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대한 회고 : 2001년의 새로운 의문과 새로운 문제
[아탁 주간뉴스레터 112호] 2002/1/9 크리스토프 아기똥
사회운동이 1990년대에 컴백했다.
베를린 장벽과 페르시안 걸프 전쟁 사이에 구축된 신세계 질서는 신자유주
의적 자본주의의 독점적 패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시켜 줄 수도 있었다.
1995년 하반기에 공공부문 총파업과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이주자· 난민·사
회적 소수자-옮긴이)과 실업자들의 조직화는 이 같은 자본주의 지배에 대한
광대한 저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대·단결·민주주의(SUD), 노숙자 단체
(DAL), 실업반대행동(AC), 새로운 농민단체와 연대체들이 이러한 투쟁의 물결
속에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의 승리에 대항하는 투쟁을 일으킨 나라는 프랑
스만이 아니었다. 치아빠스 원주민의 사파티스따 운동은 물론이요, 한국의 노
조들, 브라질의 무토지 농업노동자들은 남반구 사회운동 부활의 상징이 되었
다. 비록 덜 가시적지만(최소한 프랑스에서는) 영국에서 등장한 [리크레임 더
스트리트](Reclaim the Streets, RTS, 직접행동을 통해 도시거리와 공공 공간의
해방을 추구하는 대중운동 단체-옮긴이)와 이탈리아의 [뚜떼 비앙께](Tute
Bianche, 완전 백색이란 뜻을 가진 단체 이름으로 반세계화 단체 중 가장 급
진적인 편에 속하며, 폭넓은 반(反)자본가 운동을 추구하는 그룹-옮긴이)가 청
년들의 새로운 급진화의 전조가 되었다.
1999년 12월 시애틀로부터 2001년 1월 포르트 알레그레까지, 2000년도에 반
세계화 운동은 국제적 투쟁공간에서 급격한 고조를 보였다.
더욱이, 이러한 투쟁들은 시위나 대항회의가 아닌 국제적 회합을 표상하며
또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아탁(ATTAC, 시민 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 연합)
과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전투적 세력들이 조직화되었
다. 또한 여기에는 새로운 세 가지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 맨 첫째로 이 투쟁
들은 지역과 국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곤 해도 지구적 운동이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동맹이 농민, 노동자, 그리고 시위에 대거 참
여하는 청년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부문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이 운동들은 환경운동, 사회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사이에 전혀 새로운 동맹
을 형성했다는 점에 특징적이다.
비록 이러한 운동들이 확산한 시기로 2001년도를 특징지울 수 있지만, 또한
새로운 의문과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강도를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사람에게 제노
아는 명백한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7월 말, 세계 7대 부국간 정상회담에 대항
하는 집회를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고 주민절반을 대피시키고, 항구·공
항·기차역 등 공공장소가 폐쇄된 도시에 거의 30만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이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진전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이 운동의 효과는 회의
장 주변을 봉쇄하거나 평화적으로 둘러치는 대규모 시위, 그리고 정리해고, 고
용불안정,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유전자조작 식품의 확산 등 신자유주의 세계
화가 일상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중을 힘겹게 설득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몇 만 명이 시위에 모였다. 4월, 북아메리카 퀘벡
과 마찬가지로, 제노아에는 대체로 매우 젊은 사람들 수십만 명이 반세계화
운동에 새롭게 참여했다. 새로운 전투적 세대가 등장한 것은 폭력적 진압을
견줄만한 시위의 규모와 열정에 현저한 남길 것이다. 이와 같은 시위의 팽창
과 확산은 지구적 운동-이탈리아에서의 '제노아사회포럼', 카탈로니아의 '총체
적 저항을 위한 운동(Movimiento de Resistancia Total)', 영국의 '지구적 저항'
또는 프랑스와 더불어 다수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는 아탁-의 출현과 강화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또한 2001년은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난 중요한 해였다. 시
애틀 이후, 운동은 확대되었지만 억압적 대응만 받고 주류 정치권의 진지한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9.11 공격,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그리고 미국
을 강타한 경기불황은 사정을 더욱 어렵고 만들었다.
9.11 공격에 대한 강력한 비난은 민주주의적 방법과 전지구적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운동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
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더욱 복잡한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활동가들
은 전쟁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노조들과 미국 외교정책을 거부하는 급진적 학
생운동 사이에서 분열되었다. 또 다른 곳에서, 반세계화 운동은 평화주의자 조
직과 연계하기도 했다. 그래서, 11월 17일 영국은 지난 20년 동안 가장 의미있
는 시위가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페루지아와 아시세스 지역 간의 행진에 다
시 한번 거의 3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활동반경을 넓히려는 반세계화
운동의 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테면 12월 말에 수백 명의 유럽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향해 떠
났다.
즉각적인 사건들과 관련된 반응을 넘어, 9.11 이후의 엄청난 변화속에서 보
면 보다 일반적인 통찰의 필요성이 분명해진다. 이미 모든 서방국가들에서 억
압적인 조치가 도용되고 있으며, 9.11 공격은 한차원 높은 광범위한 억압을 위
한 구실이 되었다. 빈둥거리거나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투옥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의 새로운 법은 청년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일순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신법은 9.11 이후 정치가들이 주장한 '정치로 복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보여준다. 미국 권력자들이 특별히 지정한 곳을 제외한 조세피난처에 대해
서는 실질적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한편, 금융과 초국적 기업의 활동공간을
제한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강대국들은 세계화에 대한
규제는 억압적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동안, 이와 같이 정치적 충격, 사회적 투쟁의 상승과 경제 하강이 동
시에 일어난 것은 세계화의 기초를 약화시켰다.
우리는 다른 시기의 세계화, 즉 1846년과 1879년 사이에 추진된 '자유무역'
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그 결과로서 발전된 사회
운동에 직면하여, 비스마르크는 사회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후퇴시키려는 억
압적인 법을 통과시켰다. 동시에 안정적 물가, 임금상승, 그리고 노동자를 위
한 사회보장과 같은 사회적 조치를 도입했다. 이러한 조치는 비교적 싼 가격
대를 가져왔고 그래서 독일경제생산력에 해악을 미쳤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처음에는 옥수수에 그 다음 다른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1879년에 재
도입하였다. 다른 강대국들도 원료에의 안정적 접근과 공산품에 대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가세했다.
이 중대한 때에 기업과 국제기구, 강대국 정부 등 핵심권력들은 '문명 전쟁'
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세계화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11
월 카타르에서 회원국들이 WTO체제 안에서 무역자유화의 새로운 라운드에
결의한 것이 바로 이것의 신호이다. 한편, 활동가들과 투쟁가들은 투쟁이 민족
국가 단위로 환원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19세기로 다시 돌아가면 노동운동이
분열되었을 때 자유무역의 종말이 일어났다. 국제노동자조합(IAW)의 '제1인터
내셔널'은 주식거래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1864년 런던에서 창립되었다.
세계박람회는 우리 시대의 대항 회의와는 조금 다른 노조활동가들과 투쟁가들
사이 대화의 장이었다. 그러나 국제노동자조합은 파리꼼뮨의 실패 이후 1870
년대 초에 분열되며 약화되었다. 시애틀과 제노아에서 저항했던 새로운 전투
적 세대는 '다른 세계화'를 위해 국제적인 투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만일 운동의 행위자들이 다르게 반응한다면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범위는 새로운 정의와 새로운 통로에 대한 모색 및 새로운 해답이 찾아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2001년은 전환 점이자 핵심국면으로 기억될 것이
다.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시위대의 요구와 대중의 의견을 고려할 것을 강제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음 선거
기간동안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제안이 제출될 것이며 토론될 것이다. 그러나
시위와 권력투쟁이 없다면 선거공약의 가치가 의미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도 자체적인 선거를 치루게 될 것이다. 이중의 첫 번째는 계
획을 제안하고 행동계획을 세우기 위해 2월초 8만 명의 활동가들이 전세계에
서 포르트 알레그레에 모였던 '세계사회포럼'이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