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호/초점]허울뿐인 기후협약, 그것의 본질

허울뿐인 기후협약, 그것의 본질

청년생태주의자 key

들어가며....

7번째 기후변화 협약이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진행되었다. 2주 동안 진행된 그 협약은 내년 리우+10회의에서의 발효를 앞두고 막바지 협상에 들어갔다. 각 국 정부 대표단과 산업계 대표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던 그곳은 이 지구상에서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적 세계화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기후변화 해결의 대안과 그 이론들이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시장을 기초로 하고 있기에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어떠한 주장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곳이 바로 기후변화협약이며, 이러한 논리는 곧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확장, 강화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되어 성장한 산업사회/자본주의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식민지 시대를 겪어왔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은 당시 제국주의의 부의 성장과 산업발전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착취와 제3세계 민중들의 삶의 전반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것을 근거한다. 이러한 맥락과 함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석유, 석탄, 우라늄,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산업사회를 작동하는 원천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통치 시스템의 일환으로 지구적 정치질서와 경제체제를 쥐고 흔드는 막강한 힘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제적 세계화의 확장과 함께 절대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거대 기업들(특히, 화석연료를 근거로 하고있는)의 지속적 성장(다른 의미로는 계속되는 파괴를 묵인하는)은 국제기구들에 의해 지지되고 절대적 권세를 약속 받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UN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를 통해 보아왔고, 확인했다.

기업과 선진국의 손을 들어준 교토의정서

지난해 헤이그에서 있었던 6차 기후협약의 결렬과 지난 3월 부시의 교토의정서 파기 선언은 교토의정서로 상징화되는 지구온난화를 방지를 위한 지구적 공동행동에 커다란 위기였다고, 그리고 6차 속개회의는 지구적 위기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역사적 순간(?)이였다라고 후대의 교과서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기후협약의 본래 취지를 총체적으로 거스르고 선진국이 개도국과 가난한 나라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초래한 영원히 갚지 못할 생태적 빚을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후변화 6차 속개회의 결과를 통해 본 협약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시장을 기초로 하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정부와 기업들의 배출감축비용 줄이기 작전' 다름 아니다. 오염할 권리/공해를 배출할 권리 사고 파는 구조가 현재의 기후협약의 가장 핵심적인 기후위기 해결방안이다. 예를 들면 **제철의 온실가스 배출 초과분은 **제지가 심은 조림사업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지는 나무 심는 것 자체가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이유로 감축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기업이나 국가에 팔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제철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오염할 권리를 돈을 주고 사면되는 거고, **제지는 나무 심어 돈도 벌고, 심는 것 그 자체로 얻은 크레딧을 팔 수도 있기 때문에 2배의 이윤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발상자체가 지구적 배출 평균만을 이루면 된다는 것에 머무르면서 궁극적으로는 지구 환경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기업에게 새로운 시장만을 만들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둘째, 가난한 나라의 땅은 선진국을 위한 탄소 저장고가 될 것이다. CDM(청정개발체제)는 기술이전이라는 이름으로 선진국이 후진국에 깨끗한 기술을 이전하고 투자하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으로 인정되어 배출 Credit을 얻을 수 있는 제도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CDM을 추진하려 하는데 그 배경의 핵심은 깨끗한 기술을 이전시키겠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땅값이 싼 후진국에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는 것이 자국내의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가 베트남에 사탕수수를 심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사탕수수로 식물성 디젤을 생산하는 기술을 이전했다고 하자. 이때 선진국은 오염할 권리를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사탕수수를 심었으니까.. 그것은 흡수원으로써도 경제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가난한 나라의 땅을 탄소저장소로 만드는 것이 자국내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휠씬 경제적이기 때문에 1석 2조가 되는 셈이다. 탄소를 저장하는 값싼 땅은 이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았다.

셋째, 기후협약은 기후정의와 환경정의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일상의 삶은 이미 거대한 중앙 집중적 에너지 관리체제 하에 편입 된지 오래다. 선진국과 기업들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고, 그들의 기업들을 그것을 직접 진두지휘해왔다. 석유는 국제관계 속에서 권력으로써 자리 매김 한지 오래되었다. 여전히도 누가 화석연료를 소유하고 있는가는 국제 관계 속에서 막강한 권력의 힘을 작동시킨다. 왜냐하면 누구나 동의하듯 지난 100년의 역사가 이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석유개발의 중심에는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싸움이 있었고, 가난한 땅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알래스카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은 다국적 석유기업에 의해 석유가 개발되고 그 과정은 원주민들의 생존의 터전과 삶의 기반을 총체적으로 무너뜨리는 것 위에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기후 협약은 이러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들 기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방안 또한 제출하고 있지 못하다. 기후 협약 안에는 35개의 도서국가로 구성된 도서국가 회의가 있다. 도서국가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발언력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선진국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 '그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누군가는 희생당할 수 밖에 없다'라는 방관적 자세로 묵과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땅이 가라앉고, 당장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역사적 책임을 가진 선진국의 뻔뻔한 당당함 앞에서 처절하게 묵살당했다. 이것이 기후변화협약의 불평등함과 비형평성이다.

기후변화 7차 회의 :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의 이해만이 보장되었다.

의정서 발효를 위해서는 55개의 협약 회원국의 비준과 선진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55%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비준해야 했다. 선진국 온실가스 배출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거부는 교토의정서 이행 자체에 난황을 가져왔고 이러한 상황을 기초로 지난 7월 독일 본에서 진행된 기후변화당사국 6.5총회에서의 일본의 정치적인 쇼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교토의정서를 더욱 빈약하고, 형편없이 만들면서 결국 흡수원(Sink)을 인정하는 것으로 의정서를 타결시켰다. 그리고 이번 7차 회의 기간 중 흡수원의 이용범위 더욱 형편없이 확대하면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터무니 없이 낮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비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7차 회의에서 미국은 CDM(청정개발체제)사업에 미국 또한 참여할 수 있기를 요구했고, 그것은 받아들여졌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지구적 생태적 책임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에 대한 투자와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자격이 인정된 것이다. CDM은 원칙적으로 상업적 투자는 제외되었지반 빈약해진 교토의정서는 그것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11월 9일 마라케쉬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전격 타결되었다.

완벽하게 경제회담으로 탈바꿈되어진 기후협약은 배출권 거래 시장/오염물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 파는 시장을 탄생시켰다. 탄소 거래를 통한 이익은 연간 13조 달러에 달할 것이 예상된다고 한다. 결국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에도 지구적 정의와 평등과도 거리가 먼 해결책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온실가스 의무 감축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에 대한 어떠한 제재조치도 결정되지 못했다. 당초 무역제재와 같은 강한 조치를 구축하려 했지만 선진국과 다국적 석유-에너지 기업에 의해 그것은 저지되었고, 결국 어떠한 강제 조치도 없는 거대한 기후시장, 이산화탄소 시장, 그리고 개도국에 대한 투자와 개발사업의 타당성만을 탄생시켰다.

나오며...

수많은 NGO들이 지난번 기후변화당사국 6.5총회(속개회의) 때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고 하며 회의장에서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무엇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이미 지구환경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계속적으로 파괴되고 착취로 그 위기는 가중되고 있고,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지구정의와 환경정의는 그 의미를 퇴색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 7차 회의 이후 교토의정서는 그 골격을 완성했고, 선진국에게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피해갈 수 있는 무수한 장치를 보장했으며 그것은 동시에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제3세계에 대한 파괴와 침투를 확대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기후협약은 그 어떤 환경문제도 시장과 경제적 논리로 설명되고 설득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공하고 말았다. 기후정의와 지구적 평등을 총체적으로 묵살한 지금까지의 7년여의 기후협약은 결국 이윤과 경제적 가치에게 승리의 깃발을 넘겨주었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무수한 생명의 죽음, 파괴와 개발로 생태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니고 살고 있는 토착 원주민들의 생존권의 파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석유 개발로 인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죽음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 온 기후협약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명제는 기업의 이윤확장과 과학 기술을 중심에 둔 소수의 엘리트들의 만든 그들만의 논리이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과 그 맥을 함께 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후협약의 일련의 과정에 충실히 반영되어왔다. 우리는 이번 기후협약 7차 결과를 통해 환경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허울뿐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구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와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남는 건 지속적인 행동과 다양한 실천으로 지구 공동의 저항을 끊임없이 만들고 이윤의 놀음에 거대한 균열을 내는 행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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