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피고는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 1월30일 한국언론회관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조선일보 반민족·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의 기소장을 이미 일주일 전에 전달받은 피고 조선일보는 참석하지 않았다. 행사장 건너편에 자리한 조선일보를 대신해 빈 피고석에는 조선일보 신문이 놓였다. '조선일보'라 쓰인 비석에 정의의 여신이 오른손을 얹은 조형물이 장식된 무대에서 고영구 수석판사(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이윽고 재판 시작을 알리는 망치를 두들겼다. 그 옆으로 오종렬 판사(전국연합 상임의장)와 성유보 판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가 배석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5백여 청중이 일어서 민간법정을 박수로 환영했다.
김인회 수석검사(변호사, 민변)가 먼저 기소사실을 낭독했다. 그는 1920년 창간부터 오늘날까지 조선일보 지면에 펼쳐진 배신행위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이어 김승교 검사(변호사, 민변)와 임종일 검사(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집행위원장), 최규엽 검사(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의 기소가 이어졌다. △일본 천황 노골적 미화 △제국주의 전쟁에 조선 민중 동원 △미국 일변도의 보도 △3선개헌 지지 △유신헌법 옹호 △5.18 항쟁에 대한 악의적 왜곡 △전두환 찬양 △금강산댐 국민사기극 △지난해 통일대축전 참가단 음해 등이 검사의 입을 통해 하나하나 폭로됐다.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 강정구 교수(동국대)는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강 교수는 특히 '만경대 파문'의 진실과 수구언론의 왜곡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조선일보 사주였던 고 방응모 씨의 장남인 방재선 씨도 증인으로 출석해 "검사가 기소한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국민 앞에 사과한다"면서 "조선일보는 도덕불감 사주의 손을 떠나 국민주 신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증언했다. 방 씨는 현재 조선일보 사주일가와 재산상속무효소송 등을 벌이고 있으며, 사주일가를 외환관리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이어 변론에 나선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등 변호인단은 "조선일보의 범죄는 인정하지만, 이런 신문이 판매 1위를 차지하도록 한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변론했다.
기소와 변론이 끝난 뒤 노동자와 교사, 약사, 기자, 학생, 종교, 청년, 노점상 등 각계 인사 3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결국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법정은 피고인 조선일보에게 △유죄로 인정된 사실의 보도기사에 대해 사죄할 것 △유죄기사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임직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 △반민족적 언론행위 재발방지를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편집권독립에 나설 것 등을 권고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의 보도행태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만큼 범죄사실이 인정되며, 이에 따른 공소시효도 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은 4시간여만에 모두 끝났다. 민주노총의 구독중지운동, 4개월의 준비기간과 '민간법정 헌장' 제정 끝에 1천2백명에 이르는 추진위원의 힘으로 조선일보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해방 직후 구성된 반민특위 이후 반세기만에 민중의 손으로 다시 열린 반민족행위 처벌 특별재판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법정에 모아졌던 언론개혁의 의지는 재판의 끝과 함께 다시 불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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