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호] 만도노동조합의 역사(6)

만도노조의 역사(6)

'92 임,단협 부결 후 직권조인하다
92년 임금과 단체협약 갱신 교섭은 병행 교섭으로 진행되었다.
91년 전조합원 집결투쟁의 무산 이후 여러 이유로 집행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2 년차 집행과 사측과의 교섭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정권과 자본은 총액임금제를 들고 나오고 한국노총은 임금가이드라인과 다름없는 총액임금에 합의한 상황에서 92 임단협 투쟁은 비상한 투쟁과 돌파력을 요구하였다.
한편 사측의 탄압과 노조무력화 시도는 계속되었다.
92년 3월 단협투쟁중 노동조합이 잔업거부 투쟁을 벌이자 모타사업부 이00차장이 조합원에게 잔업강요와 특근 종용한 사실을 들은 모타사업부 임혁 대의원이 전화로 이00 차장에게 항의한 것을 이유로 사측은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 아울러 91년 한차례 징계당 한바 있으며 모타사업부 현장투쟁의 핵심에 있던 정도채 대의원에 대해서도 직장과의 마찰을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한다.
민주노조의 틀을 갖추고 기풍을 세우고자 했던 당시 현장투쟁, 대의원의 주요 활동은 휴식시간 등을 활용한 조합원 설명회 및 공청회 등이었다. 모타사업부 임혁, 정도채 대의원의 징계소식과 이에 대한 대책을 조합원과 함께 논의하던 쇼바사업부 동지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에 관리직인 윤00이 와서 정당한 조합활동을 방해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장석주 동지가 관리직 윤00의 뺨을 때린 사건이 발생한다. 사측은 즉각 장석주 동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으며 대의원으로서 정당한 활동을 위해 구역 조합원을 모으고 설명회를 진행하던 이성우대의원까지 징계위에 회부한다.
92년 임단협 투쟁중에 발생한 징계의 칼바람은 정도채, 임혁, 장석주 3명의 동지를 해고하였으며 이성우 대의원은 정직 3개월의 탄압을 당한다.

92 임단협은 바닥을 드러낸 현장조직력과 징계의 칼바람에 잔뜩 위축된 조합원을 동력으로 힘겹게 치러지고 있었다. 마침내 6월 30일 오후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맥빠진 부분파업은 일주일만에 끝이 난다. 기본급 22,500원(일급 750원)등에 잠정합의한 것이다. 7월 7일 8시 30분부터 진행된 '체결권 행사를 위한 조합원 총회'는 3,054명 투표, 찬성 925명, 반대 2,109명 69%로 부결된다.
이미 91년 부결사태를 겪은 집행부는 부결 후 '직권조인 후 총사퇴'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7월 21일 직권조인 한다.

직권조인에 이은 또 한번의 실망, 허탈 - 총사퇴 입장 철회
7월 28일 '철의 노동자'는 규약상 '잔여임기 1년 미만은 후임자 선출하지 않는다.'는 규정과 노동조합법상 '선출기관의 사의 수리'라는 조항을 들어 총사퇴 입장을 철회한다. 결국 직권조인은 직권조인대로 하고 직권조인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안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조합원의 실망과 허탈을 가져왔고 이후 현장은 많은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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