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9월7일 팩스 신문 '인권하루소식' 창간
"진실을 파헤침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다."
하루소식의 탄생은 우연한 계기였다. 93년 사랑방 활동가 노태훈씨가 김영삼 정권 최초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가는 일이 생겼다. 시간대별로 상황변화를 팩스를 통해 국내와 국외 단체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에서는 "인권 활동가가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다는 것"으로 바로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이 있었다. 잡혀간 활동가가 남영동 대공 분실에 있는 것이 확인되자 남영동 앞에 가서 들쑤셔 놓았다. 그리고 팩스는 조그만 상황 변화가 있으면 계속 뿌려 졌다. 대공 수사관들의 인권유린 행위는 팩스를 통해 계속 뿌려지고 결국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애초 의도했던 간첩단 조작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단지 이적 표현물 소지죄만 적용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사랑방 활동가들은 "인권뉴스는 빨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팩스로 보내는 인권하루소식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286컴퓨터를 사용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당시 가장 대중화 되고 배달에 걱정이 없는 팩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fact(사실보도)에 기반한 인권뉴스는 참신한 시도였지만 매일 뉴스를 내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보수일간지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뉴스를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획이었다.
93년 8월4일경부터 1달간 준비호를 내 보내고 9월7일 창간호를 만들었다. 그 뒤 근 1년여동안 무가지로 운영하면서 한 달에 팩스 발송비만 100만원씩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1년 후 유가지로 바뀌면서도 독자 수는 줄지 않았다. 현재도 유료 독자 수는 500여명 정도로 일정 하다고 한다. 94년부터는 pc통신 서비스도 시작했다. 그 이후 신규 독자들은 거의가 통신세대들이다. 그리고 현재 진보넷의 인권하루소식 메일링리스트를 받아보는 사람은 1176명이다.
사랑방 류은숙 사무국장은 하루소식에 대하여 "특종에 욕심이 없는 신문"이라고 설명한다. 단, 한번 소식을 실으면 그 사건이 해결 될 때까지 취재하고 보도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원칙으로 인해 그간 하루소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이 무책임하게 터트리기 위주라면 하루소식은 문제해결과정이 기사작성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는 사소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보도를 하고 새벽4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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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 30분 이제서야 1차로 나온 기사를 점검하고 있다. |
특히 최근에 있었던 테러 방지법 문제 역시 하루소식에서 가장 먼저 다루었다. 하루소식 기자가 우연히 국정원의 홈페이지를 보다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라는 문제제기로부터 하루소식은 계속 보도를 통해 문제점을 알리고 사랑방 활동가들은 긴급 토론회를 잡았다. 테러방지법의 경우 워낙 급한 사안이라 긴급하게 제 사회단체들과 대책위를 꾸리고 기자회견, 국정원 항의방문, 1인 시위등을 통해 이슈화 해내고 하루소식은 언제나 처럼 매일 있는 조그만 변화도 기사로 내 보냈다. 결국 테러방지법의 정기 국회 통과는 저지 되었다.
8년동안 담당 기자 1인, 많아야 2인
2000호까지 약 8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하루소식만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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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소식을 편집하고 있다. 그날의 소식을 편집하기 전까지는 잘 수 없었던 8년의 날들이 지금의 하루소식을 만들었다. |
처음 팩스를 보낼 때는 50여군데 팩스를 보내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새벽에 신문이 나오면 일일이 번호를 누르고 다른 사람이 오면 이어서 계속 번호를 눌렀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제발 팩스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기까지 했다. 새벽 4시반 부터 전화벨이 울려 대니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팩스를 보내다 전화비가 너무 나오자 전화국에 요금을 깍아 달라고 했더니 각종할인혜택과 한꺼번에 팩스를 보낼 수 있는 기능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뉴스게릴라들이 몇 만이라고 하지만 일단 부딪히고 보는 하루소식의 사자키우는 마음에 당할 수 있으랴.
초창기 하루소식 애독자는 정보기관.
하루소식은 취재에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사실에 기반 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이건 안기부 건, 정부 건 무조건 전화를 걸어 "어디 기자니까 뭣 좀 물어 보자"는 식으로 취재를 했다. 이런 사실에 기반한 취재 방식 때문에 초창기 하루소식 애독자 중에는 정보과 형사, 안기부 등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정보기관들은 서로간에 정보 공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곤 한다. 그런데 하루소식에서 다음날 있을 집회소식, 혹은 현재 벌어지는 다양한 소식이 나가게 되자 정보기관에서 알지 못하는 정보들까지 생기게 되고 정보기관 실무자들은 어쩔 수 없이 매일 하루소식을 체크해야만 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기관보다 하루소식을 빨리 받아서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경쟁이 되었다. 한번은 안기부에서 당당하게 하루소식을 보내 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러나 다른 데는 다 보내줄 수 있어도 안기부만은 보내 줄 수 없다고 하자 전화를 했던 안기부직원은 자신이 서준식 대표를 아니 서대표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활동가는 "그럼 안기부장이 직접 전화를 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겠지만 하루소식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권단체로서 인권운동 사랑방이 하루소식이라는 매체를 발간하면서 '인권소식은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옴으로써 한가지 인권침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실을 수 있었다는데 있다.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집중 보도하면서 의혹의 실마리가 찾아진 '김상섭, 김은주 남매 간첩단 사건'은 94년 하루소식의 독자가 기하급수로 늘어 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하루소식은 인권운동 사랑방의 활동가들이 인권활동가로서 현장을 통한 훈련과 성장의 과정을 겪는 곳으로 작용 할 수밖에 없다.
없을 줄 알았던 뉴스. 그러나 8년 동안 뉴스는 항상 있었다.
처음에는 '과연 인권뉴스가 매일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8년 동
안 한번도 뉴스의 소스가 없는 날은 없었다고 한다. 사랑방의 활동이 알려지고 하루소식으로 인해 많은 사건들이 알려지자 지금은 많은 제보가 오고 있다. 심지어 각종 전화번호를 물어 보는 통해 114역할까지도 때로는 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지경이니 8년 동안 뉴스의 소스가 부족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8년 동안 인권뉴스를 계속 이어 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인권운동가들이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사랑방내의 어떤 이는 하루소식의 폐간을 매년 평가할 때마다 주장하기도 한다. 하루소식이 쌓아온 수많은 성과만 본다면 어찌 폐간론이 나올 수 있을까 하겠지만. 하루소식을 내기 위해 매일 날을 새야하고 고민해야 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사람잡는 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사랑방 - 인권운동 개념의 확장을 위한 활동
인권운동 사랑방은 93년도에 새로운 인권운동을 해보자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했다. 처음에는 5명 정도가 같이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인권운동은 매우 생소했다. 인권의 개념자체가 시혜나 자선등의 개념으로 한계 지워져 있던 상황에서 사랑방은 진보적인 인권운동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단체가 되고자 했다. 특히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 인권의 개념은 '민주화 운동, 양심수'의 문제 정도로만 생각하던 때 였으니 사랑방이 제기해 나간 인권의 개념은 현재 엄청나게 확장되어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인권연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풍토'가 사랑방에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랑방은 초기부터 인권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처음 했던 인권교육은 1달 동안 6명을 데리고 아침부터 오후5시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교육에 대해 사랑방 류은숙 사무국장은 "사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즐겁게 떠들고 술 마시는 일이 교육의 상당 부분을 차지 하지만 교육을 담당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은 넘쳐나는 일에 빠바죽을 지경이었죠. 그럼에도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주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인권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인권캠프에서 부터 국가보안법, 양심수를 넘어 장애인, 노숙자, 원진레이온, 주한미군 근절 운동 등으로 인권의 외연을 확장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권하루소식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랑방 - 이름값으로 활동 하지 않는다.
8년이 넘는 시간은 사랑방이 인권운동의 대명사로 불릴 만 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사랑방은 원칙을 고수하는데 흔들림이 없다. 사랑방은 자신들이 활동을 책임질 수 없으면 연대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 많은 연대기구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이름들이 연대기구에 들어가 있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연대기구에 힘을 실어주고 실무를 함께 맡아보는 단체는 몇 안 되는 진보진영의 연대체 구성의 방식에 대해 사랑방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함께 실질적인 연대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이름만 집어넣지 않으며 한번 이름이 들어가면 끝까지 책임지는 활동을 해 나간다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산다. 사랑방이 너무 커져 이름 값하느라 그런 다는 것이다.
2000호를 맞는 하루소식에게는 새로운 방식에 변화해야 한다는 충고는 필요 없을 듯하다. 하루소식은 사랑방 있어 매체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사랑방이 해나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민중의 보편적 인권을 쟁취해 나가기 위한 투쟁을 해 나가는 사랑방의 활동이 있는 한 하루소식이든 무엇이든 사랑방의 활동은 인권하루소식의 창간 정신을 벗어나지 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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