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문정현 신부

"협상 갖곤 안 돼, 싸워서 풀어내야지"
"단 위원장 재구속은 현정권 부도덕성 단적으로 보여줘"

단병호 위원장 재구속에 항의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명동성당 들머리에 가면 허연 수염의 노인 한 분을 만날 수 있다. 신부를 상징하는 '로만칼라'를 하고 있진 않지만 그가 신부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정현 신부.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로서 각종 반미투쟁 현장에서는 늘 지팡이를 든 채 경찰을 호되게 꾸짖는 문 신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그가 지금은 단 위원장 재구속 항의농성장에 터를 잡은 것이다.

농성장이라고 하지만 찬바람과 이슬을 피할 무엇도 없다. 그저 맨바닥의 찬기운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을 깐 게 전부다. 다만 '단병호를 석방하라'는 현수막 하나가 이곳이 농성장임을 알려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일요일이던 7일(일요일) 정오부터 꼿꼿이 앉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온종일 장대비가 쏟아진 9일에는 하릴없이 그 비를 다 맞다가 급히 구해온 비닐을 바지랑대로 받치고, 얼기설기 엮어 '응급천막'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도 그는 등받이가 달린 앉은뱅이 의자에 기댄 채 굳게 자리를 지켰다. "이거 하나면 '로얄호텔' 안 부럽지…." 앉은뱅이 의자를 가리키며 그가 한 말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난 그는 10일 오전 바로 옆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반전평화 시국선언대회'에 참석해 시국선언문을 읽었다. 감정에 북받쳤는지 그의 목소리는 줄곧 흔들리고 있었다. 시국선언대회를 마치고 나온 그를 농성장에서 만났다.

"이 정권의 부도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지. 한 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마땅한데 노력하는 모습도 안보여. 김승훈 신부한테 그저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면 다냐고…." 문 신부가 보는 이번 재구속사태의 핵심은 이랬다. 그는 하루전인 9일 오전 천주교회 인사들과 함께 한광옥 민주당 대표(김승훈 신부에게 사태해결을 약속할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를 만나 항의하고, 단 위원장 석방을 촉구한 터였다. 한광옥 대표는 찾아온 문 신부 일행에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말을 안낀다"며 '재구속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위신을 고려하는 듯 했다는 것.

그러나 김승훈 신부는 "남은 형기를 마치는 것말고는 추가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들의 주장대로라면 김승훈 신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긴데, 세상이 공인하는 '양심의 보루'인 사제, 나아가 천주교를 모독하는 짓이다. 사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당시 전체운영위를 열어 '단위원장 재구속은 안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김승훈 신부를 통해 당국과 협의를 했던 것. 이제 와서 당국이 '오리발'을 내미니 천주교회의 분노가 얼마나 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놓고 '청와대가 검찰권 행사에 간여했다'고 시비를 거는 모양인데, 청와대는 정치하는 곳 아닌가? 다시 말해 큰 사회문제가 있으면 그걸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곳이 바로 청와대 아니냐고. 검찰의 직속상관으로서 당연히 개입할 수 있다는 거지. 세상이 다 아는 이치 아닌가요?" 문 신부는 '검찰권'을 핑계로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은 청와대쪽을 나무랐다.

이런 상황에서 문 신부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물론 하루라도 빨리 단 위원장을 석방하는 것이다. "세상에 협상으로 될 일은 없어. 싸워서 해결해야지.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무기가 뭐야, '머릿수'잖아. 노조설립도 어려운 시절 노조 만들고,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이겨내며 전노협을 건설하고, 또 민주노총을 합법화시켜 냈듯이 피어리게 싸우는 사람만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거요." 결국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건강한 노동자의식으로 단결해 싸워야 권리는 얻어진다는 것.

문 신부의 이런 '충고'는 그저 원칙적인 얘기만은 아니다. 그가 살아온 길을 더듬어 보면 나름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평생 인권과 민주화, 통일, 민족자주권을 위해 싸워왔다. 특히 전북지역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는 그가 빠지지 않는다. '단 위원장 재구속으로 어려움에 처한 민주노총이 어떻게 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묻자, 그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인다.

"말로만 '60만 노동자' 얘기하면 뭐해. 60만이 한꺼번에 1시간만 함께 싸워봐 금방 해결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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