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호/초점] '시민사회' 운운은 우리를 오도한다

필리핀의 한 여성활동가가 최근에 나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적은 수의 NGO와 훨씬 더 많은 민중운동들이다. 우리가 억 압적인 세계 경제 질서를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진정한 대 안을 성공적으로 창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중간한 개념

'시민사회'라는 운운은 우리를 오도한다

[제트넷], 2002/01/09, 아지즈 쇼우드리

2002년에 내가 조금 덜 들었으면 하는 말은 바로 '시민사회'라는 표
현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친구 중 여러 명, 그리고 많은 나라
의 지역운동가와 활동가들 역시 이 의례적이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표
현에 눈살을 찌푸린다. 우리는 혹시 누군가가 우리도 거기에 속해있다
고 생각하는 오류에 치를 떤다.

존 그리몬드는 [이코노미스트]의 "2002년도 세계에서"라는 글에서
이 표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표현은 절대선인 양 보편적
으로 얘기되고 있는데, 몇몇에게는 상당히 문제적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거기에 속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여기에 너무나 동의한다. 만약 그게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과연 거기에 속하고 싶을까? '시민사회', 더 나아가 '국제시민사회'가
도대체 뭔지 난 아직도 정말 모르겠다.

최신 성명서에 연명하거나 어느 회의 선언문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몇 개 NGO 대표들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인가? 자기 나라의 지역사회,
보다 넓게 민중운동과 연계를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NGO들의 집단을 지칭하는 장엄한 줄인말의 일종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시민사회에 속할 자격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주어지는가? 정부에 대항해 거리에서 직접행동을 취하면서 최
루탄을 맞고 페퍼스프레이에 쏘이고 경찰에게 얻어맞고 구속되는 사람
들은 시민사회의 일부일까? 누가 시민사회를 대표하고 무엇을, 누구를
위해, 누구에 의해 대변되는 지를 결정하는가? 시민사회에 대한 정의는
넘쳐난다. 그람시, 토크빌, 푸트남, 헤겔, 맑스 등 많은 이론가들은 이
주제에 대해 책을 몇 권씩 썼다. 가계에서부터 국가까지 모든 형태의
조직을 포괄한다는 일반적인 합의만 있을 뿐, 그 표현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 같다. 나는 이 표현의 무비판적 채택과 사용
이 어떻게 기본권, 자치, 해방과 탈식민화를 향한, 그리고 제국주의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는 민중들의 투쟁으로부터 나온 개념을 권력 엘리트들이 흡수해
전유해버린 것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그 개념이 분할통치 전략 그리고
사회운동 및 비판적 목소리를 주변화시키는 데에 전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민사회라는 구성물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으로 힘있는 기관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고 자신들이 원
하는 시기에 누가 포함되고 누구는 배제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시민사회는) 그것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대
중들에게 비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기관, 프로그램과 체계 -실제로는
무엇이든 간에- 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정도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듯
한 인상을 주는 부가적 가치도 갖는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타도한 최
근의 대중 시위가 있은 이후 필리핀에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한 에드문도 산츄아리오 3세는 "관변 시민단체(civic clubs),
군사 관련 우익 집단, 정치·종교적 단체, 법률가 등도 역시 이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군다나 "시민사회가 꼭 빈곤과 부패 근절, 또는 민주화를 위
한 매개라는 기치를 내세우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급진적이고 포괄
적인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는 정치 조직의 급진적 영향으로부터 풀뿌
리 단체들을 돌아서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라고 주장한다. 뉴질랜
드에서는 기업이 완전히 이끌고 주도하는 새로운 기업가 단체이자 도
하 WTO 각료회의 이전에 "무역 자유화에 대한 보다 깊은 대중적 이
해와 지지"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무역자유화네트워크가 자신들이
시민사회의 일부라 주장한다.

그래, 그들은 시민사회의 일부이다. 마피아도 그렇다. 그리고 봉건적
지주, 금융 투기자, 신자유주의 씽크탱크, 기업의 전선부대, 대변인들과
가장 탐욕적인 기업의 CEO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그들 모두 시민
사회의 정말 훌륭한 다양성에 포함된다. 제임스 페트라스와 헨리 벨트
마이어는 [가면이 벗겨진 세계화] (마드히얌 북스, 뉴델히, 2001)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가장 큰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은 시민사회에 속한
자들로, 국내 부채에 대해 터무니없는 이자 상환을 짜내는 부유한 은행
가들, 토지로부터 소농들을 쫓아내는 지주들, 노동착취공장(sweatshop)
에서 아사 수준의 임금을 주면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산업 자본가들
이다."

상당히 예리한 내용이 담긴 이 책의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NGO들"
이라는 장(章)에서 이들은 "'시민사회'에 대해 논함으로써, NGO주의자
들은 현대의 '시민사회'를 양극화하는 계급 간 깊은 격차, 계급 착취와
계급 투쟁을 희석화시킨다"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다른 한 나라를 파멸에 가까이 이끌고 가면서 21세기 제국주의를 적나
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과연 '정중해야(civil)'('시민사
회 civil society'의 'civil'은 '문명화되다' 또는 '정중하다'라는 뜻도 가지
고 있다-옮긴이) 하는가? 지구적 자본의 힘을 대면하고 우리 사회와 지
구 전체에 고통과 빈곤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폭로하는 데
에 있어 우리가 '정중할' 수 있는가? 그래야만 하는가? 현재 시민사회
를 연구하고 강화하고 설립하는 데에 헌신하는 재단, 연구소, 학과 과
정, 출판물과 NGO들이 많아졌다. 지난 몇 년 동안 NGO 세계 내에서
'시민사회' 관련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정이 마구 투입된 것
으로 보인다. 브레튼우즈 기구들, '새끼 은행들'(Baby Banks, 최근에 생
겨나고 있는 소규모 금융기관들-옮긴이), 많은 정부와 기업들은 모두
시민사회의 수사학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시민사회와 협
력할 수 있는 기회를 환영한다"라고 한다.

공식 문서에 의하면 미주개발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운영의 측면에서 세계은행과 채
무자들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시민사회 단체(CSO,
civil society organisation)들 및 프로젝트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협의를 거친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시민사회 행위자들과의 협력을 강
화하고 그들의 관심사에 반응"하고자 한다.

WTO 사무총장 마이크 무어는 시민사회의 면밀한 조사를 환영하며,
WTO에의 개입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더 잘 하도록 독려해
준다"라고 한다. 친절하기로 해라. 그들 정책으로 빈곤, 불평등, 절망,
부정의와 환경 파괴가 악화되는 와중에, 이 기관들은 '생산적인 대화'
에 임하거나 조심스럽게 선택된 시민사회 '대표자'들과 협의를 거친다
고 우리가 정말 엄청난 위로라도 받으리라 생각하는가 보다. 빈곤을 근
절하고 환경을 되살리고 숭고하게 들리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한답시
고 '시민사회'는 기업, 정부 및 국제 기구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라는
권고를 해댄다. 그리고 NGO 세계에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정말 철
저히 소화해낸 기회주의자들도 많고 권력가들과 만나서 어울릴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 의지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마오리족
출신 변호사 모아나 잭슨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끔찍한 일들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 중
하나는 우리 세계를 명명할 권리를 저들에게 내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계화를 만들어낸 자본가들의 명명법과 이데올로기를 사용해 세계화
를 파괴하거나 해체하려고 한다. 우리는 식민화의 언어와 말을 가지고
식민화의 무기에 저항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
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출발 지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명확한 가치도 가져야 한다. 내 자신을 오랜 동안 -그나마 좀 더 나은
표현을 쓰자면- '정중하지 못한 사회(uncivil society)'의 일원이라 규정
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시민사회에 포함되기 위해 줄을 서지 않겠다.

필리핀의 한 여성활동가가 최근에 나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적은 수의 NGO와 훨씬 더 많은 민중운동들이다. 우리가 억
압적인 세계 경제 질서를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진정한 대
안을 성공적으로 창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중간한 개념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짓을 그만둬야 한다. 우리에게는 정확성이 훨씬
더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반대하는 기관들과 그들이 만든 구조에 지
배받지 않는 전략과 활동 계획을 개발해야 한다. 긴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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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 NGO , 뉴질랜드 , 시민사회 , 민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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