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활동가가 WTO 반대투쟁에 나선 이유
[편집팀] 10/26
현재 카타르 도하에서는 '뉴라운드 출범'을 합의하기 위한 제4차 WTO 각료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99년 시애틀에서의 좌절을 딛고 포괄적 다자간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의 기세가 자못 등등하다. 더구나 9·11 사건과 미국의 아프간 공습으로 인한 국제정세도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지배엘리트들의 움직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내셔널 뉴스 편집팀]은 지난 10월 27일 ∼ 28일까지 중앙대에서 열린 '민중복지 한마당'에 초청된 미국의 한 보건의료 활동가를 만나보았다. '폴 데이비스'라는 이름의 이 활동가는, 미 보건의료연합 상근 활동가이면서, 액트업!(ACT UP!) 자원활동가이다. [편집팀]은 그를 통해 WTO가 어떻게 민중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박탈하고 있는가와 그에 맞선 사회운동진영의 전략에 대해 개괄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일하고 있는 [보건의료연합]은 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에 의한 의약품 특허의 반민중성, 파괴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적재산권협정에 의해 보장된 초국적제약회사의 배타적 의약품 특허권으로 인해 한해에도 수많은 민중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편집팀과 함께 했던 [민중의료연합 공공의료팀]의 정혜주는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의약품과 독점적·배타적으로 보호되는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에 의해 하루에 3만 7천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상기시킨다. 그녀에 따르면, "특허가 하루 연장될 때마다 25만 달러, 우리 돈으로 3억 2,500만원 이상의 이윤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인류의 기본적 건강권이 초국적자본의 특허권으로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왜 보건의료 활동가들이 지적재산권협정에 맞선 투쟁, 나아가 WTO 반대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카타르 각료회의에서 [지적재산권협정에 관한 선언문]이 합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지난 9월 공동선언문 작성을 위한 협의를 했으나, '실패'한 상황이라고 한다. 태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53개 개도국들은 지적재산권협정이 민중들의 의약품 접근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되며,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ing)이 확대 해석되어야 한다는 'TRIPs협정 개혁안'을 제출했으나,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개도국이 제출한 개혁안의 핵심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TRIPs협정의 어떠한 조항도 각국이 자국의 공중보건을 위해 취하는 조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지적재산권협정은 현 수준이 유지되어야 한다'며, 아주 노골적으로 '제약회사의 독점적 권리가 건강권에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재 보건의료 활동가들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제기하고 있는 '강제실시권'은 TRIPs협정 제31조에 정의되어 있다. 이는 일종의 세이프가드(safeguard) 조항인데, 정부가 상업적이 아닌 목적으로 공중보건을 위한 정책적 조치를 강제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여지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개도국 정부와 사회운동진영은 이 조항의 확대해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에이즈 문제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과 동아시아 및 남미 국가들에게, 에이즈 치료를 위한 의약품을 싼 값에 공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의약품 특허권'과 필수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강제실시권'의 확대해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및 초국적제약회사들은 TRIPs협정내에 존재하는 어떠한 세이프가드 조항도 기업의 '배타적 특허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TRIPs협정내의 또 다른 세이프가드 조항인 '필수의약품에 대한 특허 제외' 역시 현실적으로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는 "TRIPs협정에 특허 제외 품목으로 규정되어 있는 필수의약품은 세계건강기구(WHO)가 지정한 약품들인데, 이윤이 많이 남는 비싼 의약품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AIDS 치료제도 필수의약품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수의약품 특허 제외'라는 규정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필수의약품이라기 보다는 치명적 질환에 대한 모든 약품이 특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TRIPs협정은 초국적제약회사의 의약품 특허권을 배타적으로 보호함으로써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중심부 국가들의 '기술독점'을 영구히 보장할 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특허 보장은 제3세계 자연자원과 전통지식에 대한 제도적 '수탈'이며 '착취'로 지탄받고 있다. 이에 제3세계 국가들과 사회운동진영에서는 '의약품 특허'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생명특허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약품 특허 관련 투쟁이 TRIPs협정에 맞선 투쟁, 나아가 WTO 반대투쟁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다른 투쟁과는 어떠한 연관을 갖고 있는가"라는 [편집팀]의 질문에, 폴 데이비스는 "TRIPs협정에 맞선 투쟁, 나아가 WTO 반대 투쟁에 있어서 핵심고리"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에 따르면 "TRIPs협정이 처음 만들어질 때, 13개의 초국적기업이 그 협정 기안에 직접 참여했는데, 그 중 5개가 제약회사였다"고 한다. 또한 초국적제약회사의 이윤율은 다른 부문에 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그 힘이 막강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TRIPs협정의 핵심적인 본질은 의약품 특허로 인한 민중들의 건강권 침해"라고 단정지었다. 그리고 이 투쟁은 개도국 정부와 남·북반구사회운동진영의 광범위한 연대전선을 형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매개라고 강조했다. 그는 "WTO 내에 노동·환경기준을 편입시키자라는 중심부국가들과 북반구 노동조합 및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개도국 정부가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점에서, 개도국 정부와 남북 사회운동진영 모두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동맹을 건설할 수 없다. 또한 노동·환경기준 편입과 관련해서는 남북 사회운동진영간에도 견해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TRIPs협정에 맞선 투쟁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여기에는 초국적제약회사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따라서 개도국 정부, 남·북반구 사회운동진영이 이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광범위하게 연대할 수 있다. 이러한 동맹의 구축은 TRIPs협정 나아가 WTO 및 세계화에 맞선 투쟁에 있어서 좋은 매개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서는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와 환경주의자들이 보건의료단체와 함께 연대하여, TRIPs협정에 맞선 투쟁을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환경기준을 매개로 한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TRIPs협정과 건강권'이라는 테마를 반세계화 투쟁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힘들이 모일 때, WTO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민의련 및 국내 보건의료단체들이 현재 제기하고 있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 요구, '치명적 질환에 대한 의약품 무상 공급' 요구 투쟁에 대해, "이 투쟁이 한국 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이는 가난한 국가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의 선례를 근거로 그 나라들도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대신 의약품 무상공급 캠페인이 중요한 의약품에 대한 특허 제외 요구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타르 도하에서는 오늘 현재 뉴라운드 출범을 위한 WTO 회원국들간의 막판 협의가 진행중이다. 물론 이러한 협의의 과정은 철저하게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 자본은 개도국들의 문제제기를 무마시키며,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또 다른 승리를 보장해 줄 '뉴라운드'를 출범시키려 노력할 것이다. WTO 체제가 얼마나 남·북반구간, 일국내에서 계급·계층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는지는 그것이 출범한 지난 1995년 이래, 세계 민중들의 파괴된 삶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현 WTO 체제는 근본적으로 해체되어,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국제무역체계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WTO의 권한과 권력을 더욱 강화시킬 게 뻔한 뉴라운드 출범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은 점점 더 많은 '적'들을 만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 농민,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 인권활동가로부터 에이즈활동가까지 WTO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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