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냄비혁명'을 무정부주의적 폭도들의 약탈행위, 혹은 몰락한 중산층의 대안없는 분풀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거리거리에서 냄비를 두드리며 싸웠던 이들의 중심에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의 중심인 MTD(실업운동연합)와 새롭게 일어서고 있는 이들 실업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많은 아르헨티나 사회운동세력들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1980년대에 IMF 구제금융을 받았으나 90년대 초반 전세계는 아르헨티나를 신자유주의 개혁의 세계적 모범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1200%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물가를 잡기 위한 통화위원회 제도(물가안정을 위해 화폐주권을 포기, 미국에 양도해버린 사실상의 달러공용화제도)와 이 제도아래 미 달러화에 대해 1:1로 고정되었던 페소화가치의 고평가 등은 현 경제위기를 직접적으로 가져왔으며, 계속적인 실업과 빈곤화는 인구 3명당 1명꼴인 실업자의 급등과 국민의 50%를 넘겨버린 거대한 빈곤으로 나타났다. 이속에서 실업노동자(이들은 실업노동자 혹은 실업전사라 부른다)운동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하고 새
삼스럽게 놀라는 바는 이들 실업노동자 운동이 기존의 운동과 운동세력들에 대해 가지는 독창적 활동방식과 비판적 성격에 있다.
이들 실업노동자들의 운동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해 8월 델라루아 정부의 살인적인 긴축재정정책과 노동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근 10만여명의 실업노동자들이 참여한 전국적인 고속도로 폐쇄 점거투쟁이었다. 이들은 최소한의 임금과 일자리, 그리고 식량을 요구하며 전국의 300여개 고속도로를 몸으로 막아섰다. 연방경찰은 이들의 투쟁을 폭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5명의
시위자를 죽였고, 3000여명을 폭력 연행했다. 그러나 9월에 이들은 다시 한번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하는 모든 고속도로를 점거했고, 동시에 주요 관공서와 사기업의 출입문을 점거해버렸다.
자본의 생산수단과 생산현장에서 쫓겨난 이들이 다시 한번 생산현장이 아닌 곳에서 온 사회의 생산을 멈추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9월 투쟁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책임지고 미래를 개척할 자신들의 5대 요구를 내놓았다. 이는 1) 불법적이고 부정한 외채를 거부할 것, 2) 여기금 공적관리, 3)사영화된 은행과 전략적인 기간산업의 재국유화, 4) 소농의 부채탕감과 생산가격보조금 지금, 5) 빈곤을 유발한 정권의 추방, 전면적인 내각개편이었다. 이들의 단호하고 분명한 투쟁과 요구는 지속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에 지친 학생, (공식)노조반대세력, 공공부문 노동자(CTA의 일부), 연금수급자, 교사, 인권그룹, 지역상인, 수규모 좌파정당(선거정당이 아닌) 그리고 중요하게는 아르헨티나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상징인 5월광정어머니회(Madres dela Plaza de Mayo)와 같은 다양한 사회계층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12월 냄비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렇게 엄청난 최근의 성공은 수년간의 인내심 있고 때로는 까다로운 조직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실업자들은 지자체, 주 및 연방 정부에 탄원서를 보냈다.
그리고 평화롭게 시위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이 무시당했을 때, 실업자들은 주 정부 및 지자체 사무실을 점거하고 때로는 불을 지르기도 하는 등,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도로 점거와 대규모 피켓 시위가 내륙 도시 꾸트롤 코와 플라자 윈칼에서 1996년 6월에 시작됐고 1997년 4월에 또 일어났다. 이 시위들은 일자리 축소와 공장 폐쇄에 대항해 수천 명을 조직화해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전기 및 전력 회사의 사유화로 인한 높은 전기료와, 전기료를 낼 돈이 없는 실업자들 집에 그 회사들이 전기를 끊어버리는 것에 저항하는 대규모 도로 점거가 노동자들 이 주로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교외 지역에서 일어났다. 2000년이 되자, 이전까지는 석유 생산지였던 네껜과 제네랄 모스코니에서 대중 시위가 일어났다.
공장과 회사에서 쫓겨난 이들이 공동의 논의를 모으고 나아가 전국적인 공동행동을 조직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이들이 주로 barnos라 불리는 고속도로 부근의 빈민거주지역에 집중되어 살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청년실업자와 여성의 비중이 높은 이들의 구성 또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모든 활동 회원들이 참여하는 (해당지역 지구별)총회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탈집중화된 활동방식은 주목할만 한다. 모든 정책과 요구, 도로 점거투쟁과 같은 투쟁의 조직화는 모든 활동회원들이 참여하는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결정된다. 점거투쟁을 벌일 고속도로 혹은 주요 간
선도로가 정해지만, 총회는 곧바로 투쟁의 후속 지원사업을 조직하며, 투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 남성, 어린이 참가자들은 텐트를 세우고 주방을 길가에 만든다. 경찰의 위협이 있으면 곧바로 주변에 있는 빈민가에서 몇백명이 쏟아져 나오고, 정부가 협상에 나서기로 결정하면, 점거에 참여한 모든 시위대들이 함께 협상에 참여한다. 의사결정은 집단적인 총회를 통해 행동현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협상대표단을 꾸리지 않는다. 대표단만이 참여하여 진행되는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반복된 배신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으로부터 피해당하고 배제당한 모든 이들의 이해와 요구로 만들어내며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책임질 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들은 아직 뚜렷한 정치적 전망과 온전히 전국적인 조직적 실천과 논의력을 보유하지 못한 신생운동집단이나 극단적인 실업상황의 돌출적인 조직이 아니라 명확한 정치적 판단과 전체운동의 요구, 자기조직화 및 직접행동과 적절한 전술을 진행했다. 실업노동자은 빈곤, 사회적 미조직화와 기회주의적 수기(手技)의 수동적 피해자에서 자치적 풀뿌리로 사회적으로 조직화와 독립적 정치를 갖는 강력한 연대운동의 성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나라이나, 긴 군사독재기와 경제위기, 민선정부로의 이양, 경제위기의 지속, 반복된 구조조정 끝에 구조화되는 민생파탄 등의 현실은 우리의 미래와 다르다고 장담할 수없을 것이다. 새로운 운동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아르헨티나 실업노동자운동은 그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참조글)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인터내셔널뉴스 제152호 (2002년 1월 21일)에서는 [먼슬리리뷰]에 실린 페트라스의 글 '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운동'을 2회로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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