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기획연재]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현 시대 여성해방의 이념으로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해온 [먼슬리리뷰]는
2001년 5월 호에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인 바버라 엡스타인은 이 글에서 지난 30년 간의 서구 여성운동을 평가하면서 급진
적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먼슬리리뷰] 2001년 10월 호에는 이
글에 대한 두 개의 논평과 더불어 바버라 엡스타인의 답변이 실렸다.
[인터내셔널뉴스]에서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위와 같은 여성운동에
대한 논쟁을 연재한다. 157호에는 바버라 엡스타인의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를
싣고, 이후 3번에 걸쳐 이 글에 대한 두 개의 논평과 엡스타인의 답변을 연재할 것
이다. 물론 서구 여성운동에 국한되어 있지만,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은 이번 연
재가 여성해방의 원칙과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여성운동의 과제를 다시 한 번 조명
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인터내셔널뉴스] 편집팀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먼슬리 리뷰], 2001년 5월호, 바버라 엡스타인*

19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여성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정치적으로 강력했던 이 운동은 재생산권을 위한
전국적 조직과 캠페인, 남녀평등 수정헌법(ERA) 운동과 기타 개혁운동 등 자유주의
적 분파를 포함했다. 급진주의 분파로는 문화적 또는 풀뿌리적 프로젝트와 더불어
여성해방 및 의식화 그룹 등이 있었다. 여성운동은 또한 직장, 노동조합, 정부 및 기
타 기관에서의 여러 모임과 조직화 사업으로 구성되었다. 이 운동은 많은 여성들의
삶과 미국의 일상생활을 지대하게 변화시켰다. 이전까지는 오로지 남성들의 전유물
이었던 직업과 생산직 노동을 여성에게 개방했으며, 대중매체가 여성을 그려내는 방
식을 변화시켰다. 정치, 종교, 스포츠와 여러 기타 분야와 기관으로 하여금 여성평등
에 대한 요구를 도입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참여와 리더쉽에 있어 성별 균형이 변
화되기 시작했다. 가족과 대인관계에서의 불평등과 억압을 정치적 문제로 바라봄으
로써 여성운동은 이전까지 사적이고 그래서 공적 비판의 대상이 없다고 간주되었던
문제들을 공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다. 여성운동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선택의
폭이 남성의 것만큼 넓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여성운동이 엄청난 성과를 얻어냈고 미국 사회의 대부분 영역에서 성평등이 목표
로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많은 여성들이
가정 밖에서 일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저임금 노동에 집중되어 있고, 여성은 평균
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직도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이 가정 밖에
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양육은 아직까지 여성의 책임으로 남겨져 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이 문제가 가족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이라 간주되지 않는다. 1960-70
년대에 페미니스트들은 가족과 인간관계 내에서의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불평등에
대항했다. 하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대중적 여성운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기관에서 여성의 평등을 위해 일하는 단체들이 많긴 하다. 구체적으로
전국여성기구(NOW)와, 환경, 보건, 사회정의 및 기타 영역에서 여성 문제를 제기하
는 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한 때 여성단체들이 회원의 높은 참여율을 자랑했던 반
면, 지금은 고용된 간사들이 운영하는 관료주의적 구조가 되었다. 한 때 도발적이고
동적이던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의 삶의 조건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겉만 화려하면
서 진부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적 그리고 문화적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만큼 강력했던, 이제는 쇠락하는 이
운동에 대해 왜 그렇게도 논의가 적은가? 운동이 쇠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침묵하는가?

여성운동의 쇠퇴는 페미니즘에 대한 우익의 공격 및 다른 사회운동들의 쇠퇴와
함께 나타났다. 시민권과 블랙파워(black power, 인종차별반대 흑인운동-옮긴이) 운
동은 몇 십 년 전에 비해 지금 현저히 약화되고 분열되었다. 환경운동과 게이 및 레
즈비언 권리 운동은 일관성과 방향을 잃었다. 많은 페미니스트와 기타 진보 세력들
은 운동의 약점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꺼리면서,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반
대 세력에게) 무기를 주는 행위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이 운동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을 꺼리는 데에 그다지 유효한 근거가 아니다. 공개적인 방법 외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운동들이 쇠퇴한 원인은 겉도는 식의 논의를 통해 다뤄지기에
너무나 복잡하다. 낙태권과 같은 여성운동이 손상을 입은 데에는 우익의 공격이 어
느 정도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여성운동의 전체적 쇠퇴는 외부의 공격보다도 내부
에서 긴장감이 없어진 것과 더 큰 연관이 있다.
운동 내부에서 비판을 피하거나 억제하는 진짜 원인은 운동의 문제점에 대한 논
의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해체의 과정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다. 운동은 미약하다. 여러 운동들을 묶는 데에는 대의에 대한 신
념뿐 아니라 증대하고 있는 힘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특히 한 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들 때, 비판을 억제하고 어둠 속에서 휘파람이나 불며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
을 인정하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리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 운동이
쇠퇴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지난 시절 운동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방향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여성운동의 약점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것은 1세대 페미니즘의 운명과 같이
2세대 또는 현대 페미니즘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진행된 미국의 1세대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운동
의 두 흐름 사이에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역사적 기억으로부터 거의 지
워졌다. 이것은 2세대 페미니즘이 많은 부분 극복한 1세대 페미니즘의 약점들 때문
이다. 1세대는 대부분 중산 및 중·상류층 백인에 국한되었었다. 1세대는 또한 역사
적 과정에 따라 다른 진보운동으로부터 여성운동을 고립시키는 협소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1세대 페미니즘은 노예제 폐지(abolitionist) 운동으로부터 촉발되었
다. 초기에는 페미니즘이 반노예운동과 동맹을 형성하고, 남북전쟁 이전 시기 기타
저항운동과의 연계를 가지면서 급진적인 색채를 띄웠다. 그런데 남북전쟁이 끝나고
선거권이 기존의 노예들에게만 주어지고 여성들은 배제되자, 여성운동의 주요 부분
은 흑인들과 관계를 끊었다. 남북전쟁과 20세기 무렵의 몇 십 년 동안 중산층 사이
에 인종차별적이고 반이민자 감정이 퍼졌다. 19세기 말 몇 십 년과 20세기 초 20여
년 동안 여성운동은 여성의 선거권 쟁취로 협소해졌고 주요 페미니스트들은 이 목
표를 달성하는 데에 인종차별적이고 반이민자 논리를 이용했다. 여성 노동조합 운동
과 같은 여성운동의 또 다른 조류는 인종차별주의를 피하면서 페미니즘과 급진적
관점 사이의 연계고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들어 주류 여성 선거권
단체들이 여성운동을 지배하게 되었다. 여성 선거권이 얻어졌을 때 1세대 페미니즘
은 다른 보다 광범위한 의제들을 폐기하면서 다른 진보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1920년대 득세한 보수 세력은 페미니즘을 주변으로 쉽게 밀쳐낼 수 있었다.
1세대에 비해 2세대 페미니즘의 영향은 더욱 광범위하고 깊었다. 미국 정치가 어
떠한 방향으로 틀든 1930년대, 40년대나 5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여성운동이 사라진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30년 동안 페미니즘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여성
의 삶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다. 1세대 페미니즘은 단일의제의 관점에 빠져들었던
반면 2세대 페미니즘은 여러 측면에서 더욱 광범위했다. 2세대 페미니즘도 초기에
한계가 있기는 했다. 유색인종 및 노동자계급 여성들이 운동에 참여하긴 했는데, 이
들은 학생 및 전문가 집단을 통하는 등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 페미니즘으로 조직된
것과 같은 경로로 운동에 유입되었다. 당시 유색인종 및 노동자계급 여성들이 여성
운동에 참여한 것이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 페미니즘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았다. 특히 한창 열정적이던 운동의 초기 시절,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자
신들이 모든 여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
기는 했으나 이와 같은 논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중산층 출신의 젊은 백인 대졸
이성애자 여성들이 운동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나 1세대 페미니즘과 달리, 2세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성, 그리고 더욱 중
요하게는 관점에 있어 보다 광범위해졌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레즈비언 페미니즘
이 운동의 한 조류로 등장했다. 유색인종 여성들은 자신들 고유의 페미니즘을 발전
시켰고 학생과 전문가들로만 구성되었던 초기 운동에 참여하지 않던 노동자계급 여
성들도 직장과 노동조합에서의 평등과 재생산권을 요구하면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1세대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르자 흑인운동과 기타 급진적 흐름과 애초에 맺었던 동
맹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한 반면, 2세대 페미니즘은 특히 유색인종과 게이 및
레즈비언 운동 등 진보 운동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2세대 페미니스트
들은 여성운동 내부에서의 인종적 차이와 성적 지향의 차이에 대한 민감성을 더욱
발달시켰다.

운동으로부터 생각으로

여성운동의 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였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는 페미니즘적 시각 또는 정체성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이렇게 흩어져나간 페미니
즘적 의식은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수많은 활동가 조직과 사회적,
문화적 프로젝트들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목표와 접근법을 도입하고 있다. 노동
자계급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들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다양한 풀뿌리 여성 단체들
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 및 유색인종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전국 지역여성
의회(National Congress of Neighborhood Women)'가 있고 이와 비슷한 관심을 가
진 다른 지역 단체들도 여러 개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환경정의 투쟁에 앞장선 '동
로스앤젤리스 어머니회(Mothers of East Los Angeles)'도 한 사례이다. '새로운 방향
을 향한 여성행동(Women's Actions for New Directions)'(예전의 '핵 비무장화를 위
한 여성 행동')은 건강 및 환경과 관련해 유색인종과 백인 여성 모두를 포괄한다.
다른 단체들도 많다. 그럼에도 풀뿌리 활동은 여성운동에 있어 지배적이거나 가장
가시적인 부문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중·상류계급 출신자들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채용간사들이 운영하는 단체들이나 학계에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출판물을 통해 형성된다. 페미니즘 의식의 확산, 주요 여성 단체들의 관료화와 학계
페미니즘의 두드러진 가시화는 사회의 주요 부문이 페미니즘을 흡수한 결과이다. 하
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모두 운동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와 동시에 페미니즘
은 제도화되고 주변화되었다. 페미니즘은 수사학적으로 인정을 받았을 뿐, 힘을 잃
었다.
페미니즘 운동이 멈추지도 않았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의 숫자가 줄
거나 논의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수백 만 명의 미국 여성들은 여성문제에 대해 페미
니즘의 언어를 이용하면서 서로 논의한다. 가정 폭력, 재생산권과 여성 건강 등에
집중하는 수많은 페미니즘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로부터 시작된 노력을 지속시키고 있는 여성들의 국제 네트워크들도 있다. 젊은 페
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세대를 대상으로 삼거나 대변하는 책들을 출판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은 보다 광범위한 양상의 일부이다. 지역 문제, 사회 정의와
진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1970년대 이후 증가(물론 실제 숫자를 알
수는 없지만)한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운동도 이러한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
히 환경 및 공중보건 운동에 참여하면서 다른 문제들과 함께 여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을 포함하면 더더욱 그렇다. 여성운동 밖에 있는 운동들, 남성들
도 포함된 단체들이 페미니즘적 관점을 도입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과이다.
여성들은 최소한 남성만큼이나 환경 및 반기업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
다. 이러한 그룹에서 페미니즘은 운동의 관점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구성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만들어내는 단체와 학자들의 네트워크는 애
초에 그들을 활성화시킨 풀뿌리 운동으로부터 멀어졌으며 목표와 동력을 상실했다.
페미니즘은 운동보다 하나의 생각이 되었고, 한 때 가지고 있었던 목적의식이 부
재할 때도 많다. 다른 진보운동, 좌파 일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페미니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가 당연시되고 있는, 제법 크고 인정받는
공간 속에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전체의 정치적 방향에 대해서는 영향을 그다지 미치
지 못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진보 진영에 일종의 '저강도 불황'이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나타난 좌파의 약점의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하다. 자본
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라는 관점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아간 것에 대한 반응이다.
여성운동은 다른 진보 운동과 함께, 집단적 행동이 사회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이런 방식으로 상실하자 약화된 것이다.

왜 여성운동은 쇠퇴하고 있는가?

1960년대와 70년대 초, 여성운동에 있어서 주류적 경향은 급진적 페미니즘이었
다. 당시 여성운동은 두 가지 어느 정도 뚜렷한 조류를 가지고 있었다. 한 조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때로는 맑스주의 페미니즘)이라고 자신을 명명했으며 이들은 여
성 억압이 인종과 계급 등 다른 억압과 얽혀있는 것으로 이해했고, 이 억압들에 동
시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를 발달시키려 했다. 다른 경향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이라
자칭했는데, 이들은 여성억압이 일차적이며 다른 억압들은 성별 불평등으로부터 비
롯된 것이라 주장했다.
두 조류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 모두 공적 영역에서의 성별 불평등이 사적 생활
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양 영역에서의 성평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여
성 억압과 다른 억압 간 관계에 대한 이들 간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급진주의 페미
니스트들도 부와 권력의 불평등으로 분할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간 평등만 존재
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목표는 평등한 사회, 즉 평등에 기
반한 새로운 공동체이다.
1960-70년대에 여성운동 내의 급진적 흐름이 전체 운동을 앞으로 밀고 나갔으며,
여기에서 가장 큰 정당성을 얻은 부분은 남성과 동일한 조건의 노동에 대한 요구였
다. 물론 평등한 사회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요구
는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운동 내 자유주의파와 급진파는 의제의
우선 순위에서 의견을 달리했지만 그들 간 요구에 큰 분할은 없었다. 급진적 페미니
스트들은 직장에서 더 많은 성평등을 원했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더 공평한
사회를 원했다. 적극적 조치는 혜택받은 여성들만의 도구가 아니었다. [페미니즘 연
구] 1999년 봄호의 한 글에서 낸시 맥린(Nancy McLean)은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
조치를 노동에서의 평등을 위한 투쟁에 사용해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이라 간주되던
노동을 여성에게 개방하고 여성운동에의 노동자계급 참여를 더욱 확대시켰다고 한
다. 여성운동이 더욱 커지고 영향력을 얻어 가는 동안에는 평등한 노동에의 접근과
광범위한 사회적 평등은 상호보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운동의 요구가 쟁취되었을 때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적극적 조치 캠페인은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곳보다도 전문직에 더 큰 효과를 발휘
했으며,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들이 주로 이러한 기회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여성
과 유색인종을 조직화하는 데에 실패한 노동운동에게 이와 관련된 큰 책임이 있다.
적극적 조치의 계급적, 인종적 편향은 또한 1970년대, 80년대와 90년대에 진행된 미
국 사회 계층화가 더욱 빨라져 사회의 하층 및 상층 간 격차가 더욱 넓어진 데에도
기인한다. 보다 높은 임금의 노동에 대한 권리와 관련해 여성노동자들이 쟁취한 성
과는 점차 넓어지는 계급 분할 효과를 상쇄할 수는 없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일반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하락했다. 애초부터 더욱 가난했던 여성들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비젼은 불안정해졌고 파벌주의와 심한 정파적 이데올로기 갈
등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사회관계를 전체적으로 변화시키
는 것보다 페미니즘 하위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둔 문화주의 페미니즘
이 급진적 페미니즘이 이전에 채우고 있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앨리스 에콜
스(Alice Echols)의 [1967-1975년 사이 미국에서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과
정에 공감하면서 정확히 묘사한다. 여성운동에 대한 루스 로젠(Ruth Rosen)의 최근
조사 [활짝 열린 세상: 현대 여성운동은 미국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는 이러한
과정이 여성운동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묘사한다. 일반적
으로 정파주의는 실패의 길에 들어선 운동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당시 여성운동은
강력하고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던 사회 변화
와 최소한 단기적으로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 사이에 간극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운
동 그 자체가 새로운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새로운 여성을 창조해내기 위
한 기반이 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에 대해 요구한 완벽함은 결국 실망과 비난
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 급진적 페미니즘이 같은 시기 급진 운동과 동일한 요인에 열광했었던
것 같다. 1960년 후반과 70년대 후반, 많은 급진주의자들은 혁명을 그들의 목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 혁명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믿었다. 다양한 그룹들이
서로 다른 혁명을 꿈꿨다. 페미니스트, 흑인, 아나키스트, 맑스-레닌주의자와 혁명 정
치에 대한 또 다른 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혁명이 모
퉁이 바로 뒤에 있다는 믿음이 이들을 관통했다. 혁명에 대한 이들의 열망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운동이 대응하고자 하는 문제의 깊이를 이해하고 있
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당시 미국 내에서 혁명이 코앞에 와있다는 인식은 비현
실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에 대대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전쟁 반대 시위는 몇몇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
회의 건설이 즉시 가능해졌다고 믿게끔 했다.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사고했든 간에
구성원은 주로 학생과 젊은이들로 국한되었고, 이는 혁명으로 이어지기에 부족했다.
전쟁이 끝나자 저항 운동의 광범위한 구성인자들은 사라졌고, 급진적 핵심부위는 고
립되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전체 여성운동의 지속적인 힘과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급진적 사고를 받아들임에 따라 다른 운동에 비해 오래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
대가 되자, 최소한 일관성 있는 의제를 가진 운동으로서의 급진적 페미니즘 또한 미
국 정치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여성을 위한 적극적 조치는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한 노동에서의 성평등을 향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여러 직업을 개방하는 데에 있어 여성운동의 성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운동의 관점과 목표를 협소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급진적 사고
를 지닌 젊은이들로 주로 구성되었을 때에는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 자신들의 출신
계급으로부터 독립적인, 내지는 이에 비판적인 관점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지금, 중
요하고 새로운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된 여성운동
은 주로 나의 세대 여성들 -2세대 여성운동을 촉발한 세대- 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덜 급진적이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민중 정치
의 향방이 운동가들의 나이만큼 시대와 운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정치적 활동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급진주의가 심지어 젊은이들에게까지 부적절한 것으로
비춰지는 시대에 중년의 중산층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동은 쉽게 자기만족적으로 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전체 여성운동에 대한 묘사는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여성운
동은 한편으로 NOW나 전국여성정치회의(NWPC) 등 비교적 조심스러운 단체들이
있지만 또한 특정 의제를 가지고 풀뿌리 조직화를 하고 있는 보다 도전적이지만 덜
가시적인 단체들도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없는 것은 이전의 급진적 페미니즘이 수행
했던 것을 지속하는 분파이다. 즉, 여성의 굴종을 전체적으로 다루면서 이를 또한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 속에 배치하는 그러한 분파가 없다. 물론, 자유주의 페미니
즘은 ERA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간 많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들의 조직화 노력으로 인해 젊은 여성과 소녀들은 이제 몇 십 년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기회와 이전 세대에게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비춰졌을 기대감을 얻게 되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전히 존재하나 활동가보다 학계와 지식인들 사이에 주로 포
진해있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활동을 통해 또는 풀뿌리 운동에의
참여를 통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을 포함
해 학계에서 여성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페미니즘과 진보적
사고를 접하게 되었다는 것과 페미니즘적 또는 진보적 글들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학계에 있는 페미니스트
들은 진보적 지식인층 일반과 함께 명확한 정치적 의제를 갖고 있지 못하고 대학의
논리와 가치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상위이론 분야,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는 문화연구 -둘 다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에서의 신분, 명성과 지위는
페미니즘적 및 진보적 가치를 머리 속에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1960년대
급진적 페미니즘의 위계에 대한 비판 대신 우리는 이제 위계와 그것의 가장 꼭대기
에 오르면서 얻게 되는 혜택들을 즐기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의 여성운동이 이전 여성운동의 병폐였던 인종적 편향이나 의제의 단일성을
피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중·상류계급 위치로부터의 비판적 거리를 점차 잃어갔다는
측면에서 1세대 여성운동과 흡사하다. 1세대 페미니즘은 인종 문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진행과정에 따라 자본과 계급 문제와 관련해서도 협소해졌다. 남북전
쟁 이전 시기에 1세대 페미니즘은 급진적 사고가 유통되던 운동들의 느슨한 동맹의
일부였다. 19세기 말, 산업 자본주의의 구조가 강화되고 계급갈등이 격화되자 페미
니스트들은 빈민과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는 개혁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
고, 여성운동의 몇 개 분파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손을 뻗었다. 예
를 들어, '기독인 절제 여성 연합(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비판하면서 '행동하는 기독교'로서 '복음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
를 조직화했다. 20세기 초반에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간 동맹은 사회당 내부에서도
지속되었다. 하지만 곧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비판에 등을 돌리고, 중·상
류계급의 이해와 가치들을 모든 여성에게 적용했다. 1세대 페미니즘이 사라질 당시,
자본주의나 출신 계급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관점도 잃은 상태였다.

페미니즘이 중산층의 관점을 흡수했다

1세대 페미니즘처럼 현재 페미니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운동을 주되게 구성하
고 있는 중산층 관점을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동안 이 계급의 관점
은 변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경제적 불안정이 증대하고 불평등이 심화되자, 중산
층에서 개인적 발전의 추구가 더욱 중요한 목표로 부상했다.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
들에게 지역공동체에의 참여는 덜 중요한 것이 되었다. 특히 전문가 등 많은 이들에
게 일이란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일이 유일하게 유효한 정체성의 근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직장은 많은 이들에게 더욱 경쟁적이고 스트레스 쌓이는 공간이 되었다.
이것은 단지 직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전체의 문제이다. 이 나라는 점점 더 개
인주의적이고, 냉정하고 이기적이 되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이러한 경향에 대해
가시적인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에의 평등한 접근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요구
는 예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매우 중요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이는 아직 달성되
지 않은 목표이다. 그러나 여성운동의 가시적인 분파는 사회적 평등과 공동체에 대
한 요구를 물질적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대체한 듯하다. 애초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가치로부터의 이러한 진화는 너무나 점진적이었기 때문에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 때 급진적인 운동의 일부였고 지금은
또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공간 안에 있는 여성들의 변화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대학에 더 많은 여성들이 입학하면 대
학이 변해 덜 엘리트적이고 덜 경쟁적인 반면 더 인간적이 될 것이며 사회적 문제
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현재 대학에 많은 여성들이 있으나
과연 대학이 더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많은 측면에서
대학들은 특히 기업 자금을 추종하고 결과적으로 시장 윤리를 확산시키는 등, 오히
려 더 악화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여성 일반이나 특정적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이
와 같은 경향에 도전을 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덜 경쟁적이며 위계적인 대학을 요구
하는 데에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스트 학자들
은 이 가치(보다 인간적이고 덜 위계적인-옮긴이)에 특별히 집중하지 않았다. 열린
논의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가진 동등한 참
여자로 인정받는 몇 개 분야가 있긴 하다. 하지만 여성학계에 이렇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여성학에서 가장 유망있는 상위이론 분야에서 경쟁과 지위에 대한
갈망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운동에서의 가치변화는 더 큰 흐름의 일부이다. 보다 큰 이윤에 대한 기업의
요구와 욕심에 대한 신성화가 특징이며, 경제적 사회적 분화가 더욱 급속하게 이뤄
지는 시기에 한 세대 전체가 꼭대기를 향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다. 페미니
스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직으로서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미지는 적대적인 언
론이 확산시키고 있는 환상만이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최소한 학계와 전문직종
에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가치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다른 중산층의 구성원보
다 더 하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젼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현대 페미니즘은 가정에의 종속에 대한 젊은 중산층 여성들의 반란과 가정 밖에
서의 직업에 대한 요구 -1960년대와 70년대 초 젠더정치의 한 축- 로부터 생겨났다.
다른 축에는 기업 중심 사회에서의 노동에 대한 신좌파 젊은 남성들의 반란과 보다
의미있는 그 무엇에 대해 결국 제대로 구체화되지 못한 그들의 요구가 있다. 사후
(死後)에 출판된 크리스토퍼 라쉬(Christopher Lasch)의 논문집 [여성과 일상생활]
(Norton, 1997)의 한 논문 "노동의 성적 분업, 시민 문화의 쇠퇴와 교외지역의 부흥"
은 두 축 모두가 옳고 원칙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각각의 관점이
서로를 수용하지 못한 데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서 이 두 축 사이의 분화는
노동과 가족의 영역 간 존재하는 지나친 거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는 가정에서 양
성의 동등한 참여와 페미니즘적 관점의 수용으로 직장이 더욱 인간적이 된다고 주
장했다.
나는 우리가 1960년대 급진주의로부터 업데이트되어 사회주의와 페미니즘 양쪽의
관점을 포괄하는 속에서 기업과 시장 권력의 증대에 대응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미국 문화에서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 된 개인주의
와 성공에 대한 열망을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중 대다수가 어차피 이런
가치들을 따르고 있으며, 직장에서의 성공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성공하
는 데 아무것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일을 통한
부와 지위의 획득을 통해 측정이 가능하다고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드린다. 이러한
가치들은 특히 전문직 중산층을 사로잡았으나 그보다 더 멀리 확산되기도 했다. 이
가치들은 경제적 불안정, 뒤처지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아래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불안에 의해 더 강화된다.
일 밖에서의 제도와 사회적 관계가 이토록 약화된 상황에서, 일에서의 성공이 그
렇게도 큰 사회적 가치를 갖는 상황에서 다른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심지어 급진
주의자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공동체는 쇠퇴했다. 우리는 이를 안타까
워하면서도 대부분 결국 일에 더 몰두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나는 우리가 사회적 분
화를 심화시키고,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고 삶의 모든 분야를 흡수해버리는, 점점
더 고삐가 풀려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평
등과 공동체에 대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또한 현대의 급진 프로젝트를 위한 전제조건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 바버라 엡스타인은 [먼슬리리뷰]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이며, 산타크루즈 캘
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의식의 역사' 프로젝트를 강의하고 있다. 그녀는 마르시 다
르놉스키(Marcy Darnovsky)와 리차드 플락스(Richard Flacks)와 함께 [문화정치와
사회운동](Temple University Press, 1995)의 엮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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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페미니즘 , 여성운동 , 급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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