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지부 7대 집행부 2년을 돌아본다
후퇴가 아닌 전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자!
98년 9.3투쟁이후 만도자본은 부도의 아픔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이름도 (주)만도로 바꾸면서 부도의 상처를 지우려 애썼다. 2년 사이에 만도노조는 세 개의 지회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짧은 사이에 무척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현장과 조합원들에게도 스쳐 지나간 듯한
시간과 기억조차도 소중한 것이다. 특히 2년의 투쟁을 뒤돌아보면서 우리가 한 발 더 전진 할 수 있는 계기와 성찰을 가진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한층 상쾌할 것이다.
2000년 임투 '집단교섭 포기, 대각선교섭으로 전환'
3사1노조가 된 상태에서 집단교섭문제는 만도노조의 중차대한 문제였다. 2000년 초부터 노사간에 신경전과 투쟁이 촉발되었다. 집행부는 '3사1노조 하에서 집단교섭을 책임지고 관철하겠다'는 목표로 쟁의행위까지 결의했으나 투쟁을 목전에 두고 대각선교섭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대한 현장의 반발은 조합원 총회소집으로 이어졌으나 집행부의 무시로 인해 수용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경주지부 사고처리 문제가 불거지고, 결국 3사 각각 교섭을 하는 형태로 끝났다. 임금타결율은 거의 비슷했지만 자본의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후 3사 3노조가 생기는 씨앗이 되었다.
경주(발레오만도)와 아산(만도공조)의 분리
경주와 아산의 분리는 시차를 두고 진행되었지만 결국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자본은 달라도 노동자는 하나'라는 우리들의 목표를 포기하고, 자본의 편의에 굴복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3사 1노조는 (주)만도 만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앙상한 만도노조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현재 금속노조의 기업별지부 요건(3개지부 3천명이상)에도 미치지 못하여 이후 만도지부의 위상변화에도 문제가 있을 전망이다.
원상회복이 미흡한 지분투쟁
99년 말에 불거진 정몽원의 비리는 다시한번 만도노동자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특히 현장에서 제기한 지분투쟁과 9.3 원상회복 투쟁은 지리한 투쟁과 교섭 끝에 지분을 '돈'으로 맞바꾸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원상회복과 지분을 요구한 것은 부실자본가의 복귀거부 만이 아니라, 고용안정투쟁의 정당성의 문제였다. 지분 투쟁이 '돈'으로 바뀌고 원상회복 문제도 말끔히 처리되지 못하였다. 원상회복은 여전히 회복해야할 숙제로 되어있다.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맥빠진 파업투쟁
2001년 투쟁은 준비기부터 자본의 개악안이 나타나는 등 노사간에 피할 수 없는 투쟁이 예고되었다. 노동조합은 힘차게 파업투쟁을 벌이고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었다. 하지만 예년의 파업과 다르게 맥빠진 투쟁이 되어버려 '돈'은 따냈으나, 현장조직력 강화와 '파업은노동자의 학교'라는 의미에 걸맞게 조직되지 못함으로써 이후 노동조합활동을 어떻게 강화 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ERP 도입과 아웃소싱 등 지속되는 자본의 공세
자본은 '노동의 유연화'를 관철하기 위해 매년 시도때도 없이 현장을 침탈해왔다. 문막과 평택, 익산과 경주 등 현장 곳곳을 가리지 않고 도발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장조합원들의 강력한 투쟁의지와 분노에 비해 지도부의 막판 힘없는 협상으로 아웃소싱은 야금야금 먹어들고 있다. 지금도 자본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넘보며 현장이 약해진 틈을 타 '정보화'와 '이윤율 창출'을 이유로 자본의 공세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로의 전환과 그에 맞는 활동의 요구
만도노조는 금속노조 만도지부로 전환되고, 지부-지회 체계로 바뀌어 있다. 금속노조시대에
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되고,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투쟁하게 된다. 지난 문막지회 주물
공장의 하청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은 금속노조로의 활동의 첫발을 내딛는 좋은 사례였으나 비
정규직들은 얼마 후 모두 탈퇴하였다. 이제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조합활동에서 하청노동자
의 조직화와 금속노조체계로의 활동의 전개와 요구가 강조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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