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밤하늘에서 폭죽놀이 하듯, 미국이 퍼붓는 미사일의 화약내가 지구촌 노동자·민중들의 가슴을 싸하게 만들고 있는 요즈음 한국에서는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노동현장에서도 잇달아 임원선거가 치러지고 있으며, 오는 10월25일에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세력이 얼굴 붉히며 떠드는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니 혹은 차기 정권교체의 예비평가니 하는 것은 선거정치의 악마같은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노동자·민중들을 속이려 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선거란 권력을 위임하는 다양한 절차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선거 이외에도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절차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1980년 광주항쟁 지도부들은 직접 민주주의 방식인 집회 형식의 과정을 거쳐 그 투쟁 지도체로서의 대표성을 획득하였고, 노동현장에서 조합원총회를 통한 최고 의사결정 등 총회민주주의 방식이 가까운 예들이다.
악마의 얼굴, 천사의 얼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희망하는 사람들 중에는 많은 이가 총선이나 대선 시기만 되면 흥분하는 경향성을 드러내곤 한다. 선거투쟁으로 그 희망을 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선거정치는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선거는 권력을 위임하는 하나의 절차이자 위임된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권력집행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단이자 주기적인 권력위임의 수단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권력의 주체들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고 대상화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선거정치의 악마같은 얼굴을 이용하여 노동자 계급을 몰계급적 대중으로 우상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세력이 바로 부르주아 계급이다. 소위 대중정당 및 선거제도라는 그물망을 던져 노동자·민중들을 낚아 채 왔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정체성을 몰계급적 대중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변화시켜 버렸다.
선거정치의 천사같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다. 노동자·민중 진영은 최소한 선거정치의 악마같은 얼굴을 악용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그들과는 달리 노동자계급은, 권력을 위임받기 위한 과정과 위임받은 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이 '권력주체간의 상호 호응적 관계'를 높여낼 수 있게 선거정치를 활용해야 한다.
계급 정체성 확장 과정이 돼야 할 선거
즉 권력을 위임하려는 주체와 권력을 위임받으려는 주체간에 계급이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것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선거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기권력의 소외를 방지하고 권력에 대한 권력위임자의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노동현장의 선거투쟁에서도 부르주아 선거정치가 풍기는 악취와 선거의 악마같은 얼굴이 가끔 목격된다. 대중을 무조건 추종하여 표획득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선거의 기만성을 넘어설 수 없게 되며, 거기에 편승하는 대중의 표는 자기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소외시키게 된다. 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는 한표의 권한은 권력주체간의 상호 호응적 관계를 형성한 후보를 당선시키고 당선된 이후에도 그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위원장만이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대중의 권한이다.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혹은 대통령 선거든 그러한 관계의 필요성은 동일하게 존재한다.
노동현장의 선거정치에서는 권력주체간의 상호 호응적 관계가 최소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계급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지역대표성만을 고수하는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상황에서 전개되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애초부터 그러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따라서 진보적인 얼굴을 디밀고자 하는 정치세력은 지역대표제를 중심으로 하는 선거투쟁의 공간에서 야누스가 되려 해서는 안된다. 지역을 대표하는 권력을 위임받으려는 것은 부르주아 세력의 몰계급적 대중공동체의 동반자가 되려는 정치활동이다. 최소한 지역내 노동자 계급과 상호 호응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투쟁으로 천사의 얼굴을 형상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권력주체가 권력의 대상화 혹은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의 산물이어야 한다. 이는 권력을 행사하고 집행하는 공간을 확장하는 과정인 것이며, 부르주아적인 제도와 절차를 뛰어 넘는 정치활동의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선거로 축소될 필요는 전혀 없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전형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창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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