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생물무기가 문제다. 11월 19일 제네바에서 열린 생물무기금지협정(BWC) 5차 회의. 미국의 존 볼튼 국무부차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이라크, 북한, 시리아, 수단, 리비아 5개국을 생물무기보유국으로 규정하고, 이 나라의 생물무기보유 여부에 대한 검증과 국제제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뒤를 이어 부시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라크와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려면 사찰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주장했고, 12월 초엔 미 국무부가 나서 '세계 3위의 안보위협국'으로 북한이 지목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사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북한을 안보위협국으로 지목해왔었다. 미국은 이미 90년대에 들 무렵 "깡패국가(rogue state)"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거기에 북한을 포함시켰었다. 또 94년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북한에게 무리한 핵사찰을 강요하기도 했고, 이에 반발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자 한반도전체가 전쟁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가깝게는 북한 금창리지역의 핵시설 건설여부가 쟁점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제기하는 북한위협론의 실체는 과거와 비교해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면서 한번도 의제로 제기해온 적이 없던 생물무기가 문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무기위협론"
그동안 미국은 안보위협론의 배경으로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생물무기 존재 여부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또한 생물무기금지협정(BWC) 검증이행서의 비준을 거부하면서까지 생물무기에 대한 다자주의적 군축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았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생물무기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이유에는 전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이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생물무기에 대한 보편적 사찰이 의무화된 강제적 규범체계가 시행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장 미국은 생물무기개발에 이용되는 미국내 유전자공학 첨단기술이 외부에 노출돼 상업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더나아가 미국의 군사기지와 시설도 다자주의적인 원칙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클린턴 정부때 작성된 페리보고서에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집중거론되었지만 생물무기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생물무기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일가? 그 속내는 이렇다. 미국내 강경파가 대아프카니스탄 전쟁을 이라크로 확전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물무기제재라는 쟁점은 이라크로의 확전에 유력한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당시 생화학전을 준비한 바 있다. 한발 양보해 확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물무기라는 쟁점을 제기함으로써 미국은 자국의 군사력증강에 더할 나위없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생물무기보유여부는 위성 등 첨단장비를 통해 탐지가 가능한 핵 혹은 미사일 개발과는 달리 현장사찰 이외에 마땅히 보유여부를 판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크 혹은 북한 같은 나라에 미국이 생물 무기 보유 의혹을 제기한다는 이야기는 강력한 현장사찰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순히 자국의 군사시설을 공개할 나라가 얼마나 될까? 결국 논란에 논란만 거듭하게될 생물무기문제는 9.11 테러 이후 힘을 얻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 강황에 명분만 줄 뿐이다. 최근 플레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기자들에게 부시대통령이 대선 유세때부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미사일 방어체제를 추진하려고 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히려 위협을 느끼는 건 북한
결국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미국이 "생물무기위협론"을 바탕으로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갈등이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생물무기금지협정에 가입하고 있으며 생물무기의 개발 및 보유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생물무기 개발을 시인하고 사찰을 비롯한 미국측의 사찰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부인은 미국에게 강한 긍정으로 해석될 것이고, 미국의 강한 압력은 북한에게 미국의 의도를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불신의 확대재새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정욱식)
더나아가 미국의 신국방정책이 적어도 아시아를 중시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 공군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확실하다고 했을 때, 몇 년간 이루어진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의 법제화,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추진등과 같은 군사적 위협의 연장에서 북한이 대대적인 안보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발상이 바뀌어야
문제는 핵과 미사일을 거쳐 이제 생물무기로 확대되고 있는 일체의 북한위협론은 그것을 제기하고 확대시키는 주체가 미국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북한 민중들에게 돌아온다는 점에 있다. "북한위협론"의 함정은 북한의 위협만을 절대화시키고 그에 따라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일방적인 안보정책만이 추진된다는 것에 있다. 결국 해법의 출발은 이같은 일방주의적 안보관에서 남북한이 공동안보로 이행할 수 있도록 새롭게 사고하고 실천하는데에 있다. 이는 주적개념의 폐지, 북한의 안보불안을 자극할 수 있는 무기도입의 제고, 공격적 성격의 대북 군사전략의 재검토, 적극적인 군축등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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