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해 울산 화섬 3사 연대파업을 시작으로 82일간 파업을 했던 태광대한화섬노조(이하 태광노조)가 지난 3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대의원 42명 중 41명이 참석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사업장 가운데서도 강성노조로 알려진 태광노조의 민주노총 탈퇴결정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하자 태광의 주가는 지난해 6월 25일 이후 처음으로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언론들도 앞다퉈 노조의 '결단'을 추켜세웠다.

태광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이미 지난해 11월 25일 노조 위원장 선거결과에서 예견됐다. 당시 노조선거에서 '극단적인 투쟁만능주의와 결별'을 선언한 류동국 후보는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내세운 이석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전체 조합원 1천3백56명 중 1천1백88명(투표율 87.6%)이 투표에 참석한 가운데 류후보는 8백28표(69.7%)의 지지를 얻어 3백38표(28.5%)의 지지를 얻는데 그친 이후보를 이겼다. 이후 열린 대의원선거에서도 현장활동가들은 6표가 최다 득표자일 만큼 극히 저조한 득표를 받고 탈락했다.

지난해 민주노총 6. 12 연대파업 돌입 찬반투표 당시 재적 조합원의 97%인 2천46명이 투표에 참석해 85.4%의 조합원이 찬성표를 던졌을 때와 전혀 다르다.

화학섬유연맹 울산지역본부의 국일선 교선부장은 "5백7명의 정리해고자 중에서 대의원선거에 출마했던 조합원 모두가 낙선했는데 이제까지 태광의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파업의 열기가 뜨거웠던 조합원들은 왜 파업을 마친 후 '투쟁만능주의와 결별'하는 것에 표를 던졌던 것일까. "도대체 태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안의 경과
태광산업의 노, 사는 창사 50주년이었던 2000년 11월에 "조합원을 인위적으로 감원하지 않는다. 권고사직·희망퇴직·명예퇴직·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01년 5월, 사측은 적자가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어 태광의 탄소섬유공정, 대한화섬의 단섬유 및 가연공정 가동중지 계획을 노조에 통보하면서 2백50명에 대한 고용불안이 야기됐다(태광대한화섬은 단일노조로 이뤄져 있지만 법인은 태광과 대한화섬으로 나눠져 있다). 태광산업은 97년 1백46억, 98년 1천4백4억, 99년 1천3백83억, 2000년 2백5억의 흑자를 내고 있었던 기업이었다.

지난해 6월 3일. 사측은 노조와 협상을 하면서 2백50명에 대해 고용을 보장할 테니 14.5%의 임금삭감을 요구했고 현장분위기는 일순간에 험악해 졌다. 결국 조정기간 3일을 앞둔(그리고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이 있었던) 6월 12일 태광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조정기간을 3일 앞두고 이뤄진 파업이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는 '불법파업'이었으며 이는 태광노조가 파업기간 내내 자본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요인 중 하나였다.

파업 45일째인 7월 24일, 사측은 울산지방노동청에 '경영상 해고 계획 신고서'를 제출하고 총 5백7명의 인원을 감축할 계획임을 밝혔다. 당시 노조는 1천명이 넘는 조합원의 결속력을 무기로 사측과 싸우고 있었다.

사측은 8월 11일, 사상 유례없이 파업조합원 중 9백84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으며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여오기 시작했다. 노조 집행부는 사측과의 협상을 통해 '정리해고 통보 유보'를 내용으로 하는 복귀안을 가지고 조합원 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이때부터 현장은 지도부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 형성됐다는 것이 내부 증언.

결국 상집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노조 위원장이 동사무소에서 사측과 만나 앞선 내용과 다름없는 '선조업과 정리해고 통보유보'안에 합의했다.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파업은 83일만에 끝나고 9월 2일 조합원은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사측이 합의한 정리해고 통지유보는 오래가지 않았다. 10월 16일 임금삭감 등에 대한 의견차이로 협상이 결렬된 후 사측은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파업기간동안 1, 2차에 걸친 희망퇴직자는 75명으로 극히 저조한 수였으나 복귀 이후 3∼5차 희망퇴직자는 3백20명에 달했다. 조합원들이 집행부에 대해 실망했다는 점과 사측이 희망퇴직을 할 경우 최고 5천5백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기 때문이었다.

사측의 노골적 선거방해
취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노조 홈페이지는 신임 노조 집행부 선거 직후 폐쇄된 상태였다. 또한 취재원 대부분이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위원장 선거과정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해고자들은 일단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사측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현장 활동가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5백7명의 퇴직자가 조합원들과 격리된 가운데 치러진 선거에서 구조조정 저지를 내세운 후보가 당선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리해고자투쟁위원회(위원장 이호우) 오성훈 기획실장은 사측의 선거방해 공작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운동 기간에 평조합원이 해고자쪽의 유인물을 읽으면 반성문 5장, 해고자와 만나면 반성문 10장을 쓰게 했다. 투표 당시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2명이 파업참가 조합원 1명과 함께 투표장에 갔으며 서로 투표용지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대의원에 출마를 했던 해고자 김만현 노조 문화부장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의원 선출 전날 회사 관리자들이 사측의 압력에 못이겨 출마한 대의원들에게 다시 한번 압력전화를 했다. 그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대의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민주노총탈퇴를 대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의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여간 반성문은 기본이고 해고자와 조합원사이에 접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거가 이뤄졌다."

현 노조집행부에 대한 의구심
정투위측은 현노조 집행부가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어용 집행부라고 단정하고 있다. 현 집행부는 △정리해고자는 현 집행부의 책임이 아니므로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한 점 △구속 조합원에게 지급된 생계비가 중단된 점 △대의원들만 노조사무실에 출입할 수 있게 한 점을 예로 들고 있다.

확인을 하기 위해 노조 사무실에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대의원들만이 노조 사무실에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선거기간 동안 평조합원을 대상으로 일어난 일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으나 그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어렵사리 전화번호를 알아낸 한 조합원의 경우에는 취재를 위해 전화를 했다는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끊기도 했다. 재차 전화통화 시도를 했지만 수화기 저편에서는 "전화기 꺼져 있어…"라는 소리만 되풀이 될 뿐이었다.

"조합원이 양심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한 관계자의 말처럼 태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사람은 남아있는 조합원뿐이다.
태그

태광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