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터키에서는 WRI(War Register's International) 주최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회의는 매년 진행되는 WRI 고유의 행사로써 올해는 군사주의와 양심적 병역거부, 여성운동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증인의 변호인단 김수정, 오재창 변호사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가 참석하여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실태와 상황을 최초로 국제회의에서 발표하여 많은 관심을 모았다.
WRI(www.wri-irg.org)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1년에 설립되어 양심적 병역거부와 반전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현재는 전세계 40여 개국 80개 지부에서 여성주의 그룹, 동성애운동 그룹, 아나키스트 그룹 등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이슈로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직접행동을 실천하는 조직이다.
터키는 나에게 너무나 멀고도 낯선 나라다. 지도를 펼쳐 한참을 짚어야 닿을 수 있는 곳, 회교 국가이면서 유럽과 접해있어 그 문화적 공존이 묘하고도 아름다운 나라. 이 정도였을까? 한국전쟁에 참전했었고 그 규모로 참전국 중 2번째였으며 권위적이고 군사적 정권이 집권하고 있어 한국 못지 않게 군사주의문화가 강한 나라일 것이라는 정보는 터키로 출발하기 며칠 전 어느 여행 가이드북에서 잠깐 봤던 것도 같다.
12시간이 넘는 긴 여행 끝에 세미나 장소에 도착해서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던 다른 나라 참가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맥주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들리는 영어로 인해 타국에 온 것을 실감했다. '0'이 굉장히 많은 터키의 화폐에 놀라며 맥주 값을 허둥대며 지불했던 에피소드를 뒤로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세미나 첫날, 동시통역기를 끼고 참가자들은 큰 회의실에 모였다. 얼굴색도, 성별도, 생김새도 모두 다른 80여명의 참가자들은 시종일간 밝은 표정으로 눈인사를 건넸다. 각 국가별로 혹은 활동가로써 공통분모를 찾아(예를 들면 5월 1일 메이데이 시위 한 사람, 현재 엄마 혹은 아빠인 사람,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사람,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 채식주의자 등) 재밌고 유쾌한 소개가 끝난 후 원래 회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미국의 이번 테러 사태에 대한 미국 평화활동가로부터 소식을 듣고 이후 평화운동의 대응방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미국에서 온 평화운동가는 현재 미국이 애국주의와 보수주의 물결에 휩싸여 있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며 그 와중에서 미국 평화운동 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였다. 언론에는 잘 전해지지 않았지만 전쟁과 폭력 반대를 외치는 평화운동가들의 고민을 들을 수가 있었다. 이어 발표에 나선 터키와 노르웨이의 평화운동가들은 이번 사태로 전세계 평화운동의 무력함에 대해 토로했으며 보다 풀뿌리 운동을 강화해야 함을 역설했다. 또한 이번 테러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군사화 정책과 과연 이번 사태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구인가, 미국이란 나라의 보수성, 폭력성에 대해 성토하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토론을 마치고는 터키의 양심적 병역거부 활동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물과 WRI의 반폭력 직접투쟁을 소개하는 비디오 상영이 이어졌다.
세미나 둘째날, 이 날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각각 4개씩 총 8개 주제의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레즈비언과 페미니즘의 관계',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경험 나누기', '남성다움과 군대', '페미니즘과 반군사주의 운동과의 관계', '새로운 사회운동과 게이 운동' 등의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오전에는 한국 참가자 모두가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경험 나누기' 세션에 오후에는 각자 흩어져 관심사별로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나는 김수정 변호사와 함께 '패미니즘과 반군사주의 운동과의 관계'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오전에 있었던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경험 나누기' 세미나에서는 칠레, 터키, 한국, 스페인,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등에서 온 활동가들이 모여 각 국가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현황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칠레에서 온 활동가는 칠레의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이 조직화 된 것은 1997년부터라고 하며 그 이전 1900년대부터 강제징집이 시작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20여명의 청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하며 촉발된 이 운동은 현재 정부의 회유 정책으로 구속자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것이라고 했다.
터키의 상황은 보다 심각한 것이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군사법원에서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다뤘던 언론사 기자들까지 구속되기도 한단다. 지금까지 20여명 정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거부 선언을 하고 수감중이며 도망 다니는 사람의 숫자는 집계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들 수감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감옥에서 똑같이 유니폼을 입혀 훈련을 시킨다며 감옥에서의 이들의 심각한 인권문제도 얘기되었다. 세르비아에서 온 활동가가 세르비아는 교회 등에서 이들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며 터키의 상황은 어떠냐고 물어보자 터키는 종교계가 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커녕 전혀 보호해 주거나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온 활동가들은 동성애자들이 많았는데 원래 터키에서는 동성애자라는 것을 입증(?)하면 군대가 면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 전 성교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제출해야 면제가 되는 것으로 바뀌더니 그것도 작년부터는 모두 군대에 반드시 가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터키는 일정한 나이의 남성이라면 군대 가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만약 자식이 군대 가는 것을 거부할 때 부모들이 나서서 자식을 고발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지극히 군사주의, 군대문화가 강한 나라였다.
세르비아는 1900년대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전쟁 중엔 철저히 양심적 병역거부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군대에 가지만 무기를 들거나 사용하지 않는 역종에 근무하는 것을 합의했다고 하며 지난 전쟁에서 3만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반역죄로 모두 처벌당하고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에서 온 활동가들은 지금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대부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밀로세비치에 반대했던 사람들이라며 밀로세비치도 처벌받고 그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처벌받는 지금의 현실이 아이러니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르비아의 조직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1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가장 큰 성과물은 유고슬라비아의 30개 나라의 NGO들과 협력을 이뤄낸 것이라고 했다. 이후 과제는 각 나라별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법이 달라 이것을 진보적인 방향에서 일치시켜내는 것이라고 한다.
계속되는 질의, 응답으로 정해진 시간을 넘긴 이 회의는 저녁식사 이후 시간을 내어 다시 논의가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이 연대해야할 필요성 속에서 내년쯤에 다시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들이 모이는 세계대회를 개최하자는 것과 WRI 차원에서 전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자는 얘기가 나왔다.
오후에 진행된 '패미니즘과 반군사주의 운동과의 관계' 세미나는 여성들만 참석할 수 있는 세션이었는데 왠지 좀더 편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 세션은 페미니즘과 군사주의, 반군사주의 등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는데 보다 참가자들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서 소품 등을 이용해서 회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특이했다. 이들 여성참가자들은 이번 세미나 기간 동안 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호텔의 한 방을 빌려 여성들의 방으로 꾸며놓고 갖가지 악기와 음악, 사진 등을 전시해놓고 여성들끼리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영어를 못해서 버벅거리면서 의견을 얘기했는데 내 얘기가 끝날 때마다 세미나 참가자들이 모여서 내가 어떤 얘기를 했을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았다. 여성활동가들은 시종일관 영어를 못하는 한국 참가자들을 위해서 많은 배려를 해주었으며 나는 여성들끼리라는 일종의 연대감에 말도 안 되는 영어를 구사하며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 세째날, 이 날도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져 7개 정도의 세미나가 진행되었으며 주제는 '남성이 지도력을 갖는 조직에서의 활동하기', '군대제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는 있는가? 국제법과 인권법',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 그리고 아나키즘 문화', '우리의 활동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잡지를 활용할 것인가', '반군사주의 캠페인의 전략' 등이었다.
한국 참가자들은 오전에는 '군대제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는 있는가? 국제법과 인권법', 오후에는 '반군사주의 캠페인의 전략' 세미나에 참석했다.
오전에 진행되었던 세미나에서는 우선 각 나라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한 용어를 함께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유엔 인권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이 중심이 되었는데 터키에서 온 활동가는 자신들이 유엔에 터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실태를 알리고 실지로 시정권고까지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세미나는 시종일관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전체 평가를 마치고 회의는 끝이 났다. 회의가 너무 꽉 짜여져 있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과 개인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세미나가 딱딱한 회의실이 아니라 야외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하지만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현황은 그 엄청난 숫자로 먼저 외국 참가자들의 기룰 죽였는데 외국 참가자들은 한국의 이러한 반인권적인 상황이 그 오랜 세월동안 아무런 문제제기를 받지 않고 지속되었다는 것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국 참가단은 한국의 심각한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첫걸음을 떼었다는 생각,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얘기 나눌 수 있었다는 뿌듯함을 안고 서울로 향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