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조직된 것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자본 세계화 반대 시위
「ATTAC 주간뉴스레터」 120호, 2002/03/20, 크리스토프 아기똥
2002년 3월 16일 바르셀로나에서, 운동은 두드러지게 진일보했다. 주최측은 총합
50만 명으로, 언론은 30만 명으로 보도한 반면, 까딸루냐 경찰들은 시위 참가자 수
를 25만 명으로 추정했다. 어떤 수치이든지, 바르셀로나 EU정상회담 투쟁은 적어
도 2001년 7월 제노아 G-7 회의에서의 시위만큼이나 큰 규모였다. 그리고 시위 참
가자 수는 아무도 예상못했을 만큼 인상적이다. 조직가들은 약 5만 명을 예상했으
며, 이틀 전 10만명이 모인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의 시위가 에너지의 분산을
가져와 바르셀로나에서의 시위를 약화시킬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제노
아와 마찬가지로, 경찰과 언론의 탄압은 강도높았고, 이는 바르셀로나의 성공을 더
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예방차원에서 수십명이 체포되었다. 시위 참가를 원하는
1,500∼2,000명 가량의 프랑스와 벨기에 시위대의 입국을 막기 위해 국경이 봉쇄되
었고, 강박관념적인 반테러 및 반바스크 공포감이 군용기 소집을 정당화하는데 이
용되었다. 이번 시위의 중요성에 대해 궁극적인 핵심 기준은, 그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다른 어떤 투쟁보다 더욱 지방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특
별하게 눈에 띄고 전투적인 수만명의 바스크인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플래카드
는 까딸루냐어로 씌여져 있었다. 몇몇 국가에서의 상징적인 참여 이외에, 유럽대표
단들은 단지 몇 백명의 프랑스 참가자들에 불과했는데, 이는 스페인 당국이 뻬르뚜
스에서 참가자들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번 성공의 이유는 면밀히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바로셀로나 EU정상회담 자체
가 중요한 계기였다. 가장 눈에 띄는 의제는 에너지 시장 자유화였지만, 그 이외에
도 노동시장 유연성, 메히꼬 몬테레이에서 열린 'UN 개발재원 국제회의'에서 유럽의 입장, 그리고 미국의 위성측정시스템 GPS에 상응하는 영국의 갈릴레오(Galileo)와 같은 매우 기술적인 이슈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의제들은 공공 서비스를 해체하면서 노동시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는 유럽을 반대하고, 사회적 권리와 환경을 존중하며, 남반구 국가들과 다른 관계를 형성하는 유럽을 지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데 충분한 이유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은 스페인 EU 의장국시기에 열린 중간 회담이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동원은 가장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최종 정상회담에 집중되어 이루어진다. 전형적인 주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의 통로와 동시에 다른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환경적 모델로의 경로를 제공하는 EU보다는 WTO와 G-7 회의가 더 쉬운 공격목표라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주목할만한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최근의 동원 흐름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퀘벡, 제노아 그리고 포르투
알레그레 이래로, 이 운동은 최고도로 확장되어 왔고, "대규모화" 모드가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이러한 성채 중의 하나이다. 2000년 6월 제네바 사회정상회담과 그
다음 해 프라하 투쟁 이후 형성된 연계 덕분에, 지구적 저항 운동(스페인어 이니셜
로 MRG로 알려진)이 형성되었고 대규모 동원이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바르셀로나
투사들을 니스, 제노아 그리고 브뤼셀 등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셀로나 그 자체적으로도, 2001년 6월 세계은행 회의가 그곳에서 열린다고 발표된
이후 대중적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결국 세계은행은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 이 캠
페인은 조직화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약 2만 명의 사람들을 규합해서 세계은행의
행사 취소를 경축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바르셀로나 활동가들에
게, EU정상회담은 마침내 대중 동원을 시도해볼만한 "진정한" 계기를 의미했다.
3월 16일 시위의 구성은 까딸로니아 운동의 모습-동적이고 정력적인 젊은 사람들,
광범위한 영역의 사회운동, 그리고 탈중심화되고, 풀뿌리적인 조직구조-을 보여주
었다. 세 진영에서 투쟁 호소문을 발표했다. 첫 번째로 세계은행 반대 캠페인의 직
접적인 계승자이며, 대부분의 조직가들은 매우 젊고 지구적 저항 운동 출신인 "자
본주의 유럽반대 운동"이다. 이 운동은 100개 이상의 조직들이 합류해 있다. 둘째,
까딸로니야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의회 좌파(스페인 사회주의자
당인 사회당 PSOE, 그리고 좌파연합 IU와 연계되어 있는)와 거대 노동조합(노동
자위원회총연맹 CCOO와 노동자총연맹 UGT)이 모여 있는 바르셀로나 사회포럼이
다.
시위는 진정한 대중 결집의 모든 특징을 보여주었다. 대표단들이 거대한 인원이
라는 환상을 지탱하기 위해 비틀거려야만 하는 보다 제도적인 시위와는 반대로, 군
중들이 꽉 들어찼다. 대표단은 여성운동으로부터 1천 명 이상, 아탁(ATTAC)으로부
터 3천 명 그리고 팔레스타인 방어와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수천명, 그리고 1930년
대 전국노동자동맹(CNT)의 직접적 계승자인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과 같은 급
진적 노조로부터 온 수천 명을 포함하여, 아주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집단들
은 섞여 있었다. 참가자의 다수는 젊은이였지만 그 나머지는 모든 세대와 배경을
갖고 있었다. 독립적인 그룹들 중에는, 스페인 사회당의 까딸루냐 지부인 까딸루냐
사회당(PSC)의 배지가 눈에 띄었다. 세 진영 사이의 권력 관계는 투명했다. 다채롭
고 활기찬 민족주의자 그룹의 5천∼ 1만명의 참가자들은 주로 까딸루냐 사람들이
었다. 몇몇 조직 대표자들을 제외하면, 바스크인들은 지구적 저항 운동의 바스크
연계조직인 "에멘 에따 문두아(Emen Eta Mundua)"가 이끄는 사회운동에 이끌려
참가했다. 바르셀로나 사회포럼은 수적으로 비슷하게 참여했지만 오랜 대기상황으
로 지쳐서, 사회포럼 참여자들은 시위대의 소요가 있기도 전에 흩어질 것을 결정했
다. '자본의 유럽 반대 캠페인'에 가입된 압도적인 다수가 행진 대열의 선두를 지켰
다.
바스크 지방을 제외하고 까딸루냐와 스페인 전역의 활동가 세대들은 다른 어떤
유럽 지역의 연계 조직보다 더욱 극적인 분열을 경험했다. 프랑코주의(파시즘의 다
른 이름. 프랑코는 스페인의 정치가로 1930년대 스페인 내란에서 승리한 후 파시즘
국가를 수립했으나 1970년대 그가 죽음으로써 프랑코식의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
옮긴이)의 몰락은 1970년대 사회운동의 급진적 좌파의 전망을 구체화하였다. 포루
투갈 혁명은 독재의 종말이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동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고무시
켰다. 그러나 민주적 이행과 몬클리아 협정은 희망을 산산이 부셔버렸고, 활동가를
약화시킨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1990년대 후반에 조직화가 진전되면서, 그
러한 지형은 새로운 형태의 행동을 실험하고 그들의 운동을 결성하려는 새로운 세
대의 활동가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대서양을 건너온 미국의 사례는 많은 사
람들을 고무시켜, 동의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드는 것에서부터 적극적인 비폭력 전
술의 사용, 조직의 급속한 성장까지, 크건 작건 바르셀로나에 흔적을 남겼다. 그래
서 현재 진행중인 지구적저항운동 내부의 분열은 2000년 4월 워싱턴 시위 이후 직
접행동네트워크의 해체와 닮아 있다. 이러한 유사성들은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인
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까딸루냐인에게 깊이 뿌리 박혀있는 자유주의적 성향과 "집
합적" 문화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유대는 미국에서보다 여기에서 훨
씬 긴밀하다. 그리고 드문 경우지만, 그 운동은 현재 새로운 형태의 전투적 행동으
로 특징지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3월 16일 시위에서 "명사들"을 만드는 것을 피
하기 위해, 선두는 익명을 선택한 활동가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또한 이 운동은 모
든 요소, 나이 그리고 사회의 부문을 통합할 수 있다.
몇 가지 결론
첫째, 이 시위는 논쟁과 그것이 토론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드리드
의 권위 있는 일간지 엘빠(El Pa)의 다음 헤드라인은 하나의 실례를 보여준다. "까
딸루냐 수도는 다른 종류의 세계화를 지지하는 가장 거대한 시위의 현장이었다."
이번에는, "반세계화"만을 사용하여 서술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바르셀로나에서 폭력에 대한 부수적인 충동이 있었다. 불을 담은 쓰레기
깡통과 돌 던지는 것을 포함하여 몇몇 사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적으로도 언론 보도에서도, 경찰이 우려했던 중대한 폭력은 이성적 분별 덕분에 발
생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폭력 사건들은 아주 사소했다. 괴텐버그와 제노아에서
의 증대된 폭력 이후, 유럽운동 역사에서, 바르셀로나는 성숙한 운동의 징후를 구
성하게 될 것이다. 한편, 유럽내의 자유로운 왕래라는 이슈는 중대한 문제이다. 정
부가 시민운동과 유럽내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일 수
없다. 이러한 시민의 자유에 대한 공격에 맞선 저항, 특히 ATTAC의 투쟁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 캠페인은 더 확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투쟁이 활동가 네트워크에 미친 영향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
것은 스페인의 맥락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 다가오는 6월 유럽정상
회담 시기의 세비야 동원이라는 실험. 보다 포괄적으로, 유럽의 다른 지역 뿐만 아
니라 스페인에서 핵심적인 질문 중의 하나는 한정된 구조에 근거해 조직할 수 있
는 운동의 능력이다. 그러한 투쟁의 탈중심적이고 민주적인 형태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물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구조적 허약함은 까딸루냐와 스
페인 운동, 그리고 유럽 및 국제적인 운동사이에 경험을 교류하고, 시너지를 창출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것은 돌아오는 11월 유럽 사회포럼의 중대한 과
제가 될 것이다. 어떻게 포르투 알레그레의 주요한 목표를 추구하는 운동이 지방과
일국, 그리고 대륙에 기반하면서 지구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
을 위해 어떻게 우리의 요구를 위한 체계와 효과적인 행동 전략을 공식화할 수 있
을까?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