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이 됐어도 부산 일신기독병원 유순덕 씨(33)는 귀향길에 오르지 못했다. 올 설에도 분만실에서 비상대기 상태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문을 닫을 수 없는 병원의 특성상 25명 분만실 직원 중 설날 비번은 6명 뿐. 나머지는 꼼짝없이 병원에 매어있어야 한다. 92년 병원에 취직해 10년을 지내는 동안 가족과 보낸 설이 5번뿐인 유 씨는 6살 된 첫째가 "왜 다른 엄마들은 설날 놀아주는데 엄마는 병원에 가냐"고 물을 때 가장 맘이 아프다고 한다. 통영 친정집에 모인 식구들이 "왜 꼭 오늘 근무를 해야하냐"고 섭섭함을 전하기도 하지만, 설날에도 10여명의 아이를 받아야 하는 유 씨로선 별 수가 없다.
죽암휴게소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김천용 씨(39)도 설명절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김 씨는 휴게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10년 동안 설을 맞아 단 한번도 강원도 영월 큰집엘 가지 못했다. 김 씨는 "함께 근무하는 40여명 조합원 모두가 같은 처지"라며 "명절이 되면 매출도 4배 가량 늘고, 이에 맞춰 성과급도 높아지지만 씁쓸한 기분을 달래지는 못한다"고 털어놨다.
설이 다가오면 MBC 보도국 사회부는 '특별근무표'라는 걸 짠다. 열 명 남짓한 근무인원이 하루에 너댓명씩 조를 짜 연휴 내내 귀성객들의 움직임을 취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고속도로 사정을 알려줘야 하고, 헬기로 도로상황을 살펴야 한다. 전용차선 위반차도 고발해야 하고, 텅 빈 서울도심도 보여줘야 한다.
3교대 근무가 일상화 돼있는 화학·섬유 노동자들도 '실향민'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구미공단 금강화섬의 경우, 전체 조합원 270여명 가운데 절반이 기계 앞에서 명절을 쇄야 한다. 한번 기계를 멈추면 재가동하는데 한달 이상 걸리는 설비도 있기 때문이다. 몇몇은 교대시간에서 한 두시간 정도 양해를 구해 '깜짝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설날 아침의 여유로움을 맛보기는 힘들다. 그나마 대책이라는 게 3교대를 2교대로 바꿔 1개조는 휴가를 주는 방식. 이렇게 하면 추석과 설 3번 중 1번은 쉴 수 있다.
민족 최대 명절 설. 그러나 이들 노동자에게는 세초(歲初)의 기쁨 한켠에 짊어져야 하는 노동이 무겁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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