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인간의 진보적 삶’

‘진보적 지성과 양심의 소리’가 지난 4월9일 가진 창립토론회 ‘신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전망을 찾아서’에 이어 8일, 두 번째 가을 토론회를 가졌다. 주제는 ‘21세기와 인간의 진보적 삶’. 4시간 넘게 진행된 열띤 토론회 현장을 지상중계한다. <사회당 기관지 편집국>

각계 실천가들이 머리 맞댄 자리가 사회변혁의 밑거름으로

오세철 교수의 사회로 여성, 교육, 종교, 노동·경제, 전쟁·평화 등 5가지 분야에 맞추어 발제하고 김진균 교수와 박경조 신부가 지정토론자가 되어 토론하였다.

▲여성 - 김혜경 박사(한신대 사회학 강사, 한국여성연구소)는 “여성의 삶의 변화를 얘기하는 데 있어 가족은 그 핵심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한국근대가족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를 시대적 규범으로 만든 이러한 새로운 성별분업은 “성별분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없이 진행되면서 여성의 다중역할과 노동부담을 가중시켰다.” 또한 효율중심의 산업화 전략은 “노인, 병자, 어린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가족의 책임으로, 사적인 문제로 방치되다시피” 되었다고 비판한다.

결론에서 김혜경 박사는 첫째, 새로운 가족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회/가족, 공/사라는 이분법적 경계선을 허물고 ‘개별고립화된’ 가족에서 ‘사회통합적인’ 가족으로 그 위상을 바꾸는 작업이라는 것. 더구나 이 작업에서 근대사회의 ‘가족화’ 작업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여성들의 시각이 반영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사회의 민주화, 노동의 민주화는 남녀관계의 민주화를 동반해야 하며, 재생산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성별분업의 해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싸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교육 - 이규환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교육개혁이 민중을 위한 것이 되려면, 그것이 기득권층, 자본가계급, 다국적 기업 등을 위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장되어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정책의 제 문제’라는 글을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입장을 제출하였다.

교육의 민영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부모의 경제능력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긴다고 꼬집었다. 그 대표적 예가 기여입학제나 자립형 사립고교 도입이다.

다음으로 성과급제와 계약제 도입이 교사의 비인간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교사직을 성직 또는 전문직으로 보며 교사를 임금노동자로 보는 시각과 각종 활동을 탄압하는 행정관료들이 실제로는 교사를 임금노동자로 취급하여 교원 성과급제를 강행하고 있음은 크게 모순된 태도라 꼬집는다.
여기에 ‘모든 활동을 기록하고 평가하고 반영하라’는 7차교육과정 역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교사들을 비인간화한다며, 최근의 교원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종교 - 홍근수 목사(향린교회 목사)는 ‘한국 종교는 민족의 희망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한국 종교는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민족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결론을 미리 밝혔다. 홍근수 목사는 21세기에 한국 종교는 일대 전환과 선택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은 7개의 테제로 정리하고 있다.

1)인간은 체제, 이데올로기, 국가, 심지어는 종교보다도 더 우선한다. 인간이 제일이다. 2)단일한 사상·체제나 가치관, 또는 종교로 획일화된 사회보다 다양한 사상·체제나 가치관 또는 종교가 존재하고 존중되는 다양화된 사회가 더 건강하고 더 바람직하다. 3)자연환경의 보전이 기계공학의 발달, 산업의 발달과 개발, 또는 인간의 생의 편리보다도 더 가치있고 더 우선한다. 4)자유와 정의가 법과 질서보다 더 우선한다. 5)민족자주와 통일의 삶이 강대국에의 예속과 분단상태에서의 삶보다 더 의미있고 소중하다. 6)안보보다 통일이 더 우선한다. 7)비폭력의 진리가 폭력의 힘보다 더 강하다.

▲노동·경제 - 김수행 교수(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현재의 여러 가지 구체적 문제들을 짚고 개선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 세계시장의 침체가 계속될 것이고 수출이 고용확대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적으므로, 수출주도적 경제체제로부터 내수주도적 경제체제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복지비 확충을 위해 재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이의 한 방편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해 세금원을 확대하고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을 인상할 것,

셋째, 주요한 경제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사정위원회의 참가범위를 확대하고 참가자의 자격과 지위를 격상할 필요가 있다.

넷째, 공적자금을 지원 받는 기업과 금융기관은 사실상 ‘국영’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러한 기업과 금융기관을 ‘종업원 중심’으로 구조조정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합당하다.

▲전쟁·평화 - 평화활동가인 김승국 박사는 테러와 아프간 전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우선, “현상적으로 보면 9.11 테러의 피해자는 미국이나, 본질적으로 보면 테러 원조국가 미국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며, 테러에 대한 응징 또한 미국의 독단과 패권주의적 발상에 따르고 있음을 비판했다.

그리고 테러는 악(bad), 미국의 응징은 ‘자유수호’라는 이분법 논리로 미국은 전세계 국가에게 ‘친미 줄서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분법의 함정에 한국 정부 등이 빠져들어 파병 운운하고 있는 것이라 지적하였다.

그리고 미국 지배계급인 WASP(백인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의 극우파인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과 군산복합체가 아프간 전쟁의 최대 배후세력이며, 이들 세력을 약화시키는 게 세계평화의 관건임을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아프간 전쟁은 한반도에 주한미군 주둔 방식의 변화, 6.15공동선언 실천 난항, 남북관계 냉각, 일본 군사대국화의 진전 등의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에 대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토론 - 지정토론자인 박경조 신부는 “새로운 시야를 배웠다”며, “사물과 사람을 선과 악으로 구분짓고, 악은 무조건 제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라며 앞서 발제시간 내내 비판받았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언급하였다.

김진균 교수(서울대 사회학 교수)는 토론하기 앞서, 질문의 기준을 ‘인간에 대한 배려’로 삼겠으며, 이것이 정의의 차원에서 융합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태아, 임산부, 편모,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질문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어 종합토론에서는 현안인 전쟁에 관한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아프간에 대한 진단, 아프간의 여성억압적 요소에 대한 생각, 민족적 차원에서의 전쟁 반대와 노동자계급적 차원에서의 전쟁반대 그리고 이들 입장간의 전략적 연대 가능성 등. 이밖에 교육의 문제에서 ‘평등’이 갖는 의미와 실현형태에 대해, 그리고 김수행 교수가 개선방향으로 제시한 ‘종업원 중심’의 구조조정의 의미와 내수경제로의 전환에 대한 질의와 답이 있었다.

시종 차분하고 친근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토론회는 방청하러 온 한 대학생의 지적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진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 상이 제시되지 않아, 개별로서의 ‘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에 대해 현실에서 실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단하고 제기하는 내용들이기에 분명 책임있는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토론회가 정례화 되어, 각계 실천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사회변혁을 위한 방안들이 제출되는 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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