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2001년이 저물어갈 무렵, 아르헨티나 경제는 심각하게 뒤흔들렸고 급기야
디폴트(채무불이행)을 선언하게 되었다. 수년간 경제위기에 시달리던 아르헨티
나 실업자와 빈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주류 언론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무정부적인 '폭동'으로 묘사했고, 이들을 바라보는 상당수 좌파 지식인 또는
활동가들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제임스 페트라스
(James Petras)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즉, 이들은 상당히 고도로 조직화되
어, 자기중심적 운동을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로 나아가고 있으며, 정규
직 중심의 기존의 노동운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실업자운동을 규
정한다.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산해낸 대량 실업과 고용 불안정화
를 겪고 있는,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향후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지우
지할 한국에, 제임스 페트라스의 글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 속에서, [먼슬리리뷰]에 실린 페트라스의 글 '아르헨티나의 실업
노동자 운동'을 2회로 나눠 연재한다. 본 호(152호)에는 '서론', '아르헨티나 실
업자들, 폭발하다', '운동을 설명하기'를 싣고, 다음 호(153호)에는 '운동의 미
래'와 '결론'을 싣는다.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
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 운동
제임스 페트라스*, [먼슬리리뷰], 2002년 1월 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서로 겹치면서 상호연관된 세 가지 흐
름의 사회운동이 있었다. 대략 1970년부터 90년 사이에 있었던 첫 흐름은, 소
위 '신사회운동'이라 불리는 운동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인권, 생태주의,
여성주의와 소수민족 운동들,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운동들의 지도부는 주로 하위 중산층 전문가들이었고, 당시의 군부 및 문
민 독재 체제에 대한 도전이 이들의 정책과 전략을 이루었다.
두 번째 흐름은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강력한 정치적 힘으로 발전했
다. 주로 농민과 농업 노동자들이 구성하고 이끈 이 두 번째 흐름의 대중 조
직들은, 자기 지지자들의 경제적 이해를 추진하고 수호하기 위한 직접 행동을
조직화해냈다. 이러한 운동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메히코의 사파티스따
(EZLN),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 볼리비아의 코칼레로스(코카나
무 재배농장 농민-옮긴이)와 농민들, 파라과이의 전국농민연맹,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와 에콰도르의 농민-인디언 조직인 인디오민족연합(CONAIE) 등
이다. 이 조직들의 구성, 전술과 요구는 다양했으나, 모두 신자유주의와 제국
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와 국내 또는 해외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
는 데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일치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토지 재분배와 인
디언 공동체의 자치권을 위해 투쟁했으며, 코카 박멸 작전과 같은 방식의 미
국 개입, 군부대에 의한 영토 식민지화, 국가 경찰 및 군부 기관의 침입, 그리
고 플랜 콜롬비아 및 안데안 이니셔티브(Andean Initiative, 미국이 라틴아메리
카 지역에서 '마약 근절' 명분으로 벌이고 있는 6.6억 달러 규모의 군사작전-옮
긴이)와 같은 사회분쟁의 군사화에 저항했다.
사회운동 중 세 번째이자 가장 최근의 흐름은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
다. 여기에는 역동적인 아르헨티나 바리오(barrio, 아르헨티나 빈민촌-옮긴이)
중심의 실업노동자 대중운동, 도미니카공화국의 실업자 및 빈민 운동, 그리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휴 챠베즈의 대중추수주의적(populist) 구호 밑에 모여든
빈민촌 거주자들이 포함된다. 빈민 운동과 더불어, 농장노동자와 중소농들을
통합시킨 대중 투쟁 중심의 새로운 다부문 운동들이 콜롬비아, 메히꼬, 브라질
과 파라과이에서 등장하고 있다.
두 번째 및 세 번째 흐름의 특징, 운영 방식과 정치 행동 양식은 기존 자유
주의적 사회과학과 후기-맑스주의적 정통론이 제기한 여러 전형과 가정에 도
전장을 던진다. 예를 들어, '신사회운동' 이론가들은 계급정치의 종말과 더불
어, 민주주의, 젠더 평등, 정체성의 정치 등 문화적이고 '시민에 기반을 둔' 시
민운동의 부흥을 선언했다. 에릭 홉스봄과 같은 이론가들은 '인구학적' 논리를
이용해 현대 정치 투쟁에서 농민운동의 중심성을 무시했고, 다른 이들은 주변
적이고 분산된 고용 상태이거나 생산양식으로부터 단절된 도시빈민 대중은 제
도화된 정치 권력에 도전하기에 무능력하다고 주장했다.
그 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토지와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농민 및 도시빈
민 운동들이 폭발하였고 이는 기존 정통론을 깨부수었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
주의가 대중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사파티스
따, FARC와 CONAIE의 등장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이 운동들은 수십 년 간
의 폭력적이고 부패된 반동적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대중 집회를 조직화했고,
그 과정에서 새롭고 확고한 직접민주주의 형식이 정의되기에 이르렀다. 직접
행동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핵심을 찔렀으며, 빈번하
게 신자유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생산과 제품의 순환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에콰도르 인디언들이 2000년에 의회를 장악하면서 보여준 정치권력의
멋진 표현, FARC가 콜롬비아 지방자치제의 거의 절반에서 행사하고 있는 상
당한 영향력, 그리고 MST는 브라질 24개 중 23개 주에서 세력을 형성했다는
사실은 홉스봄의 이론에 대한 반증이 되었다.
특별히 흥미롭고 중요한 현대 사회운동이자 이 글의 주제는 아르헨티나의
도시 실업노동자 운동이다. 도시 빈민은 개별화되고 무능하다고 가정을 확실
히 뒤집는 이 운동을, 그것이 갖는 혁신적 특성과 기타 라틴아메리카 도시에
서도 폭발적인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탐색해볼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 실업자들, 폭발하다
모든 사회 변혁의 중심은 산업 노동자계급이라고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주장
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계급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것과, 불완전고용 노동자,
실업자, 비정규직 또는 "주변부" 도시빈민이 급증하는 것은 급진적 사회 변화
를 저해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사고된다. 맑스주의자들은
도시빈민의 파편화된 직업 구조가 그들을 원자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제
의 주요 부문으로부터 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때문에 축적 과정을 손상
시킬 능력이 별로 없다고 한다. 맑스주의자들은 또한 도시빈민 대중은 임금을
낮은 수준에 유지시키고 고용 노동자들의 요구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에 이익을 주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류 사회과학
자 몇몇과 NGO들은 이와 같은 고용구조의 변화가 도시빈민의 소규모 행동,
자립적 경제와 상호 교환을 통한 독립성의 증대를 가져왔기 때문에 긍정적이
라 말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안정적 고용의 부재, 생활 수준의 하락, 사회적 불만의 고
조, 폭동의 증가와 바리오로부터 비롯되는 불법 경제 활동의 엄청난 증가는
주류 이데올로그가 그려낸 '자기 지원'이라는 이상적 그림을 우스꽝스럽게 만
들어버린다. 하지만 조직화할 수 없다고 사고되던 집단이 세련되고 성공적으
로 조직화했다는 점은 또한 맑스주의적 정통에 도전한다. 2001년 8월, 전국에
서 10만 명이 넘게 고도로 조직화된 실업자들은 아르헨티나에서 300개가 넘는
고속도로를 폐쇄시켰으며, '불패'의 금융부문을 포함해 경제 전체를 마비시켰
다. 그 이전 기간에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폭력 충돌에서 연방 경찰은 5명의
피켓시위자들을 죽였고 3,000명 넘게 연행해갔다. 이와 동시에, 조직화된 실업
자들은 조직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천 개의 최저임금 수준의 임시직, 식
량 수당과 기타 보조를 국가로부터 쟁취해냈다. 2001년 9월에 이르러 실업자
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도 전역에서 대규모 고속도로 점거, 그리고 노동
조합과 연계한 성공적인 총파업을 조직해내 정부 활동을 방해하고 주요 회사
의 출입문을 봉쇄했다. 대단한 것은, 이와 같은 행동이 지방 상인, 지자체 피
고용자, 연금생활자, 공중보건노동자, 교사와 특히 마드레스 드 플라자 데 마
요(Madres de Plaza de Mayo, '5월 광장 어머니회'라는 뜻으로 실종되었거나
살해된 정치범들의 어머니들이 결성한 인권운동 조직-옮긴이)를 포함한 인권
단체 등, 광범위한 시민층과 사회계층으로부터 지지와 참여를 유도했다는 것
이다.
이렇게 엄청난 최근의 성공은 수년간의 인내심 있고 때로는 까다로운 조직
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실업자들은 지자체, 주 및 연방 정부에 탄원서를 보
냈다. 그리고 평화롭게 시위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무시당했을 때, 실
업자들은 주 정부 및 지자체 사무실을 점거하고 때로는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도로 점거와 대규모 피켓 시위가
내륙 도시 꾸트롤 코와 플라자 윈칼에서 1996년 6월에 시작됐고 1997년 4월에
또 일어났다. 이 시위들은 일자리 축소와 공장 폐쇄에 대항해 수천 명을 조직
화해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전기 및 전력 회사의 사유화로 인한 높은
전기료와, 전기료를 낼 돈이 없는 실업자들 집에 그 회사들이 전기를 끊어버
리는 것에 저항하는 대규모 도로 점거가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교외 지역에서 일어났다. 2000년이 되자, 이전까지는 석유 생산지
였던 네껜과 제네랄 모스코니에서 대중 시위가 일어났다. 사유화로 작업장이
폐쇄되고 광범위한 실업이 생겼고 정부는 대안적 일자리 형성을 위해 재정지
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IMF의 재정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예산을 삭감했
기 때문에 약속을 어겼던 것이다.
운동을 설명하기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 첫 단계는, 라틴아메리카 전역
에서 노동자 및 농민들의 삶을 파탄내버린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맥락에 이
운동을 위치 짓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이 그어
놓은 선을 건너면서 예측가능한 결과를 가져올 정책들을 배치했다. 공기업들
이 매각되었고, 새로운 소유주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시켰다. 광물이나
에너지 등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 사업은 폐쇄되어 유령 도시가 생겨났
고 이는 모든 사회경제적 부문들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공공부문 노동자들
의 임금과 노동 조건은 추락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수천 명의 공
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이 체불된 채 몇 달을 지냈다. 노동조합은 공격당했고,
조합원은 해고되었다. 사회서비스가 엄청나게 축소되어 연금생활자나, 사교육
또는 의료서비스를 받을 돈이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파장이 갔다. 해외자금
유입은 무분별한 투기로 이어졌고, 이는 곧 금융 시장에서의 폭락을 야기했으
며, 아르헨티나 부르조아지는 1,300억 달러(국가 공공채무 규모와 같은 액수)
를 해외로 유출시켰다.
1997년에 경기 후퇴가 시작되어 2001년도에는 완전한 불황이 닥쳐왔다. 지
역에 따라 노동인구의 30에서 80퍼센트가 현재 실업 또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여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인근지역에서는 16-18퍼센트라는 공식 실업율이
곧바로 두 배가 되었다. 대다수의 고용노동자들은 임시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
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교외 지역의 실업율은
30-50퍼센트에 이른다. 모든 곳에서 가정 대부분은 안 그래도 이미 매우 낮은
빈곤선 이하로 추락해버렸다.
경제적 어려움은 정치적 상황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가장 최근의 대통령들
3명(라울 알폰신, 칼로스 사울 메넴과 페르난도 데 라 루아) 모두는 경제의 핵
심부문을 아르헨티나 및 해외 자본가들에게 헐값에 팔아 넘겼고 현존하던 법
률을 공격해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3만여 명에 이르는 죽음과 실종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군관료들을 면제해줬다. 빈민들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두 주요
정당들 -급진주의자들과 페론주의자들- 은 가끔씩 지지자들에게 식량을 배급
하고 일자리를 줬으나 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조건과 호기의 결합으로 실업자운
동은 대중조직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조직화에 이익이 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조건들과 조직 자체의 의식적 전략 사이를 구별지을 수 있다. 이익
이 된 객관적 요소에 다음이 포함된다. (1) 실업상태의 산업노동자들, 한 번도
고용되어 본 적이 없는 청년들, 그리고 하위 중산층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다소 분리적이면서 동질적인 바리오의 여성 가장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2)
바리오에는 노동조합과 집단 투쟁의 경험이 있는 실업 상태의 산업 노동자들
이 상당히 많았다. (3) 장기화된 위기는 가계를 완전히 파탄냈고, 여기에서 전
투적인 여성 주체들(대부분 일 경험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청소년들도 마찬
가지이다)이 대거 형성됐다. (4) 바리오들은 상품과 이동인구가 주요 도시 사
이를 가로지르는 주요 고속도로들 근처에 있었다.
물론, 상황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은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가지
고 있어야만 한다. 오늘날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의 성공은 과거 실패의 경
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즉 바리오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조직하는 속에
서 노조 관료주의, 선거 정당과 국가 기관으로부터는 독립성을 유지했기 때문
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동조합들, 특히 노동자총연맹(CGT)은 고임금의 억압적
인 낙하산 보스들이 이끌고 있으며, 이들은 메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
고, 데 라 루아 정부나 정부의 억압적 정책들에 저항하기를 꺼려했다. 가끔씩
있는 정부 비판 그리고 심지어 총파업도 굴복하기 직전에 '화를 풀어주기 위
한' 무의미한 상징적 제의식이라는 점을 모두 -체제와 노동자 모두- 가 알고
있다. 예전에 실업노동자를 조직화하려던 노동조합의 무성의한 시도들은 -심지
어 '전투적인 노동조합들'의 경우도- 실패하였다. 실업자들을 조직화해야 한다
는 계획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조들은 조합비를 내고 있는 회원과 부
문별 투쟁에만 에너지를 집중했다. 실업자가 그나마 조직화됐을 때에, 이들을
경제 또는 개혁을 쟁취하는 데 별다른 효과를 주지 못하는 1일 집회에서 '부
차적' 파트너로 배치했다. 직접적인 억압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선심 쓰듯 빵
가루를 던져주면서 노동운동의 지도부를 흡수해버린 정당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실업자들의 새로운 조직화의 성공에 근본적이었던 것은 선거 정당
대장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보호자'-'피보호자' 식 정치를 거부한 것 그리고
자기조직화 및 직접행동에의 의존한 것이었다. 실업노동자운동(MTD)은 바리
오와 도시 거주자들이 조직화하고 이끈 풀뿌리운동으로 시작하였고 여전히 그
렇다. MTD는 매우 탈중심적인 구조로 조직되어 있다. 각 시에는 바리오를 기
반으로 한 조직이 있다. 그리고 바리오 내 여러 개 건물마다 비공식 대표와
활동가들이 있다. 활동 중인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시별 총회가 있다. 정
책은 총회에서 결정되며, 도로 점거의 요구안과 조직화도 총회에서 집단적으
로 결정된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여성, 남성과 아이들이 점거에 참여하며,
도로 옆에 천막과 간이부엌을 만들기도 한다. 경찰이 협박하면 주변 빈민촌에
서 수백 명이 추가로 쏟아져 나온다. 정부가 협상에 응하면 운동은 협상이 시
위대 전체가 있는 곳에서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의사결정은 집단적인 총회를
통해 행동 현장에서 이뤄진다.
이전 경험에 의거해, 시위대는 대표단 -심지어 전투적인 지역 주민들- 을 파
견해 개별적으로 정부 청사에 들어가 협상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
면 한 시위대 지도자가 말했듯이, "그들은 일자리로 우리를 매수하기" 때문이
다. 요구안 -주로 국가 지원으로 임시직을 할당할 것- 을 쟁취하면 가족의 필
요와 점거 참여의 적극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일자리의 분배가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해 이뤄진다. 만약 실업자보다 일자리가 적으면 일자리
분배는 순환 식으로 이뤄진다. 대표 개인이 협상하고 일자리를 분배하면 가족
구성원이나 친지를 선호하게 되며, '후원집단'을 등에 업은 까우디요스
(caudillos, 개인 명망가)가 돼버려 운동을 망친다는 것을 시위대는 역시 경험
속에서 배웠다.
도로를 봉쇄하는 전술 또한 MTD 성공에 핵심적이다. 생산의 도구를 노동자
들이 내려놓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것이다. 도로 봉쇄는 생산 투입물이든
국내 및 해외 시장에 내놓을 제품이든, 생산물의 순환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교통 마비는 바리오 근처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이러한 마비를
조직화하는 사람들 -제네랄 모스코니의 페피노, 히피와 피꾸에테(아르헨티나의
유명한 도로점거 운동가들-옮긴이)와 같은 지역 노동자들- 은 발언을 하고 요
구를 하는 데에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다. 일반 대중은 지지해주지만 발언하기
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들은 근방에서 벌어지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로
점거에 대규모로 참여하고 경찰이 지도부를 구속하는 것을 막아낸다. 실업노
동자는 빈곤, 사회적 미조직화와 기회주의적 수기(手技)의 수동적 피해자에서
자치적 풀뿌리로 사회적으로 조직화와 독립적 정치를 갖는 강력한 연대운동의
적극적인 성원이 된다.
지역이 운영하는 국가 지원 일자리에 대한 실업자운동의 즉각적인 요구에
다른 요구들도 뒤따른다. 즉, 식량 분배, 수백명에 이르는 실업자 투사들의 석
방, 그리고 수도, 포장도로와 의료 시설에 대한 공공 투자 등을 요구한다. 고
용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생존을 위한 임시직에 대한 요구를 넘어 생계가 될
만한 안정적인 고용까지 포함한다. 제네랄 모스코니에서는 운동 지도부가 빵
집, 유기농 텃밭, 정화조, 바리오 내 응급 의료 시설과 기타 여러 프로젝트 등,
식량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3백여 개의 프로젝트 -이 중 몇 개는 성공적으
로 운영되고 있다- 를 고안해냈다. 지역 관료들은 옆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지
역 실업자 위원회가 시(市)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교
외지역 몇 곳에서의 실업자운동은 준해방(quasi-liberated) 지구 형성으로 이어
져 운동의 힘이 지역 관료들의 힘을 중화시키거나 초월했고, 그래서 제기되는
특정 의제에 대해 주 또는 연방 체제에 도전할 수 있다. 제네랄 모스코니에서
제한적인 규모로나마 "평행 경제"가 등장함에 따라, 투쟁 기간 동안 대중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고, 실업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동네와 생계를 통제할 능
력에 대한 전망을 갖게 되었다.
지역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를 넘어, MDT는 외채상환과 긴축재정 계획 중단,
그리고 신자유주의 모델의 반전, 국가가 통제하고 재정을 대는 경제 발전의
재등장을 요구해왔다. 2001년 9월 초, 마탄자와 라 플라따에서 두 개의 전국
실업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실업자 조직, 노동조합, 학생, 문화 및 NGO 그룹
등 2,000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회의의 목적은 행동을 계획하고, 아이
디어를 공유하고, 전국적인 프로그램과 투쟁 계획을 짜기 위한 것이었다. 라
플라따 회의의 참가자들은 6가지 요구안에 합의했다. (1) 구조조정 정책, '제로
적자' 정책(zero deficit,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통해 공공지출 적자
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옮긴이) 및 연행되거나 기타 활동가들에 대한 법적 처
리를 중단할 것, (2) 긴축재정을 철회할 것, (3) 16세가 넘은 모든 실업노동자
에 대한 공공 고용 계획 및 식량 배분을 확대하고 이를 유지할 것, 그리고 실
업자에 대한 대대적인 등록제를 회의에 참석한 실업자 조직들의 통제 하에서
실시할 것, (4) 중소농들이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한 헥타르 당 100 페소(페
소=$1.00)를 지불할 것, (5) 정리해고를 금지시킬 것, (6) 제네랄 모스코니로부
터 경찰을 즉각 철수시킬 것.
회의 참가자들은 이와 같은 요구에 힘을 싣기 위해 9월에 전국적인 도로점
거 투쟁을 두 차례 일으켰다. 더불어, 회의 참가자들은 5가지 전술적 목표를
설정했다. (1) 불법적, 사기성 외채를 상환하지 않을 것, (2) 연금을 공공 관리
할 것, (3) 은행과 전략적 기간산업을 재국유화할 것, (4) 소농의 부채를 탕감
할 것과 그들 제품에 대한 생존가능한 가격을 책정할 것, (5) 굶주림을 초래하
는 정권을 타도할 것과 정치인들을 재편할 것. 회의는 36시간 총파업에 적극
적으로 돌입한다는 것과, 이 투쟁을 지도할 전국위원회를 반체제적 노동조합
총연맹 '아르헨티나 노동자 중앙회'와 함께 결성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 끝났
다.
* 제임스 페트라스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 운동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지
난 11년 동안 브라질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그는 헨리
벨트아이어와 [Globalization Unmasked: Imperialism in the 21st Century
(Zed Books, 2001)]의 공동저자이며, 단편소설집 [Andando por el mundo
(Altamira Publishing Group, 2001)]을 내기도 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