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연재] 이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2부: 이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인터내셔널뉴스] 157호에서 시작한 기획연재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 1부에
이어 이번 에는 2부 '이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를 싣는다. 1960-70년대 미국 사
회를 뒤흔들었던 여성운동을 평가한 바버라 엡스타인의 글(1부)에 대한 자기의 의
견을 제시하는 조안 액커는, 여성운동 나아가 진보 운동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은
운동의 남성중심성과 보수진영의 반격을 여성운동 쇠퇴의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먼슬리 리뷰], 2001년 10월호, 조안 액커*

"여성운동, 어떻게 됐는가?"에 대한 바버라 엡스타인의 답변([먼슬리 리뷰], 2001
년 5월)은 사회 변혁과 여성 해방에 대한 전망을 가졌던 1960년대와 70년대의 강력
하고도 흥미진진한,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페미니즘의 조직화가 왜 쇠퇴하게 되
었는지를 거의 대부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엡스타인이 보다 포괄적인 답
변을 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과소평가하거나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점들이란, 혁명적 전망이 직면한 위압적인 현실, 남녀평등에 대한 반대
의 힘, 그리고 새로운 전망과 조직화를 필요로 하는 경제적 정치적 관계의 변화 등
이다.

이 사안들을 논의하기 전에 나는 1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엡스타인의 코멘트에
한 가지를 덧붙이겠다. 광범위한 의제와 좌파 단체들과의 연계를 포기한 것이 1세
대 페미니즘이 쇠퇴한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페미니즘의) 쇠퇴는 1세대 페미니즘
의 성공의 결과이자, 또한 좌파진영들 내에 깊게 은폐되어 있던 페미니스트의 주장
에 대한 반감의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1940년대의 나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이런
결론을 맺게 되었다. 나는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까지 여성운동은 성공했고,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상당히 개인주
의적인 사고였음을 나는 인정한다- 굳건히 믿으면서 자랐다. 내가 가담했던 좌파
조직들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도 조직 내 여성의 민주주의와
평등에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전반적으로 부정했다. 보다 넓은 사회 문제는 노동
자계급이 승리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갖고 낮은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나의 능력 때문에 결국 집에서 양육자 역할만 해야 한다고
강요받은 후에서야 비로소 그러한 주장 속에 들어있는 거짓과 남성우월주의를 보
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불평등과 종속
을 보는 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엡스타인이 말했듯이, 2세대
운동은 아주 많은 성과를 냈다. 젊은 여성들은 2세대 페미니스트들보다 다른 가능
성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그들 역
시 모욕적인 깨달음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전망이 직면했던 위압적인 현실은 젠더적 그리
고 인종적으로 평등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젠더와 인종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
적 관계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라는 현실이
다. 여성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이 변해야만 했다. 하지
만 엡스타인이 지적하듯이 혁명의 구성원이 광범위했던 적이 없고 혁명에 대한 전
망은 비현실적이었다. 아무튼, 신좌파 남성 급진주의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면 그 혁
명은 여성들은 물론이고 신좌파의 이상에 있어서도 폐해가 매우 컸을 것이다. 대신
급진주의적, 사회주의적 그리고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변화를 위한 구체적이
고 즉각적인 프로젝트에 눈을 돌렸다. 대부분의의 풀뿌리 조직화과 급진적인 운동
정신은 여러 가지 중에서도 적극적 조치, 평등한 가치, 여성의 보건의료와 합법적
낙태를 향한 투쟁에 집중되었다. 여성운동 내에서의 이러한 분업은 때로는 분산적
이었지만 여러 가지 성과를 얻어내게끔 했다. 그리고 이 승리들은 오직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만의 것은 아니다. 여성운동은 여기로부터 힘을 얻었으며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비판 내에서 여성의 종속을 설명하는 일반
론이 아직 존재하긴 하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듯이 이와 같은 비판은 구체
적인 조직화의 기반이 되기에는 너무 일반적이다. 나는 엡스타인이 "페미니스트들
이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전망을 잃었다"라고 말했을 때 너무 지나친 일반화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엡스타인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수를 누그러Em려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풀뿌리적, 급진적 조직화로서의 여성운동이 쇠퇴한 데에는 페미니즘 요구에 대한
반대도 있다. 이러한 반대는 조용한 저항에서부터 적극적 조치에 대한 법적 공격
등 노골적인 반격과 못생긴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언론의 희화화까지 여러 가지 형
태로 나타났다. 동일 임금과 평등한 가치를 위한 투쟁은 많은 여성의 경제적 상태
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다면적인 반대 사례를 제
공해준다. 첫째, 공·사 영역 모두에서 있었던 정치인, 고용주와 관료들로부터의 반
대는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로 하여금 어떠한 직업이 평등화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정의를 내리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정의는 오로지 노동 시장의 일반
적 불평등을 공격하기 보다 한 직장에서의 특정 직무 등 공적 영역에만 노력이 집
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불평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지원 역할을 부여받은 직무 평
가 전문가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변화로부터 자신들의 평가 체계를 보호하
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변화가 여성의 임금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고 직무
평가 전문가들의 주요 고객인 사기업 고용주들이 화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계를 가지고는 가장 극단적인 불평등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고용주들은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 두려워 동일 임금에 반대했다. 노동자계급 남성들은 여성의
임금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임금이 깎일 것을 두려워했고, 몇몇 고용주들은 이러한
논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여성의 노동이 자신의 것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
이 때로 노동자계급 남성들의 남성적 우월감을 위협하기도 했다. 자유시장 이데올
로기가 공적 논의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반대는 더욱 극심해졌다.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던 곳에서 평등한 가치가 인정되긴 했으나, 오직 몇 개의 주와 좀 더 많은 수
의 지자체에서 그랬을 뿐이다.

"유연화", 이윤의 극대화와 노동운동의 약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이 추진
하고 있는 경제 및 고용의 변화는 동일 임금을 향한 투쟁에 걸림돌이 된다. 자본가
들의 이러한 노력은 다운사이징, 임금 상승 억제, 임금 반납 요구와 함께 1980년대
초부터 진행되어 온 고용주들의 노동에 대한 전쟁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자
계급 남성들은 여전히 그렇듯이,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임금
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를 얻어내기란 매우 힘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보다 높은 임
금을 주고 숙련되고 남성지배적인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더욱 힘들었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 조치가 노동자계급의 직업보다 고
급의 전문직이나 관리직에서 더 효과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일자리 기회가 축
소될 때보다 확대되고 있을 때 배제된 집단이 보다 적은 불안 속에서 편입될 수
있는 법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이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미 나타나고 있
기도 하다. 이 중 여러 가지는 예를 들어 로스엔젤레스에서 가정부들 또는 하와이
에서는 호텔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등, 반드시 페미니즘과 관련 없는 노동운동의
전략이다. 오늘날 운동을 조직화하려는 페미니즘적 전략은 인종적이고 계급을 초월
하는, 또한 지구적인 시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현재
의 사회적 구조와 가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만들어낼 한 가지 이슈는 누가 우리
아이들과 병자들을 돌 볼 것인가이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임금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노동과 경제적 생존이 점점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 갈 때, 돌보기(caring)는 보상에 있어 최하의 위치를 점한다. 여성은 여전히
아주 적은 임금 또는 무상으로 돌보기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못받고 있다. 물론 이를 해결할 만한 자원에 접근할 기회에 있어 다
소 차이가 있지만 이와 같은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의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런 면에서 생활보조금을 받는 여성이나 전문직 여성 모두 비슷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대가는 엄청나지만 은폐되어 있다. 이는 상당히 급진적인 의제이다.

왜냐하면 (이 의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근본적 조직방식, 우리 도시의 구조, 대중교
통의 부족, 여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버라 엡스타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급진주의의 부활과 경제 정의 및 인간적 가
치를 향한 광범위한 운동에 참여하는 데에서 나오는 흥분감을 간절히 바란다. 이번
에는 급진적이고 사회주의적 전통 속에서 남성들이 이뤘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
로 젠더와 인종적 종속을 엮어내는 급진주의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 노선의
페미니즘 운동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과연 남성들이 여기에 적응할 수 있
을까?

* 조안 액커는 오레곤 주립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1960년대 후반부
터 페미니즘 활동에 개입해왔다. [Doing Comparable Worth: Gender, Class and
Pay Equity](Temple University Press, 1989)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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