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제2의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아야 한다!

지난 6일 ‘국정원의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테러방지법 공동투쟁) 소속 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여야의 테러방지법 국회 처리 합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후 행진을 벌이고 있다.

눈만 뜨면 입씨름이나 하며 국민 세금을 축내는 정치권, 그러나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안 제정에는 똘똘 뭉쳤다. 지난 2월 26일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여야는 오는 3월 13일경에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을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노동자 민중투쟁을 테러로 몰려는 수작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공안기관의 뜻에 따라 국민이면 누구나 테러범으로 규정되고 단체라면 설립목적을 불문하고 테러단체로 둔갑될 수 있다.

이 법안은 ‘테러’를 “정치적·종교적·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그 주의 또는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행하는 행위”로서 “국가안보 또는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주장을 널리 알리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행위 중 도대체 어떤 것이 국가안보 및 외교관계에 해를 끼치는 ‘테러’가 되는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정원 등 공안기관과 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
또한 각계 주요인사나 외교사절 개인에 대한 폭행, 상해, 약취, 체포, 감금을 테러범죄로 규정해 놓았다. 전쟁무기를 강매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미국 정부의 호전세력이나 부시 대통령이 방한할 때 달걀 몇 개만 던져도 테러가 되고 만다.

정부와 국정원은 올해 월드컵 행사의 안전개최를 위해 조속히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새빨간 거짓말이다. 지난해 발효된 ‘2002 월드컵축구대회 지원법’에 따르면 월드컵대회 안전조치를 위해 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며 그 위원장은 국정원장이 겸하도록 하고 있다. 즉, 월드컵을 위해 국정원장에게는 이미 충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

설립목적조차 가리지 않는 ‘테러단체’
게다가 ‘테러단체’ 규정은 한술 더 떠 “설립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그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테러를 행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이라 하여 아예 국내외의 모든 단체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예컨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사적 모임에 구성원으로 가입한 특정 개인이 그 모임과 무관한 개인적인 뜻에 따라 ‘테러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할 경우 그 단체는 ‘테러단체’로 규정되고 그 단체의 대표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또한 ‘국가중요시설, 대한민국의 재외공관, 주한 외국정부시설 및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화·폭파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미수범까지 처벌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다면 합법·불법의 문제는 차치하고 자기 사업장인 공공건물에서의 시위, 점거 자체가 테러행위로 간주되어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은 테러단체, 테러행위자로 몰리게 된다.

지난달 부시 방한에 반대하여 미 상공회의소 점거농성을 벌인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미국 측이 ‘테러’로 규정하고 관련자들 신원을 요청했다는 점만 봐도, 이 법이 어떻게 활용될지는 뻔한 일이다.

국정원(안기부)에 무소불위의 권력 부여

또한 테러방지법에 따라 설치되는 수많은 대책기구들은 국가대테러대책회의를 정점으로 조직체계가 편재되고, 이 대책회의는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게 된다. 그러나 이 법에 따르면 대책회의의 상임위원장은 대책회의의 의장(국무총리)이 지명하는 자가 된다고 하고 있으나(제4조 제5항) 사실상 이 자리는 국가정보원장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정원이 지난해 입법예고한 법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국가대테러대책회의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정원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국정원 내에 설치하는 대테러센터가 테러사건의 수사권을 가지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었는데, 인권단체의 항의가 빗발치자 ‘대책회의의 의장이 임명한다’고 슬쩍 문구만 바꿔치기한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장관은 테러진압을 위하여 특수부대를 지정하거나 설치할 수 있으며(제7조), 테러사건이 발생한 경우 대테러센터의 장(국정원장)은 이 특수부대의 출동을 요청할 수 있다(제14조).

국정원에게 각종 수사권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군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안겨준 것이다. 우리 헌법은 계엄 상황을 제외하고는 군의 출동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테러방지법에서 군병력 동원의 절차를 규정한 것은 당연히 위헌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국방부장관이 테러진압을 위해 특수부대를 설치하게 한 내용 또한 군이 개입되는 문제이므로 위헌임이 명백하다. 또한 법14조에 따르면 이렇게 구성된 특수부대 또는 군병력들은 검문검색 등 민간인에 대한 통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결국 이대로 테러방지법이 입법화된다면 테러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계엄 선언 없는 계엄 상황의 상시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

또한 테러방지법을 통합방위법을 제외한 모든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하도록 규정하여 초헌법적인 효력을 갖게 된다. 국가정보원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권한이 아니라 재갈이다. 최근 밝혀진 수지김 간첩조작 사건이나 최종길 교수의 고문살인 은폐 사건, 삼청교육대와 같이 군부당국에 의해 자행된 녹화사업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국정원에 무한권력을 부여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국보법과 쌍둥이처럼 닮은 테러방지법

‘테러’ 개념은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조항에 ‘국가안보 및 외교관계’를 삽입시키면 그대로 맞아떨어지며 ‘테러단체’ 조항은 ‘이적단체’ 조항을 그대로 베껴놓았다.

정치권 일각에서조차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폐지 움직임이 있었던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는 테러방지법에서 ‘테러범죄 미신고죄’로 부활한다. 불고지죄는 이미 행해진 범죄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지만, 테러범죄 미신고죄는 ‘범죄 실행 이전이라도 그 실행을 저지할 수 있는 자가 이를 관계기관에 고지하지 않는 경우’에조차 처벌대상이 된다.

1월에는 대한변협이, 2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의견서를 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흡사 과거 인권단체들의 국보법 폐지 의견서를 보는 듯하다. 국보법이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었듯이 테러방지법은 결국 ‘정권유지법’이 될 것은 확실하다.

9·11 테러 직후 각국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입법화 기도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벌어지자 부시 행정부는 6주만인 10월 25일 ‘테러행위 차단·방지법’(일명 애국법)을 제정했다. 이 법 또한 테러방지를 명분으로 엄청난 인권침해행위를 합법화시키고 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은 “이번 법안으로 미국은 ‘감시 사회’로 들어가는 선을 넘었다”고 밝히고 “도청 권한을 강화시킴으로써 의회는 수사 당국의 권한 남용과 인권보호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 기능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입국 희망자들의 생체정보를 디지털화해 여권에 의무적으로 수록토록 하고, 입국시 여권사진을 국무부의 디지털 사진정보와 대조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일본 또한 자위대의 전시 해외파병을 전제하는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을 참의원에서 통과시켰으며, 독일 또한 테러방지법안을 통과시켰다. 싱가폴 또한 재판없이 2년간 구금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파키스탄 출신 작가이자 언론인인 타리크 알리의 일화는 인권침해의 한 예로서 냉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독일 뮌헨 공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항공사의 자체 안전검사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는 오로지 그가 칼 마르크스의 책 한 권을 소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전세계적 경향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절정으로 이루었고 지난 19일 부시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굳건한 ‘대테러동맹’을 약속했다.

9.11 테러가 일어난지 10일만인 9월 21일 정부는 ‘국가 대테러지침’보다 강화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고, 국정원은 두달도 안되어 법안 초안을 내놓았다.
테러와의 전쟁인가, 정부 반대세력과의 전쟁인가. 그야말로 한국 국정원을 비롯한 각국 공안세력은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가 ‘하늘이 준 기회’라도 되는 양 너도나도 테러방지법을 만들어 반정부세력 찍어누르는데 활용하려 한다.

애초 테러방지법안과 관련한 국회 공청회가 11일 열릴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참고인 몇 명을 불러 의견을 듣는 수준임이 확인되었다.

인권침해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모든 반정부투쟁을 테러로 몰아 처벌하는 파시스트 법안 테러방지법,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무시무시한 공안통치와 군사독재의 시절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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