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노조, 민주노총 탈퇴
파업이 끝난 지 네 달이 넘어간다. 83일을 눈물로 버텼던 조합원들은 정리해고로, 희망퇴직으로, 휴직으로 일터를 떠났다. 지난 여름 회사가 공언한 ‘507명’ 인력감축은 아주 손쉽게 끝이 났다.
떠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풋풋한 정도, 일을 하는 보람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지나가다 우연히 동료를 만나 인사만 나누어도 눈치가 보인다. 옷 속 깊이 유인물을 숨겨와 화장실에서 돌려읽지만 대부분은 그것마저도 겁을 낸다. ‘열성 조합원’ 꼬리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스물네시간 노무관리팀 ‘비서’가 따라붙는다.
작년 말 위원장 선거에서 ‘노사관계 혁신’ 팀이 압승을 하더니 얼마 전 대의원 선거도 싹쓸이를 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걸까. 첫 대의원 수련회를 가는데 대의원 1인당 두 명의 비서가 출동했다. 어떤 경우에도 두 명 이상 모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단다.
그리고 얼마 후, 태광노동조합은 대의원 만장일치로 민주노총을 전격탈퇴했다.
울산매일신문은 1월 4일자 사설을 통해 ‘태광 노조의 대변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태광·대한 노조 파업사태는 우리 노동계와 산업계에 많은 교훈을 던져주었다. 나라와 지역의 경제, 회사가 처한 상황을 외면한 채 벌이는 ‘강경 일변도’의 투쟁은 명분 여하간에 뼈저린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중략) 차제에 민주노총도 소속 노조가 등을 돌린 이유를 재삼 음미하고 태광·대한 노조처럼 대변신을 꾀해야 이 격동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태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경영 위기 극복이 아니라‘민주노조 살해’를 위해
태광·대한 노조는 지난해 6월 12일부터 9월 2일까지 83일에 걸쳐 전면 파업을 벌였다. 애초 251명 무기한 휴직 방침과 함께 시작된 파업 투쟁은 사측의 ‘507명 감원' 선언에 맞서 정리해고 반대 투쟁으로 이어졌다. 507명이면 전체 조합원의 1/4이 넘는 규모였으며, 게다가 태광은 창사 이래 50여 년 동안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 기업이었다. 조합원들은 분노했다. 태광이 정리해고를 하면, 이 세상에 정리해고 못할 사업장이 어디 있는가. 9월 2일 제 20차 교섭을 통해 노사는 ‘회사는 2001년 9월 4일 예정된 근로계약해지 통보를 유보한다', '노조는 합의와 동시에 파업을 철회하고 2001년 9월 10일 부로 정상조업에 복귀한다'를 합의했다.
그러나 태광 자본과 '합의'했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노동조합의 착각이었다. 사측은 조업 복귀와 동시에 600여 명에게 휴직 통보를 내렸으며, 대규모 인원 감축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현장에서는 재파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한 달 내 타결'에 발목잡힌 노동조합은 교섭에만 목을 매단 채 한 달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제 조합원들이 ‘목을 매야 할' 차례였다. 10월 8일 정리해고 명단을 재차 발표한 태광 자본은 4차에 걸쳐 총 127명에게 보란듯이 정리해고 통보서를 날렸다. 이미 200여 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울분을 삼키며 ‘강제 희망 퇴직'을 당한 뒤였다.
정리해고를 통해 태광의 현장 활동가들은 말 그대로 ‘전멸했다'. 정리해고 대상자 전원이 파업 참가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태광 자본이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해 기필코 달성하고자 한 것은 ‘경영 위기 극복'이 아니라 바로 현장 조직력 파괴였던 것이다.
자본의 경고 '파업하면 이렇게 된다'
태광 노조는 화학섬유 연맹 산하 최대 노조이며, 울산에서도 조직력이 탄탄하기로 소문난 노조였다. 그런 노조가 회사의 무차별 폭격 아래 힘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울산 민주 버스의 경우 76일간의 파업 끝에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남은 것은 무차별 구속과 해고이다. 효성의 경우에도 ‘해고, 징계 최소화'에 합의하고 113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했지만, 결국 징계자는 300여 명을 넘어섰다.
“파업하면 이렇게 된다”를 알려주는 자본의 음산한 경고.
이 경고에 또 얼마나 많은 노동조합이 살해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노동조합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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