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호] 만도노조 역사4

만도노조 역사4

'91 단체협약 갱신투쟁, 체결권을 사수하라

1990년 12월 12일, 91 단체협약 갱신교섭 상견례로 3대 집행부 첫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에 대한 사측의 전방위 탄압은 2차 교섭에서부터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로 체결권에 대한 시비다. 90년 12월 21일 개최되었던 2차교섭에서 사측은 체결권 시비를 걸었고 노조는 "사측이 거론할 사항이 아님"을 주장하는 것으로 91 단체협약 투쟁은시작된다.
91년 1월 21일, 1월 29일 2차례의 현장 분임토의를 거쳐 1월 31일 개최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찬성 59, 반대 2로 '쟁의발생 신고' 결의가 이루어지고 그룹사간 연대투쟁 강화를 위해'한라그룹노조협의회' 결성 또한 인준되었다.

'쟁의발생신고' 결의 후 노동조합은 2월 1일 '경단협 지침 박살을 위한 출정식'을 안양공장에서 점심시간에 개최한다. 90%의 높은 참여율로 투쟁의지를 모은 조합원들은 이후 '배식구 한곳 이용하기' '의무실 집단으로 가기' '잔업, 특근 거부 투쟁'을 벌이며 2월 27일 조합원 총회를 준비한다.
2월 27일 조합원 총회는 89.42%의 높은 찬성율로 '체결권'에 대한 조합원의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편 사측은 총 33명의 동지에 대해 '고소고발'의 탄압을 자행하였고 이중 김희준, 황성근, 김창한은 3월 5일자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3월 11일 파업을 예고하는 일정공고가 나가고 '고소고발 규탄 및 무노동 무임금 철폐규탄대회' '대의원 선거구별 텐트치기' '결사대 모집'등을 마치고 3월 14일 '파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의 현장분임토의를 진행하는 동안 '91 단체협약은 잠정합의'에 이르게 된다.
3월 15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 58.61%로 가결되었고 노동자들의 체결권은 사수되었다.

그러나 3월 18일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었던 김희준, 김창한이 새벽에 연행 구속되고 피신하였던 황성근마저 자진출두가 결정되면서 만도노조 역사 최초의 구속 동지가 발생한다. 33명의 고소고발자중 3명만 구속되고 여타 간부는 훈방등 불구속 처리되었다.

투쟁중에 싹튼 현장활동, 민주노조 사수, 체결권 사수를 향한 자발적 현장 투쟁
91 단투가 한창이던 1991년 1월 안양지부 모타사업부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보궐로 치루어진 조립반 대의원 선거에서 정도채 동지가 당선되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회사가 지정하는 게시판 이외에 부친다는 걸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안양지부 모타사업부 조립반 대의원이던 정도채 동지가 '소자보' 투쟁을 자발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조립반 박스 창문에 소자보가 처음 나붙던 날 '놀란 토끼 마냥' 달려온 총무부 직원과 관리직들의 허둥대는 꼴이라니… 사측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투쟁 시 노동조합 중심의 질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날이었다.
정도채 동지와 함께 모타조립반에 근무하던 이종선, 선병규, 임두혁등 선거구 조합원과 함께 자취방에 모여 만든 소자보 투쟁은 이후 91 임투를 거치며 사측은 뜯고 조합원과 노동조합은 2배로 다시 부치고 모든 벽면과 심지어 지게차를 타고 올라가 천정까지 도배하는 공방을 벌이며 조합원이 참여하는 투쟁 전술, 투쟁 시 현장은 노동조합의 질서 하에 있음을 알리는 투쟁으로 자리매김 된다.
한편 정도채 대의원은 소자보 투쟁으로 단협 마무리 후 징계위에 회부된다.

(사진1) 91년 2월 27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 임시총회
(사진2)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 조합원의 첫 체결권 행사
(사진3) 안양 모타 소자보 투쟁 - 너희가 떼어내면 우리는 벽을 도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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