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이 된 소설가 "가난은 그를 키우고 있을까"
"비도 오는데 소주나 한잔 하죠."
지난 9일, 인천 가정동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난 김한수(36)씨는 만나자마자 술이나 한잔 하러가자며 시장통에 있는 포장마차로 기자를 이끌었다.
87년 시로 등단해 그 이듬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올 봄에 다섯번째 소설집 <양철지붕위에 사는 새>를 낸 그는 현재 글쓰기를 잠시 접은 상태다. 소설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다.
5년전 결혼할 당시 부인에게 "1년만 나 먹여살리면 그 다음부턴 내가 책임질께"라던 김씨가 그동안 전업작가로 벌어들인 수입은 연봉 5백만원 수준. 책 내서 받는 인세와 문화센터에 나가 강의료 받는 게 수입의 전부였다.
"책 한권 내면 2년 동안 인세로 3∼4백만원 받아요. 그러니 사람들 만나서는 술값 안내고 차비 얻어 오고, 책은 도서관에 가서 읽었죠. 애가 없을 때는 그래도 근근히 살았는데 딸 은결(14개월)이를 낳고 나니까 당장 분유값이라도 벌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노점 일. 지난해말 소설 쓰는 선배 한명과 '동업'을 시작, 리어카를 한대 사서 머리핀 따위를 늘어놓고 팔았다.
수원, 인천 등지에서 노점을 하던 그는 경험이 쌓이자 올 2월 신촌 이대앞으로 '진출', 동대문에서 재고옷들을 싼값에 떼다 파는 '땡장사'를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두시간 동안 50∼60만원어치 옷이 팔려나갈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장사가 너무 잘된 게 탈이었다. 얼마전 주위 상인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강제철거를 당한 것이다.
그가 작가가 될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국어책에 나온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고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서울 금천구 산동네에서 "똥구녕이 째지도록 가난하게" 살았던 그가 해야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집에 갖다주는 일이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구로동에 있는 프레스 공장에 들어갔다. 일하면서도 늘 메모지와 볼펜을 옆에 두고 쉬는 시간 틈틈이 생각나는 것들을 적었다.
한번은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형이 "교회에서 시낭송회가 있는데 거기서 시 한번 읽어볼래?" 해서 따라간 곳이 영등포산업선교회였다. 그 뒤 그곳에서 알게된 선배한테 시를 보여줬다가 두달쯤 뒤 그의 시가 실린 <전환기의 민족문학>이란 책 한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가 87년이었다.
'소설가' 김한수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황석영씨를 만나면서부터였다. 88년 단골서점 주인을 통해 황씨의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된 그는 다짜고짜 전화를 해 "소설쓰는 걸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황씨로부터 "네가 살아온 얘길 한번 써봐라"는 말에 단숨에 써내려간 중편이 <창작과 비평>에 실렸다.
89년 공장을 그만둔 뒤 10여년 넘게 전업작가로 살면서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다"는 그에게도 '유혹'은 있었다. "자서전 대필해주면 1∼2천만원은 받게 해주겠다는 제의가 있었지만 차마 남의 글 대신하는 일은 못하겠더군요."
"'가난'은 작가에게 두가지 면에서 어려움을 줘요. 하나는 '생활고'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계발'이 안된다는 거죠. 어떤 직업이든 자기계발이 필요하잖아요. 작가도 다르지 않아요. 많이 읽고 많이 다녀야 하는데 읽고 싶은 책 한번 마음껏 사보지 못하고 지방에 취재가는 것도 몇십만원씩 깨지니까 안가게 되고... 이런 상황이다보니 글쓰는 선후배들 중에는 사우나에서 매점하면서 생계문제를 해결하거나 글짓기 학원에 나가는 사람들이 꽤 돼죠. 저도 생활이 나아지면 다시 글을 쓸겁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소주병이 바닥을 드러내자 "새벽에 동대문에 가봐야 한다"면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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