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수사를 받다가 사망하였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2002년 눈이 쌓인 모란공원에는 열사를 추모하는 프랑카드가 걸리고 열사의 투쟁을 이어 받아 투쟁의 길을 가겠다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15년 전 열사가 휘날린 작은 깃발의 의미는 여전히 퇴색되지 않고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묘역참배에서 사회당 원용수 대표는 "열사가 자신의 온몸을 던져 만들고자 했던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이 자리에 변치 않고 설 것이며 열사의 정신을 계승 해방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 할 것"이라 밝혔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그 아이는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진보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변치 말 것을 당부했다.
대중운동에 대한 새로운 결의를 내오는 자리
1월달은 학생운동에게 있어 상당히 지리멸렬한 시간이다. 여름방학은 농활, 노학연대
투쟁, 통일 투쟁등 다양한 대중 투쟁의 싸이클이 존재하는 시기라면 겨울방학은 새로 건설한 학생회를 준비하고 새내기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에도 다양한 투쟁 계획들이 제출되곤 하지만 대중 동력이 쉽게 복원되지 않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박종철 열사의 묘비 앞에 서는 것은 학생운동 진영에게 있어 '1년 한해의 운동을 결의하는 자리'가 된다고 한다. 서울대 구정모(법4) 총학생회장은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이 자리는 1년 운동을 결의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며, "비록 방중이라 많은 학생들이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추억하는 자들과의 견결한 투쟁을 해나가며 원칙을 지켜 나가는 운동을 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반신자유주의 세력들의 결집을 중심으로 투쟁해 나갈 것이며 학생운동의 단일한 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 할 것"이라며 열사정신 계승의 의미를 되 새겼다.
한편 박종철 열사 15주기 추모사업단 주관으로 15주기 추모제가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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