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반납 분서갱유" 흥분한 사람들 "금서목록"엔 침묵

이문열씨는 최근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라는 소설집을 출간했다. 그런데 많은 수의 비평가들이 이례적으로 이것은 문학작품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평론가 이현식씨는 이문열씨에게 "당신에게 소설은 한풀이 수단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평론가 홍기돈 씨는 "결국 분풀이를 하겠다는 의도에서 창작된 것이 <술 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이며, 그 의도가 객관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다 보니 소설의 차원에서 한참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평가했다.

역시 평론가인 김명인씨는 이 작품에 대해 "결과로 보면 이 작품은 예술작품으로 부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 마디로 '예술적 파탄'이라는 이야기다.

많은 평론가들이 동의하는 바이지만, 최근 들어 이문열씨는 이렇다 할 문학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택>, <아가>, <술 단지를 끌어당기며> 등 요 몇 년간 이문열씨가 독자들에게 선보인 작품들의 초라한 명세서가 그것을 증거한다.

문학청년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 중에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있다. 작품을 쓰는 일이 무슨 검객들의 칼싸움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이 말 속에는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않는 작가는 더 이상 작가일 수 없다는 문청들의 합의된 고뇌가 담겨있다.

그런데 현재의 이문열씨에게 이러한 '고뇌'가 있는가? 몇몇 언론을 통해 그가 보여준 극언들이나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낸 몰지각한 언사들을 고려해 보건대, 그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그는 '색깔론'과 '지역감정'이라는 한국적 후진성의 두 가지 암적 요소를 기막히게 버무린 칼럼들로 국민정서를 자극하는 일이 마치 위기에 빠진 한국사회를 구출하는 순교적 행위인 것처럼 엄숙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이런 엄숙한 포즈에 대해 한때 그의 소설의 독자였던 사람들이 유쾌한 '문화적 퍼포먼스'로 응답했다. 부산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는 화덕헌씨가 그 주인공이다. 화덕헌씨는 지난 11월 3일 이천의 '부악문원'에서 이문열씨 스스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로 표현했던 책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런 풍경을 두고 어느 기자는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표현도 썼다고 하는데, 만일 이런 분들이 책에 대해 그토록 놀라운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공식적인 금서목록에 올라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포함한 수천 권의 책의 운명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지 나로서는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이문열씨를 옹호하는 듯한 두 분의 발언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중견 소설가인 박완서씨와 평론가 한기씨가 그분들이다. 박완서씨는 "작가에게는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쾌한 반박은 문화비평가 진중권씨에게서 나왔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작가의 고유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문열의 문학을 조선조의 '우국문학'에 비유하면서 옹호하고 있는 평론가 한기씨의 이색적인 주장도 등장한다. "그의 문학은 그렇지 않아도 '우국문학'의 성질을 깊이 간직하였다." 친일파를 옹호하는 우국문학인도 있다니, 언어도단이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문열씨를 옹호하는 것이야 개인적 자유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독자와 시민을 '홍위병'이니 '악령'이니 하는 말로 의연하게 모독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문열씨는 이 참에 제대로 된 소설이나 한 편 써보시기를 진심으로 권유한다. 하물며 작가(作家)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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