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둘러싼 9가지 진실

지난 11월, 중동의 카타르 도하에서 WTO 뉴라운드 협상의 출범이 선언되자, 갑자기 정부는 물론이고 각종 연구기관, 언론 등이 '쌀개방 불가피','쌀값 하락 불가피'론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농민을 속이고 국민을 현혹하며 본격적인 쌀개방, 농업포기 바람몰이에 나선 것이다. 아래에서는 개방론자들의 대표적인 궤변을 반박하고자 한다.

1. "쌀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
- 2004년, 민족농업의 사활이 걸린 WTO 쌀재협상에 돌입한다. 그런데 협상도 해보기 전부터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횡횡하고 있다. 94년 UR협상 결과를 보면 2004년 재협상을 통해서 관세를 붙여 완전 개방할 것인지, 지금과 같이 의무도입물량만 수입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협상을 해보기도 전에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의 압력이 거세기 때문에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지레 겁먹는다면 왜 협상이 필요하며, 정부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사대주의적 근성을 버려야 한다. 94년 UR협상에서 프랑스는 영화산업을 '민족의 혼'이라며 미국의 개방요구에 맞서 예외로 인정받지 않았던가?

- 쌀은 주곡이며 우리 농업의 대들보와 같다. UR협상이후 값싼 외국농산물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와 우리 농업은 피폐화되었지만 그나마 쌀이 개방되지 않아서 농업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쌀마저 개방되고 가격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지어먹을 농사가 없는 것이며 농민들의 영농 포기가 이어질 것이다. 결국 쌀을 사다먹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며 농업은 파탄나고 말 것이다.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한다.


2. "값싼 외국 농산물 사다 먹으면 더 이익 아닌가(?)"
-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사다 먹으면 당장에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값싼 수입농산물 때문에 국내 농업 기반이 허물어지고 나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그것은 1980년 우리나라 흉작때 다국적 곡물기업이 쌀을 평상시의 3배 가량 올려서 판매한 사례나 94년 일본에 흉작이 들었을때 국제 쌀값이 톤당 220달러에서 650달러로 3배 가까이 오른 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 또한 농업파탄으로 영농 포기한 농민의 도시이주로 인해 발생할 비용(주택, 상하수도, 교통, 공해 등)은 농촌을 지원할 때 드는 비용보다 10배나 더 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농업관련 산업의 몰락과 실업자, 빈민의 급증은 막대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3. "쌀값이 비싸다(?)"
- 일인당 하루 쌀값은 603원이고 한끼 쌀값은 201원에 불과하다. 라면은 고사하고 껌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다. 쌀값 1% 상승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031%에 불과하다.

-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 소비지출 중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2.3%(4인 가구 월 4만원)에 불과하며 쌀값이 10% 올라도 가계지출의 0.2% 추가요인이 생길 뿐이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버스 · 지하철 등 공공교통비의 70%에도 못 미치는 비중이다.
- 또한 내년도 공무원 임금은 6% 인상 예정이고 물가는 3% 이상 인상될 전망(삼성경제연구소 등)이며 의료보험료만 9% 인상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쌀값이 비싸다며 물가인상의 주범인양 몰아붙이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4. "국회에서 농민표를 의식해 과도하게 쌀값을 인상했다(?)"

- 그동안 쌀 수매가 인상을 두고 마치 쌀생산비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농민들에게 준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실제 국회가 적정 이윤은 고사하고 최소한 쌀생산에 들어가는 비용 수준에서 쌀값을 결정한 적은 한번도 없다.


5. "2005년 쌀수입개방시 급격한 혼란을 막기위해 지금부터 쌀값인하해서 국제시세에 맞추어야 한다?"
- 현재 우리 쌀 80㎏ 가격은 미국산에 비해 4.5배, 중국산에 비해 5.7배나 된다. 이것은 우리 쌀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외국에 비해서 몇배가 되기 때문이다. 생산비의 50%나 되는 땅값(우리나라 평당 4만원, 미국은 700원, 중국은 무상임대)과 외국에 비해 3배나 비싼 농기계값 등.

- 또한 미국 쌀농가는 ㏊당 수입이 1299달러이지만 생산비는 1671달러나 되어 372달러의 적자를 볼 수밖에 없지만 정부의 보조금(520달러) 덕택에 148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

- 진정 쌀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생산비 절감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생산비 절감대책, 생산비보장대책도 없이 무조건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은 농민들에게 빚농사를 지으라는 것이거나 쌀을 포기하겠다는 것 중 하나일 뿐이다.


6.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 농업은 희생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 농업은 99년 현재 국내 총생산액(GDP)의 4.3%를 생산하고 있으며 2백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다 농기계 생산이나 농산물 유통 등 농업관련 산업을 합하면 GDP의 15%, 전체산업 종사자수의 25.3%를 고용하고 있다.

- 또한 농업은 다원적 기능이라고 하여 국민의 식량안보를 지키면서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며 농촌사회를 유지하여 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등의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홍수예방, 수질정화, 공기정화 등 쌀 농사의 환경적 기능만을 금액으로 환산해도 19조원에 달함)

-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들이 GDP의 2%에 불과한 농업을 지키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도 바로 농업의 이러한 기능 때문이다.


7. "농업은 언제까지 보호만 받을 것인가, 보호만 받다보니까 경쟁력이 떨어진 것 아닌가(?)"
-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농업을 보호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재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고 생산한 농민이 농산물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취약점 때문에 세계 각국이 각종 가격보장정책, 재해보상대책으로 농업을 보호, 육성해온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런 대책이 쌀을 제외하고는 전무하였다. 그것도 쌀의 경우 전체 쌀생산량의 20%도 되지 않는 양에 대해서만 가격을 보장해왔다. 그 외 농산물에 대한 농업보호정책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 오히려 그동안 정부는 물가안정이라는 미명하에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값싼 외국농산물을 수입하여 가격을 낮추었고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그대로 방치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이를 두고 농업을 보호해온 것처럼 말한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8."풍년이 들고 소비는 줄고 재고가 많아서 쌀값이 폭락했다(?)"

- 현재 재고는 989만석이다. 91년도의 1487만석에 비한다면 적은 양이며 재고량이 가장 많았던 91년도에도 쌀값이 올해처럼 폭락하지는 않았다.

- 소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결식아동이 10만 여명에 이르고 독거노인의 숫자는 100만명에 달하는 등 돈이 없어서 쌀을 사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또한 정부차원의 노력으로 쌀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일본의 예에서처럼 소비축소는 얼마든지 반전 시킬 수 있다.

- 최근 5년간 풍년이 들어 자급률이 100%를 겨우 넘어선 것을 두고 과도한 재고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93년, 95년의 냉해피해를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적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또 언제 재해로 인한 쌀생산 감소가 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학자들도 10년 주기의 재해발생을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 결국 올해 쌀값 폭락은 2004년 쌀시장 개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의도적으로 쌀값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9. "수매가를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대신 논농업 직불제 등을 통해 농가 소득을 안<정시켜야 한다. 외국의 경우처럼 가격지지정책을 축소하고 소득보장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 농산물 시장가격을 안정시켜서 농민 소득을 보장하던지 직접지불제와 같은 방식으로 소득을 보장하던지 방법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떤 방법을 쓰던지 농민이 정당한 땀의 대가를 받고 영농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농업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일 것이다.

- 이미 올 쌀값의 폭락으로 농가소득은 1조원이 넘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지급될 논농업 직불제 금액은 ㏊당 20~25만원(전체 예산 210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 뿐만 아니라 매년 줄어들고 있는 보조금 감축(매년 750억씩 감축)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예산으로 생색내기식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농업예산 중 직불제 예산 비중 : 우리나라 2.5%, 미국 19.8%, 일본 9.2%, 대만 11.2%, 유럽연합 70%)

- 외국에서는 농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지불제와 같은 소득보장정책을 이미 70~80년대부터 널리 시행해 왔으며 UR 협정이후 WTO에서도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95년부터 수매정책 축소 등 가격지지정책을 줄여오면서도 소득보장정책은 전혀 시행하지 않다가 올해에 들어서야 생색내기로 시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소득보장정책으로 농가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가격지지정책만 축소하고 소득보장정책은 생색내기식으로 시행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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