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 21세기에도 신자유주의여 영원히!
한 세기가 끝나고 또다시 한 세기가 시작되었다. "헐리우드의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테러와 뒤이은 보복전쟁으로 우리들의 또 다른 한 세기가 아주 위태롭게 출발하고 있다. 엄청난 생산물이 범람하였음에도, 그 물질적 풍요를 누린 사람들이 전지구 인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냉전과 국지전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적어도 새로운 세기는 20세기를 관통했던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구축되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돌아가는 상황은 적어도 그러한 바램과는 한참 무관한 듯하다. 우리는 그 불길한 징후를 지난 10월 21일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APEC에서 무엇이 논의되고 무엇이 결론으로 제출되었는가?
이번 APEC정상회의에는 세계교역의 60%를 차지하는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여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응'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세계주요국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휠씬 심각한 경제성장 둔화를 겪고 있으며... 테러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인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며 자유와 개방 그리고 번영이라는 APEC의 비전에 대한 도전'이라고 천명하였다. 말하자면, 이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테러와 경기침체였으며, 이들이 모인 이유는 여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어떤 대응책이 제시되었을까? 정상선언문(Leaders' Declaration)에 주목하자.
이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며, 각국의 시장기초여건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조개혁을 심화하고 금융부문의 효율성과 국제금융기준이행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인류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전제한 뒤, 11월에 열리는 WTO각료회의에서 뉴라운드 출범을 촉구함으로써 현재의 경제성장둔화의 흐름을 반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1994년 보고르합의에 입각하여 아시아·태평양에서 선진국은 2010년까지,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무역·투자 자유화 및 개방화를 달성할 계획임을 밝혔다.
결국 현재의 경기침체는 무역자유화를 확대하고, 투자와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진전시키며,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서 극복가능하다는 것이다. 20세기의 후반기에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룬 지금,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지금까지의 세계화로는 아직도 부족하니,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세계화를 추진하자"고 다시 합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주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지 않은 한, 21세기의 국제적 질서 역시 현재의 질서를 그대로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구축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상이 스친다.
그러면 각국 정상들이 내린 결론과 처방, 바로 그것이 경기침체와 테러라는 당면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에게 안락한 21세기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사람들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테러와 경제성장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테러의 씨앗을 뿌린 것은, 미국의 패권적인 정책과 후진국과 선진국의 불평등한 성장 그 자체였다. 세계화는 균등한 성장의 가능성을 아예 봉쇄시킨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자본은 전세계적인 영역에서 철저하게 이윤을 동력으로 하는 자신의 질서를 관철시켜 나아갔는데, 화학적 합성이 불가능하거나 다른 물질로 대체되지 않는 희귀한 천연자원을 소유한 몇몇 예외적인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3세계는 철저하게 고립되기 때문이다. 즉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들에게 테러를 방지하는 수단으로도, 그리고 높은 생활수준을 가능케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할 수 없다.
아울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경제성장을 도모하는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강력한 구조조정과 금융부문의 효율성, 국제금융기준의 강력한 적용으로 안정적인 성장이 아니라 경기침체와 내수시장의 위축, 금융적 불안정성의 증가시킨다는 견해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경기위축을 가져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경기회복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형식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APEC 정상들이 뉴라운드를 연내에 출범시키겠다는 합의, 그리고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관세율제로의 자유무역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철저하게 일치되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발도상국와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 간의 자유로운 무역이 발생할 경우,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파탄날 것이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한국의 농업부문으로 보라. 더욱이 현재 철강부문, 반도체 부문, 자동차부문 등이 이미 만성적인 과잉생산상태에 있음이 드러났고, 이들간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APEC 정상회의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인류의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그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21세기의 질서를 더욱더 강화된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였을 뿐이다. 이들은 노래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여 그래도 영원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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