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미국 UPS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

(왼쪽 위) UPS 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 (왼쪽 아래) 캘리포니아에서 피켓팅에 나선 파업 노동자들이 UPS 트럭의 통행을 막고 있다. (오른쪽 위) 뉴욕의 파업 노동자들 (오른쪽 아래) 아틀란타의 파업 노동자들[photo - copyleft 울산노동자신문]

1997년 8월 4일부터 2주간 미국의 UPS(United Parcel Service : 합동소화물서비스)라는 택배업체에서 일하는 18만 5천명의 노동자들이 미국 트럭운전사 노동조합(the Teamsters Union)의 주도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임금격차 축소를 주요 요구로 내건 파업을 벌여 승리를 거둔다.

UPS 파업은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대단히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노동운동이 지극히 무기력하고 그래서 19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가 가장 먼저 현실화되어 노동자들의 권리 후퇴가 별다른 저항도 없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UPS 파업은 또한 세계 노동운동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비정규직화 흐름에 일정한 쐐기를 박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파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신자유주의 철폐 투쟁에 있어 소중한 시사점을 남기는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UPS 파업의 사회적 배경 ―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후퇴

19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레이거노믹스)가 전면화되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권리는 심각한 후퇴를 거듭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90년대 초 평균임금이 80년대 초에 비하여 6~7%나 감소하였다. 특히 고졸 노동자의 경우에는 20% 가량이나 줄어들었다.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노조 조직률이나 파업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항공관제사 노조 파업을 궤멸시킨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81년 8월 레이건 대통령은 연방공무원 신분으로 법적으로 파업이 금지된 항공관제사 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파업에 참가한 12,000명을 전원 해고하고 즉각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파업은 결국 노조 요구를 하나도 관철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막을 내렸는데, 이후 레이건은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재채용조차 금지시켰던 것이다.

UPS 파업의 직접적 배경 ― 심각한 비정규직화, 임금 차별, 노동강도 강화
UPS는 하루에 1천 2백만개의 소화물을 배달하며 미국 택배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거대자본이었다.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남기며 서비스 산업에서 고효율과 고생산성을 이룩한 모범사례로 꼽히는 회사였다.

UPS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파트타임 노동자를 대규모로 늘렸다. 97년 파업 당시 UPS의 전체 노동자 33만 8천명 중에서 60% 가량이 파트타임 노동자였는데, 10년 사이에 파트타임 노동자 비율이 42%에서 60%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UPS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파트타임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당시 UPS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급 19.95달러를 받았는데,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시급 9.65달러밖에 받지 못했다.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주면서 UPS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온종일 근무해야만 하도록 많은 업무를 떠맡겼다. 파업 직전 UPS의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주 50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UPS의 노동강도는 매우 높아서, 산재발생률이 해당 산업 평균의 2.5배였다.
그런데도 UPS 자본은 파업 직전에 소화물을 배달하는 운전사가 직접 손으로 수취인에게 날라줘야 하는 짐꾸러미 중량의 최대치를 32kg에서 68kg으로 규정을 변경했다.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UPS 파업의 준비 ― 전투적인 지도부 등장, 체계적인 조합원 교육

UPS 파업은 트럭운전사 노조가 론 캐리(Ron Carey) 위원장의 주도로 1년 이상 착실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트럭운전사 노조는 오랫동안 마피아와 연결된 노골적인 어용 지도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고통이 엄청났지만 UPS와 거듭 무교섭 타결이나 무파업 교섭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UPS의 뉴욕 운전사 출신인 론 캐리는 UPS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노조 상근자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1991년 트럭운전사 노조 위원장에 당선되자 전면적인 노조 혁신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의 혁신 작업은 노조 관료층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고, 96년 선거에서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다.

이 때부터 론 캐리는 UPS 파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노조는 약 1년 동안 모든 조합원을 상대로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가를 충분하게 이해시키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시켜 내는데 주력했다.

UPS 파업의 전개과정 ― 전례없는 ‘계급적 연대’

UPS의 파업으로 인한 서비스 중단은 미국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파업이 2주일 가까이 전개되자 중소제조업체들의 판매가 중단되고, 병원에서 필요한 혈액공급이 중단될 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UPS 자본은 섣불리 대체인력 투입과 같은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다. UPS 파업이 미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보기 드문 계급적 연대를 실현하며 강력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UPS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파업투쟁에 나섰다. 또한 미국의 노동조합 총연합체인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가 전례없이 UPS 파업 지원을 위해 조직역량을 총동원했다.

AFL-CIO의 적극적인 연대는 95년 10월 전투적인 성향의 존 스위니가 위원장에 당선된 결과였다. 존 스위니 위원장은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층에 안주해 온 미국 노조운동의 체질을 혁신하여 저임금 노동자의 조직화에 적극 나서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UPS 노동자들에게 미국 전역에서 2천만 달러에 달하는 파업기금이 답지하고, UPS 노동자들의 피켓팅을 지원하기 위해 각 노조들이 조합원들을 동원했다. 존 스위니 위원장도 직접 피켓팅에 참여했다. ‘계급적 연대’는 안중에 없고 개별 노조의 투쟁을 그냥 내버려 두기만 했던 미국 노동운동의 전통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UPS 파업의 승리 ― 파트타임 1만명 정규직화
마침내 파업 2주만에 UPS 노동자들은 요구조건을 대부분 따내며 파업을 승리로 마무리 짓는다. UPS의 신자유주의 경영전략에 파열구를 낸 것이다.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UPS 자본은 파트타임 노동자 1만명을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로 약속했다. 또한 향후 회사 규모 확대에 따라 추가로 8천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 정규직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운전사가 운반할 짐꾸러미 중량의 최대치에 대해서도 노조와의 교섭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종전대로 5년을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 노동운동 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UPS 파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의 자본가들은 트럭운전사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비장의 일격을 가한다. 96년 론 캐리가 위원장으로 재선되었던 노조 선거가 무효라는 법원의 최종 판결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97년 11월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마피아와 연결된 제임스 호파가 위원장으로 당선되고 만다. 다시 노골적인 어용 지도부가 들어선 것이다. UPS 파업의 승리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었지만, 자본의 압도적인 우위 아래 놓여 있는 미국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한계로 인해 그 승리의 성과가 노동운동 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잠깐 엿보였던 미국 노동운동 활성화의 가능성은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하여 또다른 계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계급적 연대, 사회변혁, 정치세력화를 포기한 미국 노동운동의 무기력
그렇다면 미국 노동운동은 왜 이토록 자본의 위세에 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까? 그 핵심적인 원인은 미국 노동운동의 노선에 있다. 미국 노동운동은 2차 대전 이후 ‘계급적 연대’를 거부하고 ‘조합원 실리주의’를 추구해 왔다. 또한 ‘근본적인 사회변혁’이 아닌 중산층의 ‘자유주의’ 이념이 노조운동을 지배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노동자 대중들이 실리주의와 자유주의에 깊이 빠져들었고, 결국 미국의 노동자 계급은 사회세력 관계에서 항상 자본에 비해 절대적 열세를 면할 수 없었다.

노조운동의 무기력을 반영하여, 미국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도 지극히 무기력한 상태를 면치 못했다. 미국의 정치구조가 상당한 정도로 대중민주주의 형식을 띠고 있는 유리한 조건인데도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한 채 늘 보수정당(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표밭 노릇만 해 온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기력이 다시 사회세력 관계에서 자본의 압도적인 우위를 재생산해 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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