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울려퍼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

한국여성노동자대회(3.7 여의도 국회 앞)[photo-copyleft워킹보이스]



1908년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하루 10시간 노동, 안전한 작업환경, 참정권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3월8일을 기념하는 '3·8 세계여성의 날'이 올해로 94주년을 맞았다. 2002년의 여성노동자들은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라는 현실 앞에 3월8일 뿐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모성보호를 위해 싸우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3권 보장을

3월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3백 여 명의 여성들이 신나는 대동굿판을 지켜보고 있다. 가면을 쓴 연희패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잡귀야 물러가라"고 구성지게 외치는데 이 잡귀는 바로 '비정규직귀신'이다.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저임금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 등이 이 비정규직 귀신의 염력이란다. 무당으로 분한 연희패가 한바탕 굿을 벌이자 여성노동자 한 사람이 살풀이를 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저 같은 경기보조원들은 나이가 많으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고 인격적 수모를 겪어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치료해야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인정조차 해주지 않아요."

바로 3·8 세계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주최한 '3·8 세계여성의 날 94주년기념 한국여성노동자대회'의 한 장면이다. 이 날 대회는 그동안의 집회나 기념행사의 형식을 탈피하고 여성노동자의 축제이자 '어울림'의 행사로 대동비나리 굿 한판으로 진행됐다. 말하자면 풍물과 어우러진 굿판은 '개회사'가 될테고 귀신을 쫓는 살풀이로 이어진 경기보조원의 하소연은 '투쟁사'였다고나 할까?

94년 전 3월8일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성과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투표권을 줄 것을 요구하며 싸웠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여성들은 노동자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3권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경기보조원이나 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그들이다. 100만명에 달하는 규모에다 대부분이 여성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기업의 필수적인 업무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독립사업자 형태로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이나 퇴직금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언제든 '계약해지'라는 명목으로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처지여서 고용불안마저 심각하다.

이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협상을 통해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안정을 이루어보려고 했지만 최근 이에 대한 잇따른 행정법원의 판결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고용의 의무가 없으며 부당 해고로도 볼 수 없다."는 내용으로 흐르고 있다. 근로자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는 보수적 법원의 판결에 고용주들은 이제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이제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입법투쟁을 통해 노동3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개최된 한국 여성노동자 대회에서는 대동비나리굿을 마친 뒤 한나라당사와 전경련회관 앞을 지나는 여성노동자 행진을 벌였다. 잠시 발길을 멈춘 한나라당 앞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대책 즉각 마련하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을 완전 보장하라."는 내용의 규탄사를 낭독했다.


청소 아줌마라고 노조하면 안되나

세계여성의 날 당일인 3월8일 오전. 탑골공원이 술렁거린다. 40대에서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백 여명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웅성웅성 모여 있다. 바로 도시철도에서 청소용역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다.

"원래 도시철도의 청소용역은 3개 도급업체가 맡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4월부터 15개 업체로 분사해서 용역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82명을 감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찰 전에 이미 6명을 해고했습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누가 82명에 포함되느냐 문제가 아니고 모두의 생존권의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지하철 5호선에서 청소 일을 하는 아주머니의 말이다.

그동안 지하철공사는 1년 단위 입찰을 통해 도급업체를 선정해왔고 사용업체만 바꾸면서 청소원아줌마들은 5-6년씩 같은 일을 해왔다. 노조의 입장에서 일년 단위로 바뀌는 도급업체들과 매번 단협을 체결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작년 7월 노조를 결성하고 첫 단협을 통해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받고 노조활동도 할 수 있어서 분위기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도시철도공사는 지난 4일 입찰공고를 통해 15개 도급회사로 권역을 나누어 입찰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것도 82명의 인원감축이 불가피 하다는 말과 함께. 노조는 노사간 합의 없는 일방적인 정리해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지난 5일 부터 3일 간의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하였다.

50대가 넘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이 말하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에 동참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용역 회사측과 도시철도 측에서 "이런 파업은 불법이다." "파업에 동참하면 해고자 명단에 먼저 포함시키겠다." "파업에 동참하면 해고시키고 퇴직금도 주지 않겠다."는 말도 되지 않는 협박을 해왔지만 70%가 넘는 조합원들이 파업에 찬성했다.

"우리가 나이 많고 남들 하기 싫어하는 청소일 하는 여자들이라고 무시한 겁니다. 도급업체를 15개로 쪼개면 조합 활동이 그만큼 어려워지니까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한 짓이라구요. 실제로 300명 정도를 야간조로 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간조로 돌려버리면 애들 엄마인 우리들은 그냥 나가라는 소리지요. 아줌마들이 노동조합 만들어서 이것저것 요구하니깐 그게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청소용역노조 사무국장 박화식씨의 말이다.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역사적이라는 3월8일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첫 파업출정식을 가졌고 9일 2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 참가해 결의를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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