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학시절, 교직과목을 이수한 건 꼭 교사가 되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우연히 이뤄진 일이었다. 그 작은 계기가 18년 교직생활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는 84년 교사로서 처음 출발한 때만해도 교직보다는 전공인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싶었다.
"처음부터 열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계속 교사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이 바뀌더라구요. 아이들의 감성형성에 내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 아이들이 제 수업을 듣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교직을 관둘 수 없었어요."
사립학교인 영화여자정보고등학교 고제민(42·여)교사는 요즘 컴퓨터 연수를 받고 있다. 미술교사인 그가 컴퓨터를 배우는 이유는 단 한가지, 교사생활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
내년부터 7차교육과정이 적용되면 미술은 주당 17시간에서 10시간으로 줄게된다. 그는 나머지 7시간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 교사를 겸임해야 한다. .
그러나 그는 이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학교에 미술교사가 한 명 더 있었더라면 둘 중 하나는 미술과목을 포기하거나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사도 경쟁체제가 되어서 마음놓고 자기개발을 할 여유가 없어요. 교사가 신분에 불안을 느끼면 어떻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겠어요. 교사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의 심성을 발달시킬 수 있겠어요."
그는 실업계 교사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서 실업계학교 교사는 인문계 교사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
"교육이 입시위주로 가니까 실업계 학교는 뭐든지 뒷전입니다. 이런 실업계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것은 특히 힘들죠. 학생들은 자격증, 취업에 관심이 있어 미술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비인기 학교에 비인기 과목인 셈이죠."
그는 요즘 학생들의 정서가 메말라 있다고 느낀다.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문화 속에 놓인 학생들에게 뭔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서 자신과 학생들의 감성이 교류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입시, 취업과 상관없는 미술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감성의 발달은 성적이 오르듯 눈에 띄지 않는다. 단시일안에 결과가 나타나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풍토가 교육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해 하루평균 4시간 수업을 한다. 수업을 4시간 하는 것과 일을 4시간한다는 것은 다르다.
학교내 교사들 중에서 고참격인 그는 교내지도 교사라는 직책을 맡아 수업 외에 남는 시간을 학생지도와 서류정리 등으로 정신없이 보낸다.
"교사를 '철밥그릇'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정말 바쁠 때가 많아요. 놀고먹는 것이 교사가 아닙니다. 하루에 4시간 수업이면 힘이 다 빠져요. 수업도 대충할 수 없어요.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대충 수업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가만히 두질 않아요."
더욱더 열악해진 교육환경, 달라진 교사의 위치, 어느 것 하나도 그가 처음 교사를 시작했던 18년전 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학생들마저 예전하고 틀려요. 찾아오는 학생들은 거의 옛날 제자들뿐이죠."
그러나 고제민 교사는 아무리 교육이 황폐화 됐어도 "잘릴 때까지 있고 싶다"고 말한다. "실업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여기서 보내요. 학생들이 학창시절을 되돌아 봤을 때 좋은 부분을 심어줬다는, 중요한 부분을 심어줬다는 느낌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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