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초점] 백악관의 엔론, 실명한 자산

백악관의 엔론, 실명한 자산
[카운터펀치] 1/18

부시 행정부가 엔론으로부터 멀어질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휴스턴에 근거지를 둔
현재 파산한 에너지 기업인과의 연관성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재무장관 폴 오닐과 상무장관 돈 에반스는 연방정부에게 회사가 미국 역
사상 가장 큰 파산에 처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부탁을 했던 엔론 이사진과
만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들이 엔론을 돕기 위해 관여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두 사람은 조사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 관여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딕 체니 부통령은 그 또는 대리인들
이 행정부 에너지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받기 위해 엔론 직원들과 부시 대
통령 집권 접반기에 6차례 만났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체니는 6개의 지부 중
5개의 지부를 휴스턴에 두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석유 시추 회사 할
리버튼 사(社)의 CEO였다. 그러나, 물론, 베일에 감춰져 있는 부통령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행정부 관리들은 엔론과 엔론의 파산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대(對)테러
전쟁에 좀더 중요한 책임성을 두어 왔다고 주장했다. 행정부의 태도 돌변은
임기 동안의 다차원적 의무에 대한 거만한 둔감성의 우수꽝스런 표시에 다
름아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침략 전쟁은 국내 의제를 무시하지 않
았던 다른 전시(戰時)의 대통령이 가져야 했던 압도적인 책임에 근접하지도
않는다.
사실 오닐은 싸늘하게 언론에 말했다. "기업은 성공할 수도 있고 망할 수
도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이다." 그는 민중을 보호하는 것이 연방 정부의 책
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작년에 엔론의 부도로부터 민중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것은 아마도 너무 많이 와버린 엔론과 부시 행정부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 때문일 것이며, 그것은 10년 전에 시작되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국무 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 그리고
통상장관이었던 로버트 모스바쳐는 부시가 물러난 후 1993년 엔론에 고용되
었다. 모스바처는 그의 인생 대부분을 휴스턴에서 살았는데, 가스와 석유 탐
사로 백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 하베이 피트는 SEC의 의장으로 한때 아더
앤더슨과 함께 일했던 변호사였다. 그의 독립적이지 않은 독립적 회계감사 회사
인 아더 엔더슨은 수 천 장의 엔론의 기록 문서들을 파기하고 삭제하였다. 로렌
스 린시는, 대통령 경제 고문으로 엔론의 컨설턴트였다. 전 상원의원인스펜서
아브라함은, 대통령 에너지 보좌관이고 엔론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았다.
칼 로브는 부시 전 대통령의 고문으로, 작년 봄에 엔론 주식 100,000달러 이
상을 팔았다.
미 무역 대표로버트 쥘릭은 한 때 엔론의 자문위원회에서 일했었다. 마크
라치코트는 부시가 '전국공화주의자위원회(RepublicanNational Committee)'
에 앉힌 인물로 엔론을 위해 로비를 한 회사의 변호사이다. 라치코트는 또한
부시의 플로리다주 재검표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법무장관 존 애쉬크로프트는 2000년 미조리 주(洲)미 상원 재선거에서 낙
선한 인물로 엔론 기부금 57,499 달러를 받았다. 최근에 폭로된 사실에 의해
패배는 에시크로프트와 그의 최고 보좌관이 한때 국가의 7번째 거대 기업의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법무부 조사는 레리 토마슨의 지위하에 있
는데, 그는 법무부 차관이고 과거 엔론을 대변했던 로펌의 파트너였다. 휴스
턴에 위치한 미 법무부는 대부분의 검사들이 엔론과 관련되어 있어서, 조사
활동에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텍사스 법무장관 존 코닌은, 부시 마지막 2년전에 임기에 있었던 휴스턴
토박이로 또한 1997년 이후로 엔론으로부터 158,000 달러를 수령한 것 때문
에 조사활동에 관여할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절대로 레이와 한 번도 그 회사의 재정적 문제로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휴스턴에서 5월에 열린 자선 기금 마련 행사에서 마
지막으로 레이를 만났다고 말하였다. 케네스 래이는 봉급과 수당으로 1999년
에 4천 2백 만 달러를 벌어들인 엔론의 CEO이고 지난 4년 동안 스톡옵션으
로 2억 5백만 달러를 긁어모았다. 그와 수 십 명의 이사진은 엔론이 망하고
있는 동안 몇 백 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이 기간에 1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
은 평생 모은 저축과 은퇴 이후 계획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텍사스 자선 기금 마련 행사 이후 3주가 못 되어, " 레이는 워싱턴에서 기
존의 모든 기록을 깨버리고 2천 1백 만 3십만 달러를 모금한 공화당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서 부시와 대면했다." 그것은 2000년 6월 비영리 '초국적
자원과 행동 센터'에서 발간된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 역사상 하루 밤
사이에 열린 가장 큰 모금 행사였다.

부시가 언제 마지막으로 레이와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엔론은 부시의 주지사와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약 550,000 달러를 기부했
다. 이 기부금으로 인해 '공공 정의를 위한 센터' 에 따르면 엔론은 부시의
가장 거대한 기부자가 되었다. 엔론은 또한 소프트 머니(하드 머니와는 달리
개인이나 특정단체의 헌금 한도액이 없다. 대신 정당은 소프트 머니 방식으
로 거둔 정치 헌금을 연방선거 과정에서 직접 사용할 수 없고 자기당 후보
의 TV 선거캠페인 광고비만 지원할 수 있다.-옮긴이)로 2백만 달러를 기부
했고 공화당 후보자들에게 백 오십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또한 그 돈의
4분의 1 가량을 민주당에게 기부하였다.
엔론과 다른 주요한 오염행위자들은 "내부적으로 비밀스럽게 환경적 혹은 안
전성 있는 회계를 수행하는 오염행위자들에게 (환경)보호 의무를 없애버린" 것
에 의해 혜택을 받아왔다. 1999년, 부시는 1971년의 주(州)공기 청정법의 확장에
사인했는데, 그것은 엔론과 다른 오염행위자들이 보다 강력한 환경보호법안에
대면하지 않고 "제외" 되도록 해주었다. 기업감시단은 부시가 "제외" 조항에 서
명하지 않았다면, 엔론의 휴스턴 공장은 매년 질산 3,100톤을 공기중으로 배출
하지 못했을 것이며, 단지 250톤만을 배출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휴
스턴은 느슨한 오염법에 의해 전국적으로 가장 오염된 도시가 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공모로 인해, 엔론은 또한 텍사스 주를 상대로 전력을 탈규
제하는 싸움을 이끌어 내왔다. 캘리포니아 주 에너지 위기 때 에너지를 비정
상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팔아 과도한 이윤을 긁어낸 것 또한 텍사스 기업이
었다. 탈규제는 또한 엔론 주식의 가치가 그토록 빨리 상승할 수 있었던 요
인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그 회사가 스스로 자초한 도박을 견
디지 못하도록 짖눌렀다. 부시 행정부는 아직도 여전히 엔론의 이메일과 연
루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1년 전에 소비자 감시단 그룹 '공공정의를 위한
텍사스인' 의 엔드류 웬트는 "엔론의 달러로 당선된 부시는 백악관을 위험한
수위의 엔론 가스로 채울 것이고, 소비자는 그것에 타버릴 것이다." 라고 예
언적 언급을 하였다.
엔론 기부금은 에너지 회사를 감독하고 규제하며 위법행위자로부터 민중
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모든 부서에 엔론이 스며들도록 하였다.
그러한 기부금은 필연적으로 정부를 엔론의 신하로 만들었고, 잘해야 '무분
별한'것이고 최악의 경우 '범죄 은닉'을 보장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엔론의 기부금에 의해 오염되었다." 라고 존 멕케인( 아리조
나 주 공화당 의원) 이 말했다. 그는 재정개혁과 통합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이젠 국가 입법부 위원들과 관리들이 특
정한 이해보다 민중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보장하는 재정개혁 입법 캠페인
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이 글은 R. 브라쉬의 도움을 받았다. 월트 브라쉬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고 이전에는 리포터와 편집장으로 수상을 적이 있다. 저서로는
섹스폰의 즐거움: 클린턴 행정부 기간의 미국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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