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재국유화]DJ 교과서 "영, 사기업화 정책" 유턴?

영국철도 사기업화(민영화)의 상징이었던 민간 철도시설관리회사 레일트랙이 설립된 지 불과 5년만인 지난 10월 7일 무려 33억 파운드(약 6조6천억원)의 부채로 인해 파산선고를 받고 정부관리로 넘어가고 말았다.

영국철도 사기업화의 최대 수혜자, 레일트랙

종전의 국영 영국철도(British Rail)는 94년부터 97년까지 3년에 걸쳐서 기능별, 지역별로 철저히 분할되어, 열차운영회사 25개와 차량임대회사 3개를 비롯하여 무려 1백여개의 민간회사에 매각됨으로써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영국식 분할사기업화가 완수됐다. 이 과정에서 선로, 신호장치, 역 등 영국철도의 제반 시설이 민간주식회사로 설립된 레일트랙에 19억 파운드(약 3조8천억원)에 매각됐는데, 영국철도해운노동조합(RMT)의 제임스 냅 위원장이 지적하듯이 이는 40억 파운드(약 8조원) 이상으로 평가되던 당시의 자산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헐값이었다.

이렇게 설립 때부터 막대한 특혜 속에서 출발한 레일트랙은 열차운영회사들로부터 선로 사용로를 받아서 각종 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회사로서, 민간기업의 생리가 그렇듯이 투자는 뒷전인 채 이윤추구에만 몰두해 97/98 회계연도에 3억7천2백만 파운드(약 7천4백40억원), 98/99 회계연도에 4억2천5백만 파운드(약 9천5백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게 됐다. 그 결과 96년 5월 주식시장에 처음 상장할 당시에 3.8파운드에 불과했던 주가가 98년 10월에는 최고 17파운드까지 치솟는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했고, 그로 인해 주주와 회사임원들은 막대한 이득을 올릴 수 있었다.

잇따른 열차사고와 경영위기

그러나 기존시설에 대한 유지, 보수와 신규투자를 게을리 한 탓에 97년 9월의 사우스홀 열차충돌사고(승객 7명 사망), 99년 10월의 패딩턴 역 열차추돌사고(승객 31명 사망)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2000년 10월의 해트필드에서 또다시 열차가 탈선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하여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이 사고 이후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 떠밀려 전국적인 선로보수작업과 시설개선을 추진하면서 레일트랙의 경영수지는 급속하게 악화돼, 금년 들어 5월까지 5억3천4백만 파운드(약 1조6백80억원)의 적자를 보는 등 위기를 맞게 됐다. 그러자 레일트랙은 정부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정부는 향후 5년간 총 15억 파운드(약 3조원)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경영악화가 계속되면서 이보다 훨씬 많은 공적자금의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자, 급기야 정부는 지난 10월초에 레일트랙이 요청해 온 7억 파운드(약 1조4천억원)의 자금지급을 거부하면서 결정적인 파산을 맞게 됐던 것이다.

무리한 이윤 빼돌리기가 부실의 원인

한편, 이처럼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주주들과 임원들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제 몫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예를 들어, 작년 해트필드 사고가 발생한 일주일 후에 주주 배당금을 인상했는가 하면, 지난 6월에 사임한 제랄드 코베트 사장은 이미 적자상태에 들어선 회사를 떠나면서 자그마치 86만 파운드(약 17억6천만원)의 퇴직금을 챙겼고, 금년 여름에 경영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하는 순간에도 주주들에게 1억5천만 파운드(약 3천억원)의 추가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바이어스 교통부장관은 지난 15일 의회에서 행한 답변을 통해, "사기업화 이후 지금까지 모두 7억 파운드의 공적자금이 레일트랙에 투입됐지만 시설투자나 경영정상화에 쓰이지 않고 주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지적하면서, 더 이상 주주들의 주머니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레일트랙 파산에 대한 영국사회의 반응

파산결정이 난 후 1만1천명에 달하는 직원들은 임시관리를 맡은 에른스트 앤드 영(Ernst & Young's)이라는 회계법인이 직원들의 고용계약에 대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밝히고 나서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처하게 됐다. 그런가 하면, 25만명에 달하는 주주들은 정부의 결정에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휴지조각이 되어 버릴 주식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사기업화를 단행했던 당사자들인 보수당도 노동당정부의 이번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패딩턴 사고 직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73%라는 압도적인 다수가 철도를 재국유화 해야 한다고 응답했던 영국국민들은 이번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영국기관사노조(ASLEF) 간부 안드류 머레이는 "무조건 사기업화만을 추구해왔던 영국에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영화라는 반대방향으로의 모색이 시작됐다"고 반기면서, 차제에 악명 높았던 열차임대회사들을 포함하여 사기업화된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정밀한 평가를 통해 개선책을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과 교훈

그러나 파산선고를 받은 레일트랙이 다시 이전과 같은 국영기업으로 되돌아 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정부는, 민간 열차운영회사, 승객대표,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이사회를 두고, 수익금은 전액 시설개선에 재투자하는 비영리신탁회사(not-for-profit trust) 형태의 공영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향후 열차산업의 재건을 위해서 소요될 3백40억 파운드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민간부문에서 조달한다는 계획이어서, 이것이 근래 들어 토니 블레어 수상이 제기해 온 '공공-민간 파트너쉽' 형태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이번 레일트랙의 파산사태는 영국철도 사기업화의 문제점과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적지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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