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왼손잡이"의 망치와 칼


덕수궁 돌담길에 오른쪽 팔의 절반을 잃은 한 장애인이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팔꿈치 아래가 잘린 그는 서각(글자를 파는 일)을 하기 위해 잘린 팔에 망치를 압박붕대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성한 팔과 반쪽이 잘린 팔에 조그마한 망치가 붙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모습으로 하루의 절반을 지낸다.

"집에 가서 붕대를 풀면 통증을 많이 느끼죠. 피가 통하지 않다가 갑자기 피가 통하니까 가렵기도 하고 많이 부어 있기도 하죠. 찜질도 하고 몇십분씩 주물러 줘야해요."

한쪽 팔이 없는 거리의 서각가 조규현씨는 자신의 나이, 학력, 수입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프라이버시"라고만 대답을 했다.

그래서 조씨가 사고를 당한 1970년에 그가 과연 몇 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해 4월 9일의 기억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단 한순간의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특별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차가 덮쳤죠. 제 옆에 있던 친구는 죽고 행인도 즉사했어요. 전 팔 하나를 잃었죠."
그래서 조씨는 '강요된 왼손잡이'로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였다. 칫솔질도 문을 열고 닫는 단순한 습관조차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조씨는 어렸을 적부터 유달리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만화를 보고 멋드러진 칼을 만들기도 했고 새총도 폼나게 만들었기 때문에 동네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하지만 이제 사고를 당한 이후로 유년기의 자랑스러운 기억은 오히려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반쪽만 남은 오른팔을 보며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만이 엄습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붓글씨를 쓰는 분을 만났어요. 붓글씨가 벽에 걸려 있는데 머리가 띵하면서 멍해졌죠. 운명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조씨는 다짜고짜 붓글씨와 서각을 배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쪽 팔이, 그것도 오른쪽 팔이 없는 조씨에게 붓글씨를 쉽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다.
"사부님은 그냥 가라고 하더군요. 몇번을 쫓겨나서 집에 가서 나무에다 조각을 해 가지고 왔어요. 사부님이 깜짝 놀라더니 자기 앞에서 다시 한번 해보라고 했죠. 얼른 약국에 가서 압박붕대를 사가지고 온 다음에 사부님이 주신 칼을 붕대로 싸매고 서각을 했어요. 정말 정성을 다해 했어요. 서각을 완성 하니까 사부님도 그제서야 배움을 허락하셨어요."

피눈물나는 노력이 이어졌다. 정상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초인적인 의지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쏟아 나오는 걸 조씨는 느꼈다. 공사장에 가서 잔심부름을 하고 얻은 몇푼의 돈은 고스란히 붓글씨와 서각을 배우는데 투자됐다.

조씨가 오른손잡이에서 왼손잡이로 탈바꿈하는데는 1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이 기간동안 그는 붓글씨와 서각을 자유자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붓글씨와 서각기술은 그의 호구지책이 됐다.

조씨는 5년 전부터 덕수궁 돌담길에 터를 잡았다. 자신의 붓글씨와 서각들이 덕수궁의 풍취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덕수궁에 조씨가 자리를 잡은 보다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장애인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아, 장애인도 저런 재주가 있구나'하며 감탄하게 만들고 싶었죠. 그래야 장애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 틀려지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장애인의 취업도 잘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장애인에게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오전 9시경 조씨는 출근 준비를 한다. 그의 출근 준비는 압박붕대로 망치를 자신의 오른쪽 팔에 고정시키는 것. 10시경, 덕수궁에 도착한 조씨는 근처 창고에 가서 자신이 팔 물건을 운반한다.

그리고 나서 붓글씨가 새겨진 나무판을 파내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행인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그는 고개를 드는 법이 드물다. 수도하는 자세로 글자를 파내려 간다.

조씨는 토요일이면 덕수궁 대신 고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고아원에서 조씨가 하는 일은 물론 붓글씨와 서각이다.
"일주일에 일곱 번 가고 싶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만 나가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제가 가진 기술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장애인이 가르친다고 우습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다들 잘 따라해요. 그런 좋은 기분은 참 느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 조씨가 막 '최선을 다 하자'라는 글자를 파내고 있다. 너무도 흔한 글귀였다. 어쩌면 조씨는 자신의 가슴속에 이 글을 새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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