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참세상은 파업 12일째를 맞고 산개투쟁 중인 발전노조 조합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울 인근의 콘도에서 숙식을 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약간의 긴장감을 느껴졌지만, 곧 조합원들은 나름대로 여유로움을 보여주었다. 방 한쪽 켠에는 아직 마르지 않아 보이는 빨래들이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남자들만 모여있는 공간이라 어수선할 것 같다라는 예상을 깨고, 방안은 잘 정리되어 있고 깨끗했다.
얼굴이 나와도 되겠냐는 질문에 이석환 조합원은, "아침 라디오 방송에 이름도 나왔는데 큰 문제가 있겠냐. 우리가 회사를 비방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문제 없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미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파업과 관련된 생방송 인터뷰를 했다. 이미 경험을 해서인지, 다른 조합원들과는 다른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옆에 있던 조합원은 "얼굴 방송에 나오면 멋진 말을 해야 하는데"라며 긴장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하루 2끼 / 국은 라면국
"13명으로 구성된 다른 조와는 다르게 우리 조는 현재 5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크게 불편함은 없습니다. 조원들이 불편함 없이 서로를 믿고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조원들이 많은 조는 일상생활에서 서로간의 의견 충돌 때문에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나는 무슨 밥을 먹고 싶은데, 누구는 뭐를 먹고 싶고, 나는 어디서 자고 싶은데, 저사람은 다른 곳에서 자고 싶고 등등 말이죠."라고 이조합원은 이야기했다. 이들에게는 일상과의 싸움도 정말로 중요했다.
"요즘에는 밥을 하루에 2끼 먹고 있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죠. 국을 못 끓이니깐 라면국을 먹고 있습니다. 일회용 국을 끓여서 먹기도 합니다. 반찬이나 찌개 부분에서는 평소에 좀 해 보기라도 할걸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치찌개를 좀 해 보았는데... 영 안되더라구요." 다음부터 아내들 부엌에서 일하실 때 많이 도와주시면서 배우셔야겠어요라는 말에 조합원들을 모두 환한 웃음을 띄었다. 이들은 현재까지 약 보름동안 1인당 30여만원정도를 지출했다고 말했다. 5명을 합하면 150만원,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콘도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머물렀냐는 질문에 "서울에서는 여관에 있었습니다. 강화도에도 좀 머물렀고, 그리고 이쪽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가급적 돈이 적게 드는 민박이나 콘도를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조는 아예 산 속 깊이 집을 구해서 머무르고 있다고도 한다.
조합원들 모두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왔다!
많이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조합원은, "우리 모두가 하루 빨리 이 투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설비 맡은 사람들, 운전 맡은 사람들 모두 돌아가면, 그동안 쌓여 있는 일 자기들이 다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의 협상 중단 선언은 정말로 아쉽습니다." 라며 조합원들의 답답한 속내를 비추어 주었다. 실제로 조합원들은 모두 직장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왔다고 한다. "내가 발전에서 10년 정도 일해왔지만 아직까지는 한번도 비효율적이다, 팔아야겠다 그런 것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국제적으로 공인된 에디슨상도 수여를 했으며, 정부로부터 경영평가 1위 2위라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우리 전력산업 입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모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왔습니다."
슬슬 정부가 추진하려는 발전소매각,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 하나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력산업이 공공서비스업입니다. 설비비용이 많이 들고 적자를 보더라도 전력 공급을 해야할 상황이 있습니다. 전기를 팔면서 이윤을 전혀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매도될 수도 있습니다. 산골 깊은 곳의 경우는 돈이 많이 들지만, 이윤을 내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똑같은 값에 전기를 공급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 비효율적이다라고 매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조합원은, "발전소를 짓는데 돈을 투자해서 투자비용 회수까지 20년 정도 걸립니다. 발전소 짓는데 5년, 운영해서 본전을 뽑는데 15년 정도죠. 약 20년 정도 시간이 지나야 흑자를 볼 수 있는 이런 장기적인 사업에 민간기업이 투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민영화 철회/발전소 매각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었다. "민영화는 분명히 철회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도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다라는 다짐하에 장기적인 투쟁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앞으로 산개투쟁 장기화에 대비해서 아르바이트자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개투쟁을 강고히 하기 위한 분임토의
이조합원은 분임토의에 대해서 투쟁을 더욱 강고히 하기위한 조합원들의 다짐이라고 말한다. "분임 토의를 하라고 지도부에서 이야기를 했는데요. 가족대책위에 대한 소감 등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요, 다른 조합원들의 소식과 소식을 공유하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따로 떨어진 외톨이가 아니라 서로 같이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분임 토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분임토의 내용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는, "우리조는 말을 잘 못해서, 특별한 내용은 없었어요. 분임토의를 열심히 한 조에서는 산개투쟁을 잘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개투쟁을 위한 다섯가지 택', '산개투쟁을 위한 월세방 구하기', '산개투쟁을 위한 아르바이트 작전등' 말이죠" (웃음)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의 산개투쟁사수의 의지가 뜨거움을 느꼈다.홈페이지/핸드폰이 이번 산개투쟁의 구심점 역할
이번 파업 투쟁에 있어서 정보통신 기기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에 이조합원은, "산개 투쟁에 있어서 홈페이지와 핸드폰이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분임토론장에 가보면, 각 조원들 소식들도 다 올라가 있습니다"라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덧붙여서, "정부나 회사측에서는 '우리를 고립시키려면 그걸(발전노조 홈페이지) 없애야 하는데, 그리고 휴대폰을 다 뺏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갑자기 지난 3월 5일 발전노조 홈페이지에 대한 폐쇄 요청 사건이 머리를 스쳤다. 그도 알아챘다는 듯이, "3월 5일 발전노조 홈페이지가 폐쇄위기에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와해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휴대폰을 통해서 조합원들과 계속 잘 연락을 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라며 침착하게 대처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 주었다. 인터뷰 내내 50년 노조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답변을 해주는 모습에 기자는 오히려 놀랬다.
인터뷰 중에도 각 지역에 퍼져 산개투쟁을 벌이고 있는 다른 조합원들로부터 계속 핸드폰 연락이 왔다. 이조합원은 핸드폰을 받으면서도 항시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지도부의 지시에 대해서 환시시켜주면서 조원들의 건강과 안부를 가장 먼저 물었다. "몸은 괜찮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데. 조금만 더 참지 뭐. 우리는 검문 다 받았다. 검문 받아도 다 보내주더라. 이럴 때일수록 더 단결해야지. 그쪽에 서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수고가 많네. 몸조심하고. 또 연락하자"전기의 공급 중단 우리도 결코 바라지 않는다
현재 언론에서 전기 공급 대란과 관련된 보도에 대해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 달라는 요청에, "전기는 양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질적인 부분도 중요합니다. 전기는 양과 함께 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질이라 함은 주파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60헤르츠가 기본인데 섬유업체의 경우 주파수가 많이 불안하면 섬세한 실을 뽑아내는데 덩어리가 진다거나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전기가 모자르면 전압을 조정한다거나 합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죠."라면서 현재의 상황이 매우 불안한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이러다가 잠깐 잠깐 전기가 나갈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전기가 나가는 순간적인 현상이 조금만 길어지면 전국적으로 금방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전기가 한번 죽어버리면 다같이 한꺼번에 공급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그걸 현재 알고 있으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그런 상황은 절대로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매우 걱정스런 눈치였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실제로 언론들이 취재하는데 제대로 보도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라면서 TV 신문등 대중매체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보여주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과거 2000년 12월 오경호 위원장이 직권조인 함으로써 당시 발전 민영화 문제를 놓고 진행되었던 파업 투쟁이 물거품이 된 적이 있다. 5600 발전조합원들은 그때의 기억을 가슴 깊이 뼈져리게 되새기고 있었다. "2000년 12월 3일 직권조인할 때까지,이 문제를 놓고 파업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개투쟁을 전개했었습니다. 그당시 파업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밖에서는 너희는 멍석을 깔아주어도 못하냐라는 비판이 많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조합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처음에 이 파업 일주일이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간이 상당히 길게 진행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탈자가 없는 것은 발전노조 지도부와 민주노총의 조직적 관리, 그리고 과거의 파업 경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12월 지금 투쟁의 반정도만 되었어도 결코 민영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과거의 쓴 아픔을 딛고, 끝까지 파업해서 승리할 것이라는 의지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졌다.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파업대오에 결합한 조합원
바로 옆에 있던 한 조합원은 23일 결혼을 하고 28일 한국에 귀국, 몇 일 후에 바로 파업 대오에 합류했다. "처음 파업 대오에 결합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곧 끝날줄 알고 올라왔는데... 뜻하지 않게 길어지니깐, (가족에게) 참 계속 미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이제 갓 결혼해서 파업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도, 남편을 이해해 주려는 아내에게 정말로 고맙고 돌아가면 잘해주어야죠. (아내에게) 조금만 더 믿고 믿어주었음 좋겠고. 이제 시작하는 결혼 생활이지만, 앞으로 오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 줄게."라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 파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발전 조합원들의 아들, 딸, 아내들이었다. 이석환 조합원은, "당연히 아들도 보고싶고 아내도 보고싶죠. 애들도 같이 가족대책위 투쟁에 나간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투쟁 유인물 많이 돌리면, 아빠 빨리 올 수 있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고 하더군요.(잠시 조용)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국민의 불편을 담보로, 국가 기간산업을 담보로, 국법 파괴자라고 각종 언론에서는 정부에서는 매도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강화가족호텔에서 검문
3월 5일 밤 경찰의 불심검문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 4명과 프런트 직원이 밤 9시쯤 갑자기 문을 두드리고 검문을 하기 시작했다. "강화가족호텔인가 거기에 잠시 머물렀었죠. 우리가 물었죠. 왜 검문하느냐. 그랬더니 발전조합 때문에 검문하고 있다라고 하더군요. 이름 주민등록번호 다 적고, 지문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특별히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꿀릴 것도 없었습니다. 크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아마도 프런트 직원이 우리를 수상하게 생각해서 경찰을 부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후 곧바로 강화도를 빠져 나왔다고 한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끝까지 투쟁한다.
이호동 위원장은 자주 조합원들에게 "패배는 할 수 있어도 항복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합원들도 이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조합원은,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는 위원장만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다들 생각이 비슷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똑똑한 사람이 많으면, 조직이 금방 분열되는 것 같아요. 위원장이 지시하면, 그것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원장이 돌격 앞으로 하면 그대로 가는 것이죠. 현재 우리 조합원들은 위원장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번 산개 투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거였다. 조합원과 지도부 간에 서로서로를 목숨같이 믿고 있는 동지애와 신뢰였다. "여기서 패배해서 가게된다면, 수배자들 고소고발자들 그사람들만 다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발전노조는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노조 지도부는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조합원들을 대표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다치더라도 다 같이 다쳐야 합니다. 그게 우리 발전노조 조합원 모두의 생각입니다."
3시간의 인터뷰가 진행이 되면서 기자는 이번 파업의 요구가 관철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끝날 수 없다는 발전 노조 조합원들의 굳은 의지를 느꼈다. 인터뷰 내내 이석환 조합원을 제외한 다른 조합원들은 인터뷰가 어색한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당당했다. 이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같이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으며, 이들을 지원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파업투쟁의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민영화 철회 / 발전소 매각 저지"
정우혁기자, patcha@patcha.jinbo.net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합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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