절실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과학기술이 일상이라는 장에서 이윤이라는 특정한 목적으로만 활용될 때 이를 둘러싼 전선은 복잡할 것이다. 먹는 것, 배우는 것에서부터 누구를 만나는 것까지 특정 기업에게 기술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이는 부를 가진 몇몇에겐 자유로운 상황이지만 대다수에겐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이는 전통적 인권개념으로 볼 땐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했는가를 법적으로 판단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권리를 침해받은 이들이 대부분 침해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신화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이 더 클 것이다. 문제는 편리함은 선택이지만 그것으로부터 얻게될 폐해는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특정한 사용을 독점한 이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영속하기 위해 또 다른 사용 방식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소수 기업가들은 배타적 권리를 세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상이 변화하고 삶의 영역이 확장하고 있는 시기에는 당연히 '인권'개념도 보완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은 법이 쫓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구체적인 침해를 포착하는 작업과 이를 둘러싼 투쟁이 없다면 당연히 새로운 법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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