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 노동조합의 역사[8]
노동조합 조직력 복원을 위한 일상 활동의 강화
제 7대 대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을 시작으로 4대 집행부의 활동이 시작된다. 4대 집행부의 시작은 침체된 노동조합의 조직력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일상활동의 강화에 역점을 둔다. 자본에 빼앗긴 현장에 간부들이 투입되어 회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귀 기울이며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간부가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반면에 자본은 상상을 초월하는 감시와 통제로 조합활동을 하는 간부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카메라로 고소용 사진 찍기,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에게 협박하기 등을 자행한다.
또다시 체결권을 들고 나오는 자본에 대항한 94년 임,투와 한국노총 탈퇴
94년 임,투는 또다시 체결권을 가지고 딴지를 거는 만도 자본에 맞서 초장부터 투쟁 분위기로 시작된다. 4월 15일 교섭위원 발대식과 조합원 출정식을 하며 1차 임금교섭을 마친 후 2차 교섭까지 진전이 없자 노동조합은 24일 조합원과 가족들이 참여하는 임투전진대회를 하기로 하고 대둔산으로 조합원 520명 정도와 조합원 가족 약 80명 정도가 모여 5개지부 연합 풍물패로 구성된 문화패가 선봉에 서서 산행을 힘차게 치르며 이 후 계속 진행될 임금협상에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은 이 후의 교섭에서도 지연 전술로 일관하였고 급기야 8차 교섭에서 다시 체결권을 운운하며 기만적인 안을 제시하게 된다. 이에 노동조합은 기습적으로 정시퇴근의 투쟁 지침을 내리고 중대위 회의에서는 쟁의 비품점검 및 투쟁의 배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이후 교섭은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노동조합은 6월 1일 중노위와 노동부에 쟁의발생을 신고하고 본격적인 투쟁 대오를 구축한다. 한편 노동조합은 교섭의 와중에도 위원장의 공약사항의 하나인 한국노총 탈퇴를 공식화하기 위해 5월 3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총 71명의 대의원 참석에 69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어용의 상징이었던 한국노총에 결별을 선언하고 민주노조를 희망했던 조합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자본은 교섭을 질질 끌면서 교섭을 해태하자 노동조합은 철야,특근 통제를 통한 투쟁을 배치하는 한편 안양공장의 3층 중역실에서 중대위 간부들과 안양 지대위 간부들이 항의농성을 시작하며 회사의 성실교섭을 촉구한다.
이후 교섭은 지루한 상태로 일관하다가 15차 교섭때 회사가 제출한 최종안인 기본급 50,000원 등을 포함한 안으로 투표를 부쳐 6월 22일 53.98%의 찬성으로 94년 임,투는 마무리된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