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자금 ‘꿀꺽’한 기업주들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공적자금 운영실태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한 결과, 약 150조원 규모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이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기업체 임직원 5천여명이 모두 7조 1,500억원의 재산을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은닉하거나 해외로 유출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11월 29일 감사원이 발표한 공적자금 빼돌리기 사례를 보면, 부실채권 경락배당금 횡령, 허위계약서 작성을 통한 대출금 횡령 등 지능형 범죄 뿐만 아니라, 지급의무가 없는 이사들에게 배당금이나 골프 회원권을 지급하고 영업정지 직전에 회사 자산을 가족에게 명의이전하거나 해외유령법인을 세워 공적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는 등 파렴치한 범죄도 상당수 밝혀졌다.

게다가 이번에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재산을 도피·은닉한 혐의에 대한 심증은 있으나 감사원에 계좌추적권이 없어 단서를 갖고도 더 이상 추궁할 수 없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법도 특별 감사에 큰 장애물이 됐다.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금융실명제법상 사생활 보호조항에 저촉된다”며 계좌추적 요건에 가로막혀 자료협조를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계좌추적권이 없는 상태에서 밝혀진 것이 7조 규모라면, 실제 기업주와 은행가들이 횡령한 금액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공적 자금을 잘못 관리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을 메꾸려 하고 있다.

김진표 재정경제부 차관은 지난 7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자리에서 “30년간 누적된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한꺼번에 상환하기는 힘들다”며 “내년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공적자금은 20에서 30년짜리 채권으로 차환발행해 상환부담 시기를 늦추겠다”고 말했다.

채권은 기한이 도래하면 상환해야 하지만 자금수요가 지속될 경우에는 만기시 상환에 맞추어 또다시 채권을 발행하게 되는데 이것을 차환발행이라 한다. 이같은 차환발행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넘어오게 된다. 또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지난달 말 계좌추적 요건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에 합의, 공적 자금 유출을 추적하여 처벌할 제도조차 개악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 자금이 줄줄 새고 있는데 정부는 무대책으로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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